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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97년 12월 모 은행 과장으로 근무하다 명예퇴직했다.
상고를 졸업하고 18년 동안 근무했던 그의 당시 월급은 300만원, 생활비는 한 달에 250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A씨 부부는 퇴직하고 나서는 한 달에 50만원으로 네 자녀와 먹고 살았다.
A씨는 퇴직할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이 별로 없었다. 1남3녀의 자녀를 제대로 공부시키고, 고향의 부모에게 매달 30만원을 생활비로 보내드렸다. 퇴직금 1억원으로 빚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돈은 아이들 이름으로 들어놓은 예금과 교육보험 등을 합쳐 2000만원이 전부였다. 집은 35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 전세였다.
"처음에는 '좀 쉬어가자'는 여유를 가지려고 했어요"
A씨는 실직 3개월 후 큰 아이가 전문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을 못내 진학을 포기했을 때 자신이 직면한 위기를 절감했다.
"딸아이가 등록 마감 날 '아빠, 적성이 안맞아서 안갈래요'라고 해요. 딸을 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실직 후 2년, A씨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가 사회의 중간 관리층에서 '극빈계층'으로 추락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이들만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학에 보내겠다고 수없이 마음먹은 그였지만, 현실은 허용하지 않았다. "여섯 식구가 월 50만원으로 생활하려고 하니 끊어야 할 게 많더군요. 우선 아이들 학원부터 끊었어요"
실업계를 다니는 둘째는 컴퓨터 학원을, 초등학생인 셋째는 미술학원을 끊었다. 한 달에 2∼3번 꼴로 하던 가족 외식, 하루에 한 갑 반을 피우던 담배, 신문구독은 실직가장에게 사치였다. 아이들 용돈도 없앴다. A씨의 딸들은 서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해결한다.
의료보험은 직장의보에서 지역의보로 바뀌었다. 보험료로 월 3만원을 꼬박꼬박 내지만 막상 병원에 간 적은 없다.
"2년 전 아내의 다리에 종양이 생겼지만 병원에 못갔어요. 동네 사람들 말로는 50만원만 들이면 완치할 수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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