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판소리·랩을 국밥에 훌훌 말았다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8-17 오전 10:33:00
예향 전주에는 유명한 콩나물 국밥집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원조 격인 삼백집은 ‘욕쟁이 할머니’로
이름난 곳이다. 1970년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 식당에 와서 국밥을 시켜 먹는데 그 욕쟁이 할머니가
“이놈아, 누가 보면 영락없이 박정희인 줄 알겄다. 그런 김에 이 계란 하나 더 처먹어라”라고 했다는
재미난 일화가 전설처럼 떠돈다.

그 욕쟁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욕과 음담패설이 걸쭉하게 어우러지는 대사에 우리 고유의 음악
판소리, 그리고 젊은이들의 문화 코드인 랩을 국밥처럼 훌훌 말아 내는 창작극이 무대에 오른다. 극단
자유가 오는 23일부터 한달 동안 정동 세실극장에서 선보이는 〈국밥〉(COOK_POP).

“우리나라처럼 욕이 풍부한 나라는 세계에 없어. 한국에서는 욕이 메신저야. 우리나라가 예부터 대단
히 보수적인 유교 사회이고 배타적이다 보니 억눌린 서민들이 하나의 저항의식으로 폭발한 것이 욕이
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미소를 가지고 바라봤단 말이야. 관대했던 거지. 그래서 욕이 풍부해진 거
야.”

14일 만난 〈국밥〉의 연출가이자 극단 자유 대표 김정옥(75·사진)씨는 “우리 욕은 미움과 살기만 느
껴지는 것이 아니라 애정과 농담, 민중적인 해학까지 담고 있다”고 ‘욕 예찬론’을 펼쳐놓는다. 그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과 국제극예술협회(ITI) 세계본부 회장 등을 역임한 연극계의 ‘큰어른’. 지난해
까지 극단 자유 예술감독으로 연출을 맡아 무대미술가인 이병복(80) 대표와 함께 40년간 극단을 이끌어
왔는데, 이씨가 탈퇴한 뒤 극단 이름을 ‘창작집단 극단 자유’로 바꿔 대표까지 맡았다.

극작가 김정률씨의 희곡 〈국밥〉은 국밥집을 꾸려나가는 욕쟁이 할머니 떡수니가 굴곡진 한국 현대사
를 겪어온 인생 역정을 걸쭉한 욕과 질펀한 음담패설 가득한 넋두리와 구성진 판소리로 풀어내는 일종
의 모노드라마다. 극 중간 중간에 젊은 히파퍼가 등장해 ‘어제는 그랬었지’라는 제목의 랩을 읊으며 5
·16 쿠데타, 한-일 협정 조인, 베트남전쟁, 새마을운동, 전태일 분신, 10월 유신, 부마항쟁, 10·26 사
건까지 숨 가쁘게 흘러온 한국 현대사를 속사포같이 훑는다. 김 대표는 극에 판소리와 랩을 함께 도입
한 것에 대해 “판소리와 랩은 둘 다 음악적인 리듬에 맞춰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이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설명한다.

“모노드라마라는 것은 일종의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어려서 할머니가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하
던 게 리듬을 가지고 있었거든. 판소리도 역시 스토리텔링이고, 랩도 들어보면 그것도 젊은이들이 하는
이야기라고. 그러니까 판소리와 랩은 모두 음악으로 하는 스토리텔링인 셈이지. 그러니까 세 가지 이야
기 형식이 만나는 거야.”

그러면서 그는 “너무 판소리하고 이야기만 해버리면 과거회상적이나 과거지향적인 것이 되니까 랩 같
은 것과 만나서 젊은이들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연극이 될 수 있지 않으냐”며 밝게 웃었다.

요즘 한국 연극이 뮤지컬이나 영화 등에 밀려 침제되고 있는 까닭을 묻자 그는 “연극하는 사람들의 의
식이 예술 한다며 자기주장이나 자기도취가 너무 과한 것 같다”며 “관객이 없으면 반성을 하고 어떻
게 해서든 관객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형태로든 관객한테 따
분하지 않은 연극을 만들어야 하는 게 중요하지. 연기자가 연기를 잘해서 관객이 따분하지 않을 수 있
고, 줄거리 전개가 재미있어서 그럴 수 있겠고. 나는 따분하지 않고 극적으로 즐거운 연극이 되려면 다
양한 형식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는 연극 〈국밥〉을 일종의 ‘안티뮤지컬’이라고 정의한다. “뮤지컬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틀에 박힌 뮤지컬이 아닌 새로운 음악극을 지향한다는 뜻이야. 그렇게 몸부림 치는 것은 관객과 호흡을
같이 하려고 하는 거라구.”

욕쟁이 할머니 떡수니 역은 강부자(66)씨와 극단 자유의 중진 배우 손봉숙(63)씨가 번갈아 맡는다. 히파
퍼는 오디션으로 뽑은 케이 파워(24)가 맡으며, 80년대 인기 개그 코너 ‘쓰리랑 부부’로 대중에게 낯
익은 국악인 신영희(65·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씨가 소리꾼과 고수로 가
세해 흥을 북돋운다. 그는 “연극이 잘되면 서로 다른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강부자 버전’이
나 ‘김수미 버전’ ‘손숙 버전’ 등 레퍼토리로 정착시켜 보고 싶다”고 기대한다. 〈국밥〉은 오는
10월에는 일본 고베에서 펼쳐지는 아시아국제연극제에도 초청받아 고베아트빌리지센터 무대에 오른다.
(02)419-9823.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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