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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남성들은 광대뼈가 불거져 나온 동양 여성에게서 강한 섹스 어필을 느낀다고 한다. 조물주는 같은 종족끼리 성기 사이즈가 맞도록 창조했음에도 이처럼 이민족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동양여성이 그 작은 체구만큼이나 성기가 작아서라고 한다.
즉 페니로 하여금 꽉 조여드는 감각을 느끼고 싶다는 뜻인가 보다. 그런 유럽 남성들의 취향을 반영하듯 방콕과 사이공 등 동양문화권 도시의 관광여행에 독일 중년 남성들이 관심이 높다는 기사를 외국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일본 호색가들이 한국의 기생파티를 즐기듯 미성년 여성과의 섹스 관광에 현혹된 수많은 유럽 남성들이 동남아시아 여행을 자주한다는 기사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티켓다방이라고 해서 어린 여성들을 시간당 일정 요금을 받고 빌려주는 매춘행위가 지금도 일부 소도시에서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나이 어린 여성을 플레이보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그녀들이 가장 처녀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처녀란 남성에게 있어 여전히 신비롭고 청결한 존재인 모양이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처녀 감별법이 전래돼 내려온다.
일본의 경우 교토의 만리소로란 곳에 '처녀감별'이 직업인 노파가 있었다. 그런데 엄청난 재산을 남기고 1860년 세상을 하직해 세인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가 사용한 감별법은 오동나무 화로 위에 여자를 걸터앉게 하고 코를 가느다란 종이끈으로 간지럽혀 재채기를 유발시키면 그 순간 질구로부터 방귀와 같은 공포(空砲)가 나오는데 이 방귀로 인해 화로 속의 재가 날라가면 가스분출을 저지하는 처녀막이 없기 때문이니 처녀가 아니라고 단정했다.
이런 분별법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데 오래 전에 과학화된 유럽 사회에도 비슷한 비법이 전래돼온다.
프랑스의 경우 발가벗은 여자를 부동자세로 서있게 하고 남성이 그 뒤로 돌아가 왼손을 여자의 두 다리 사이에 디밀고 그녀의 국부를 조심스럽게 잡는다.
그리고 강하게 꽉 그곳을 움켜쥔 채로 천천히 오른손의 집게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으로 엉덩이 사이를 좌우로 벌려 항문이 열리게 하고 그 공간을 향해 강하게 입김을 불어넣는다. 만일 그때 바람이 바깥으로 새 나오면, 즉 남성의 왼손에 바람이 느껴지지 않으면 미통녀(未通女), 다시 말해 처녀라고 결론지었다.
그 근거로 여자의 국부와 항문이 서로 연결돼 있는데 국부의 입구를 처녀막이 덮고 있으므로 처녀라면 항문으로 입김을 불어넣더라도 국부에서 그쳐 버려 그곳을 움켜쥔 왼손바닥에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혼전교섭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옛날에는 처녀막을 칼로 찢는 것, 즉 파화(破花)라는 행사가 첫날밤 도는 신혼부부의 첫 동침 때 일본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일본뿐만 아니라 태평양 연안의 도서에 사는 폴리네시안들도 첫날밤에 처녀 신부는 피를 흘리지 않으면 부정하다고 믿고 이런 행사를 벌였다.
또한 고대 그리스·인도·이란·모로코·이집트·터키 그리고 스페인 같은 문명사회에서도 그 신부가 처녀였다는 증거, 다시 말해 피묻은 시트나 손수건을 신랑의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공개하는 오래된 관습이 있었으니 만큼 용모나 성격보다 처녀였다는 사실이 신부를 맞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그처럼 처녀막을 소중히 하는 풍습이 있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그것을 꺼림직하게 여겨 처녀를 신부로 맞아들이지 않는 풍습도 있었다.
그 이유는 생리의 혈액에 대한 부정감이나 공포심이 파화의 피에도 파급된 탓인데 무지나 미신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처녀성을 승려나 지방 영주에게 바치는 이른바 '초야권'이 행사되었다.
별다른 영주가 없었던 레즈보스 섬에선 예로부터 이방의 나그네에게 어린처녀를 하룻밤 제공해 파화하게 만들었으며 카리브 사람들은 처녀인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나그네 혹은 승려에게 처녀성을 서둘러 바쳤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에선 남편 이외의 남성에 의한 파화가 일종의 관례행사로 돼 있었고 필리핀 군도에서는 처녀 신부의 파화를 취급하는 전문직업인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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