한국 조직폭력 역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1-10-16 오전 11:06:00
자료에 따르면 본격적인 의미의 첫 조직 폭력배는 일제시대 초기의 김 후옥, 김 사범 등 서울 출신 주먹들로 일본 상인들이 조선 상권의 중심지인 명동과 종로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폭력 조직(야쿠자)을 불러들이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구마적, 신마적 등의 ‘반일 주먹’이 활동한 것도 이때 즈음이다. 해방 직후 조직 폭력의 세력은 청계천의 수표교를 중심으로 북쪽의 종로일대에는 김 두한파, 동대문 이 정재파, 남쪽의 명동지역에는 서울 시공관 일대의 이 화룡파, 중앙극장 일대 정팔파 등이 대표적이다. 제 1공화국 말기에는 정치세력과 연계한 ‘정치깡패’가 기승을 부려 이 정재, 유 지광 등 외에도 ‘민중 결사대’, ‘백골단’, ‘땃벌레’ 등이 폭력을 일삼았다. 1960년 4.19 혁명 전이 3.15 부정선거와 자유당 독재 등에 항거하는 학생 시민 등에게 이 정재 휘하의 깡패 100여명이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61년 5.16구데타 후 군사정권에 의해 일시 소탕되거나 잠적했던 조폭들은 63년 말에 민정이양으로 다시 발흥하기 시작해 명동 이 화룡 밑에서 자란 육군 상사 출신 신 상현이 ‘신상사파’를 결성, 100여명의 폭력배들을 거느리고 명동, 을지로, 충무로 등 중심가를 장악했다. 70년대는 광주, 전주, 목포, 여수 등에서 올라와 무교동에 세력을 구축했던 ‘범호남파’가 서울토박이 중심인 신상사파를 퇴장시키고 ‘중앙’에 진출한 시기로 계기가 된 유명한 75년 1월 명동 사보이 호텔 커피숍의 ‘조폭 혈전’이다.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서방파(김 태촌), 양은이파(조 양은), OB파(이 동재) 등 속칭 ‘3대 패밀리’의 알력과 대립, 발호가 점입가경을 이뤘고 수원(수원파, 북문파 등), 광주(신오비파, 무등산파 등), 대구(향촌동파, 동성로파), 부산(신 20세기파, 신칠성파, 영도파) 등 주요 도시별로 조직이 잇따라 결성됐다. 80년 대 말에는 신우회, 호국청년 연합회 등의 연합조직이 출현하는 등, 폭력조직의 광역화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90년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두목급들이 대거 구속되거나 잠적하면서 거대 조직이 거의 와해됐다. 그러나 95년 이후 이들이 잇따라 출소하면서 폭력조직의 재건 및 세력 확장이 시도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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