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약손…온가족 함께 읽으면 마음에 새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9-12 오전 10:37:00
[한겨레] “5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외동아이이기도 하고 요즘 한창 고집이 세질 때라, 배려나
양보 등 사회성 발달에 필요한 책들을 읽어 주려고 합니다. 책을 추천해 주세요.” 한 어린이책 관련 인
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올려진 글이다. 요즘 학부모들이 자주 찾는 사이트에서는 이런 글들을 어렵지 않
게 볼 수 있다. 아이의 상황에 맞는 책을 구하는 어른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이야기에 공감하며 위로받는 효과 ‘톡톡’
부모·자녀 서로 마음 읽으면 ‘말길’도 열려
귀 기울이되 어른 생각 강요는 마세요

전문가들은 아이의 바른 성장을 돕고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데 책만큼 좋은 게 없다고 입을 모은
다. 꼭 전문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어지거나 자기의 속마음
을 들킨 듯한 느낌을 가져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터이다.

■ 책읽기의 ‘치유’효과=어린이책 전문가인 조월례 경민대 독서스페셜리스트교육원 초빙교수는 “어린
이들은 현실 속에서 알게 모르게 억눌리고 상처를 받기 쉬운데, 책 속에서 자기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
과 사람을 만나면서 공감하고 위로를 받곤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저런 때
가 있었지.’라거나 ‘나도 저래 봤으면….’ 하는 생각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독서지도사인 이기숙 부산 ‘꿈꾸는 글나라’ 어린이도서관장도 “문학은 줄거리가 있고 구체적이기 때
문에 아이들이 음악이나 미술 등 다른 예술에 비해 좀 더 쉽게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
다. 그는 “아이들은 작품 속 이야기와의 동일시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등장인물을 통
해 거울을 비추듯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행동모델을 제시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치유적 책읽
기’는 자발적인 독서 욕구를 북돋워 주기도 한다. 서울 남산도서관 주상수 사서는 “책을 통해 마음을
위로받은 경험을 한 아이는 책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되고, 기쁜 마음으로 책을 찾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 책을 통한 마음 읽기=책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의 근본 원인인 ‘막힌 말길’을 열
어 주는 구실도 한다. 독서치료 지침서 〈열려라 참깨〉의 저자인 김경선 하제독서치료연구소장은 “소
통이 제대로 되려면 부모와 아이가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서로
의 마음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특히 아이의 상처는 부모의 잘못된 태도에
서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
어, 김미혜 시인의 동시집 〈아기 까치의 우산〉에 실려 있는 동시 ‘말이 안 통해’를 보자.

“엄마, 토끼가 아픈가 봐요. / 쪽지시험은 100점 받았어? / 아까부터 재채기를 해요. / 숙제는 했
니? / 당근도 안 먹어요. / 일기부터 써라!”

아이는 토끼가 아프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은데, 엄마는 들어 주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상황을 담고 있
다. 김 소장은 “이 동시를 들려 주면, 부모들은 아이들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보게 되
고, 아이들은 자기 마음이 잘 반영된 모습에 웃음을 짓는다”고 설명했다. 만일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
에 아이를 맞추려고 해 아이를 힘들게 하는 부모라면, 엄마의 비뚤어진 기대 때문에 학원을 전전하며 고
통스러워하는 아이의 처지를 다룬 동화 〈노래하지 않는 새〉를 읽다 보면 책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
견하고 되돌아볼 수 있다.

■ 가족이 함께 책을=꼭 무슨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온 가족이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 책읽기’는 서로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김 소장은 “가족 책읽기를 하다
보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아이의 고민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아이가 반복적으
로 읽는 부분이나 읽기 싫어하는 부분이 뭔지를 눈여겨보는 것도 아이의 마음을 읽는 실마리가 될 수 있
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어른의 생각과 가치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다. 조 교수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며 “어른들이
기대한 변화가 왔는지 확인하려 들지 말고 아이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서치료를 위한 상황별 도서목록은 한국도서관협회 홈페이지(www.kla.kr) 공개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독서·글쓰기교육 포털사이트인 글나라(www.gulnara.net)의 ‘책의 선택’ 메뉴 중 ‘이럴 땐 이런 책’
에서도 한국독서치료학회 등의 독서치료자료 목록을 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치유적 책읽기’를 하고 싶다면 공공도서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서울 남산도서관
의 경우, 매주 목요일 오후 2~5시 독서상담실에서 사서와 함께하는 독서치료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
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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