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퇴직자들, 창업·재취업 나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1-06-14 오후 6:04:00
미나리바 아키히사씨는 얼마 전 정년퇴직 할 때 한적한 여생을 보낼 생각으로 약간은 들뜨기까지 했다. 37년간 일한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은 2,500만엔. 우선 500만엔을 떼 내 1,000만엔 쯤 남았던 주택 융자금을 절반으로 줄였다. 나머지 2,000만엔은 기업연금과 체신예금에 나눠 예탁했다. 매월 기업연금에서 4만여엔, 37년간 불입한 공공연금에서 23만엔을 받아 모두 28만엔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퇴직생활은 빠듯하기만 했다. 부인과의 생활비와 주택융자 원리금(월 2만엔)을 지출하면 남는 게 없었다. 체신예금 1,000만엔은 이자가 월 5,000엔에 불과했고, 장녀 결혼식을 치르자 700만엔으로 줄어들었다. 다행히 일자리는 곧 나타났다. 그는 지금 '마이스터60'이라는 빌딩관리 회사의 총무과장으로 주 5일 근무를 한다. 월급은 20만엔으로, 월 1∼2회 골프 치고 주말 여행도 다닐 여유가 생겼다. "정년퇴직 후에도 일하지 않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라고 그는 말한다. 미나리바씨는 그래도 고령자 상류층에 속한다. 일본의 60세 이상 퇴직자의 월평균 지출액은 28만엔(97년·총무청 조사). 반면 평균 월수입은 25만,7600엔이다. 초저금리로 금융소득이 거의 생기지 않는 탓이다. 매달 2만엔 정도의 적자는 예금이나 퇴직금을 헐어 메울 수밖에 없다. 이제 일본의 평균적 퇴직자에게 정년은 '적자인생'의 시작을 뜻한다. 일본에서 부부가 '여유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최저수입은 월 38만3000엔(98년·생명보험문화센터 조사). 하지만 고령자 세대의 상위 30%정도만이 누릴 수 있는 '꿈의 숫자'일 뿐이며, 성인의 75%가 노후생활에 불안해하고 있다(98년·마이니치신문 조사). '은퇴후 문제'는 일본에서 이미 폭발하기 시작한 범사회적 문제다. 자본주의 탄생이후 최저라는 '제로금리 구조'가 퇴직자의 생계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1년 짜리 은행정기예금 금리는 연 0.25%. 주식은 위험하고, 부동산 경기는 싸늘하게 식어 있다. 퇴직금을 굴려 이자소득이나 임대수입으로 생활한다는 개념은 깨진 지 오래다. 상당수 퇴직자들은 공공연금에 기대고 있다. 65세 이상의 수입 중 공공연금 비중은 59%나 된다. 공공연금 만으로 살아가는 고령자 세대도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인구감소·고령화로 연금재정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21세기 초엔 연금이 제대로 나올지 의문이다. 금융소득을 기대할 수 없고 연금도 불안하다면? 일본 정부는 '생애현역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은퇴란 존재하지 않고 평생을 일하는 사회다. 근로소득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냉혹한 시대가 됐음을 일본 사회가 인정한 셈이다. '생애현역사회'로의 이행은 이미 시작됐다. 사원이 전원 60세 이상인 이른바 '고령자 회사'가 속속 등장하고, 노인 인력 파견사업도 성황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기업 창업자의 37%가 50대 이상이란 통계도 나와 있다. 초저금리 시대 일본의 퇴직자들은 '생산적 고령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생활고에 시달릴 것이냐'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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