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 아니다! '친자 확인 요청' 봇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1-06-14 오후 6:04:00
성개방 풍조에서 자란 30대 부부를 중심으로 '생부·생모 찾기'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99년 앵커우먼 출신 백지연씨의 친자확인 법정공방이 일반인에게 알려지면서 유전자감식을 통한 친생자 확인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상속이나 이혼소송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활용됐던 유전자감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불신(不信)의 성문화가 낳은 새로운 풍속도이다. 서울대 법의학교실의 경우 한해 평균 110여건 정도이던 친자확인 의뢰건수가 99년 하반기에만 203건에 이르렀다. 지난해 어느 날 한 30대 남자가 서울대 법의학교실을 찾아왔다. 남자는 들고 온 가방에서 여자 팬티 한 장을 꺼냈다. 아내의 팬티였다. 이 남자는 "도대체 아내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팬티에 묻은 정액이 자신의 것인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또 한 여자는 휴지뭉치를 들고 찾아온 일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차안에서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가진 것 같아 차안에 있던 휴지뭉치를 가져 온 것이라고 말했다. 휴지뭉치에 다른 여자의 체액이 묻어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웃지 못할 일들이다. 당사자들은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계 친자확인 민간업체인 아이덴티진 코리아에는 최근 친자를 확인하는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문의전화를 걸어온 30대 여성은 결혼 전에 사귀던 남자를 결혼 후에도 6년간 계속 만나며 이중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6살이 아들이 자라면서 남편보다는 과거의 남자를 닮는 것을 보았다. 주변에서도 '아이를 주워왔나봐'라는 농담을 했다. 그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속앓이를 해왔다. 그러던 차에 유전자 감식으로 친자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같이 상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경남 진해에 사는 A씨는 유전자 감식을 통한 친자확인 절차를 거친 후 아내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A씨는 3살짜리 딸아이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A씨의 아내는 평수 자주 가출을 했다. 때문에 A씨는 아내를 믿을 수 없었다. 결국 A씨는 친자확인을 결심했고, 확인 결과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검사결과가 나왔다. 99년 서울 가정법원에 접수된 친생자 관계 확인소송은 무려 660여건에 이른다. 친자확인 병원이나 업체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인의 외도를 의심하는 남성들이다. 결혼한지 5년 이내의 20∼30대 초반 남성이 그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40∼50대 중년층도 30%를 차지한다고 업체 관계자는 말한다. 반면 여성이 의뢰하는 경우는 10% 미만. 남편의 의처증을 견디다 못해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신분노출을 꺼리는 검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나 정치인 대기업 임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친자확인 의뢰자 중에는 다른 조사기관에서 결과를 통보 받고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찾는 사람도 있다. 아이디진 관계자는 "친자확인 의뢰건수의 80% 정도는 친자인 것으로 확인되지만 20% 정도는 친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고 밝혔다.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 고객 5명 중 1명 꼴로 친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고 있어 부부간의 불신으로 인한 의처·의부증 신드롬은 계속 번질 전망이다. 유전자감식은 자신의 자녀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은 단순히 부부사이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부모보다 아이의 정서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길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99년 부모에게 물려받을 수 없는 혈액형이 자녀에게 나타난 일이 있었다. 혈액형이 O형인 남편 조모씨와 AB형은 아내 사이에서 혈액형이 O형인 딸이 태어난 것이다. 조씨 부부는 딸아이는 현재 초등학교 2학년. 조씨 부부는 지난 98년 10월 딸아이로부터 '혈액형이 O형'이라는 날벼락 같은 얘기를 들었다. O형과 AB형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아이의 혈액형은 A형이거나 B형이어야 한다는 것이 의학상식. 그때부터 조씨 부부는 아이한테 혈액형을 '비밀'로 부친 채 끙끙 앓았다. 이 부부는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병원으로 찾아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병원측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딸을 출산한 병원에서 같은 날 태어난 아이 18명을 대상으로 조심스럽게 혈액형 검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바뀐 것 같지 않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병원 측에선 '유전자 감정'을 통해 친자여부를 확인해 보자고 조씨 부부를 설득했다. 마침내 조씨 부부와 딸아이는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실을 찾았던 것이다. 서울대 의대에선 이 가족을 대상으로 혈액형을 포함한 28가지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결과, 혈액형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부모와 딸이 같은 형태를 보였다. 유전자 검사를 이용한 친자 감정은 검사 대상이 되는 전체 유전자 중 한 가지만 다를 경우 이 유전자를 돌연변이로 간주해 친자관계를 인정했다. 서울대 의대측은 "이같은 혈액형 돌연변이가 확인된 것은 지난 98년말 일본 오사카의대팀에 이어 이번이 세계 두 번째"라며 "워낙 희귀한 사례이기 때문에 혈액형을 이용한 친자 감정의 신뢰성을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2000년 2월에는 6.25때 헤어진 남북 이산가족이 DNA 유전자 검사 통해 처음으로 가족관계를 확인한 일이 있었다. 서울에 사는 B씨가 97년말과 99년초 북한에 있는 딸과 아들의 것이라며 서울대 법의학교실에 가져온 머리카락과 혈흔, 혈액을 검사한 결과 최씨와 아들, 딸이 친자관계임을 확인했다. 최씨는 6.25 전쟁 당시 가족과 헤어졌는데 지난 97년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으로부터 혈흔과 머리카락을 받았다. 또 99년 초에는 아들로부터 혈액을 전달받아 친자확인을 위한 DNA 검사를 실시한 것이다. 서울대 법의학교실에서는 현재 죽은 후에라도 가족 확인을 원하는 고령의 이산가족 7명의 DNA를 확보하고 있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친자를 확인해 주고 있는 대학 종합병원과 민간업체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통일이 된 후 이산가족들의 가족찾기에도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감식을 통한 친자확인 사업의 잠재시장은 매우 넓다"고 말한다. 특히 해외로 입양됐던 사람들이 부모를 찾기 위해 유전자 감식을 이용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DNA 유전자 감식은 친자확인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밖의 활용범위가 더 넓다고 볼 수 있다. 고분에서 발굴된 인골로 신원을 확인할 때도 유전자 감식은 유용하게 활용된다. 또 홍수나 산사태로 분묘가 뒤엉킨 경우나 변사사건·사고 때 신원확인 및 범죄자 색출 등에도 이용된다. 대형 사건에서 육안으로 형체를 식별할 수 없게 된 사망자들의 신원확인이 가능했던 것도 유전자 감식법에 의해서였다. 또 미국의 경우 지난 90년대 초 벌어진 걸프전 때 파병된 전투병력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반드시 유전자 샘플을 남겨놓게 했다. 우리나라에어도 해외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할 때 모두 유전자 샘플을 남겼다. 특히 최근에는 보험회사들도 유전자 감식법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다. 보험회사에서는 '무면허운전자'나 '음주운전자'를 가릴 때 이 감식법을 활용한다. 무면헌 운전자나 음주운전자가 사고를 냈을 때 보통 동승자와 자리를 바꾸거나 운전사실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운전석 주변에 흩어진 혈흔을 채취해 운전자를 가린다는 것이다. 유전자감식 병원과 업체 관계자들은 "유전자 감식을 통한 친자확인이 여론화 되다보니 유전자 감식의 긍정적인 면들이 가려지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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