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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여기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그냥 단순한 ‘주부’가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한 가정의 주부로서의 역할을 거부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겹도록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뭔 가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 특별한 경험이 자신을 보통 사람과 다르게 만들어 줄 거 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판에 박은 듯한 삶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특별한 삶을 원했습니다. 반복되는 일 상을 흔들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평범함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의 상처와 ‘가난’이라는 삶의 굴레는 그녀에게 ‘조금은 다른 삶’조 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소망은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박한 소망마저 모두 사라졌 을 때 그녀는 ‘소망 없는 불행’에 빠진 자신의 비참한 얼굴과 마주합니다. 더는 ‘소망을 갖는 것’조 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사실과 마주한 그녀의 몸과 마음은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두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주변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신체의 모든 균형을 잃어버려서 모 서리에 부딪히고 계단에서 미끄러지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 웃는 것마저 힘들어서 이따금 얼굴을 찌푸 릴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만 말했고 어떤 때는 너무 아파서 투덜댈 수조차 없었습니다. 더 는 ‘주부’ 노릇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고통만을 느낄 수 있자 그녀는 “난 이제 인간도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녀와 멀리 떨어져 살던 그는 가끔 몸이 아픈 그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탑니 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그녀를 위해 그는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녀 는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눈에 비치는 대상’일 따름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그녀에게서 별다른 애정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그는 그저 무심하게 있다가 함께 있을 시간이 다 지나면 다시 자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그녀가 징그럽고 비참하다고 느낀 나머지 감히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서 하릴없이 누워 있는 동물원의 동 물들에게서나 느껴지는 진한 고독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녀는 모든 뼈의 관절이 어긋나서 산산조각 나 있었고, 염증이 난 몸에 오장육부까지 뒤죽박죽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경악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 도 해서 그만 방에서 나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그녀를 ‘제 대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떠난 뒤, 그녀는 서둘러 ‘작별’을 위한 몇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혹시라도 ‘이성(理性)’마저 잃을까 두려웠던 그녀는 마치 편지지 속으로 뚫고 들어갈 듯이 절실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쳐도 난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단다”, “난 내 자신과 얘길 한다. 그건 누군가 다른 사 람에게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 “난 정말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란단다” 그녀가 쓴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드디어 평화롭게 잠들게 되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다”였습니다.
편지를 다 쓴 그녀는, 침실로 가서 100알정도 되는 수면제를 몽땅 입 안에 털어 넣고, 그것만으로 모자 라서 신경안정제까지 모두 먹어치웠습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웠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자살 소식을 들은 그는 ‘보람’을 느껴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 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그거였어, 그거였다니까. 아주 좋아, 아주 좋다니까’라고 되뇝니다. 여러분 이 보기에 그는 어떤 인간으로 보입니까? 그녀는 그의 어머니이고, 그는 그녀의 아들입니다.
‘소망 없는 불행’은 작가 페터 한트케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실제로 페터 한트케 의 어머니는 그가 미국으로 강연 여행을 떠났던 1971년 말에 자살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충격과 고통 슬픔이 빚어낸 소설 ‘소망 없는 불행’ 속에 진하게 배어 있는 ‘한 인간의 단단 한 슬픔’을 느껴보지 않겠습니까? 너무나 고통스러운 순간에 ‘아주 좋아’라고 되뇌는, 그래서 도무 지 이해하기 힘든 한 인간의 ‘굳고 단단한’ 눈물을 직접 닦아주지 않겠습니까?
황성규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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