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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가 주둔하는 주변 마을엔 술집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 술집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술시중을 들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그 사람의 애인이 되기도 하고 같이 살기도 한다.
실제로 여기서 일하던 한 여성이 부대 김모 대위에게 푹 빠져 잠자리를 여러번 같이 했다. 그러다 김대위는 다른 데로 전출가고 그 자리에는 진모 대위가 부임해 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피아 로렌주연의 'The key'라는 영화처럼 그녀는 김대위로부터 진대위에게로 방문 열쇠와 함께 인계된 다음부터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러면서 김대위 부하들이 그 술집에 들를 때마다 그녀는 김대위의 소식을 묻곤 했다. 김대위가 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면서.
한국동란 참전 당시의 이야기 속에는 치열했던 전투뿐만 아니라 뜨거운 러브스토리도 많았다. 간이막사에 군트럭을 타고 창녀들이 방문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전투에 지친 혈기왕성한 병사들에게 회포를 풀어 주게 하기 위한 전투력 증강방법중의 하나였다. 야전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들을 생각하면 문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병사들은 충혈된 눈으로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린다. 그 모습은 흡사 발정기를 맞은 황구와 유사하다고 어느 책에는 기록돼 있다.
이렇듯 남성에게는 성교라는 행위가 생존상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일깨워 주는 에피소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성적 충동이 일당 발동하면 그 원초적 본능으로 인해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이 남성들이다. 시상하부에 있는 성중추는 위로 정동(情動)의 중추인 대뇌변연계의 지배를 받고 다시 그 위로 지성과 이성의 중추인 대뇌피질이 간섭하며 통제한다. 그러나 반대로 집요하게 성교를 향해 발동하는 욕정을 무조건 억누르기만 하면 그것은 들어갔다가 강하게 튕겨나가는 용수철처럼 반발한다.
평소같으면 '그래선 안된다.' '참아야 한다'는 등으로 자신을 조절하지만 어느 경우엔 이성의 통제가 불가능해 강간이나 성추행 등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탈영 등으로 폭발하는 예가 종종 있다. 운동선수들도 성적욕구를 너무 참고 있으면 성적이 오히려 나빠진다는 이야기는 화제거리도 안된다.
이런 특수한 남성의 성생리로 인해 혈기 왕성한 병영사회는 어느 곳보다 성적 긴장을 적시에 풀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예부터 군부대에 말이나 대포가 필요하듯 창녀도 빼놓을 수 없는 군수품 중 하나였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18세기의 미국 독립전쟁 때까지 서구의 원정군에는 반드시 낭자군(娘子軍)이 연대를 형성, 동행하고 있었다. 의무중대처럼 창녀들을 전투부대 말미에 달고 다니는 목적은 첫째, 병사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둘째, 병사의 시중, 청소 및 세탁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또한 창녀를 같이 이동시킴으로서 이국의 여자들을 강간하거나 겁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매독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돋을 목적으로 그랬다.
종군 위안부들도 병사와 마찬가지로 급료를 받는 용병이었으므로 그 중에는 결혼 지참금을 번 사람도 상당히 있었다.
유럽의 역사기록에는 '창녀부대는 사단급 전투부대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 중 하나였다'고 돼 있다.
어떤 전사(戰史)엔 이렇게 수록돼있다.
'알바 공작이 이끄는 군대는 네덜란드 원정길에서 4백여명의 고급 창녀가 말을 타고 8백여명의 하급 창녀가 도보로 그 뒤를 따라 연대의 대열로 행진했다.', '1298년 알프레드히트 왕이 스트라스부르그에 입성했을 때 8백명 이상의 창녀들을 동반하고 있었다' '1343년 독일의 사단장 울스링거 베르너는 3천5백명의 군대 속에 1천명의 창녀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들 창녀는 장군이나 병사들에게서 시중든 응분의 화대를 받았다. 화대를 낼 수 없는 병사들은 창이나 칼등을 저당 잡힌 다음 성행위를 하고 후에 갚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부작용도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가 하면 아기가 태어나고 살림을 차려 도망가다가 혹은 서로 손님을 빼앗겼다고 싸움을 하는 등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원초적 본능을 누가 무엇을 막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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