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광고 마약보다 나쁘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7-27 오전 10:43:00
설계도·인테리어 자재 설명 없이 광고로만 승부… 가격폭등 주법1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집’이 아니다. 적어도 광고 내용만 보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롯데
캐슬) 명찰이거나 귀부인의 심미안과 취향은 물론 구매력까지 드러내는 액세서리이거나(삼성 래미안, 대
우 푸르지오), 카푸치노 커피처럼 주문하면 곧 나오는 기호품(벽산 블루밍) 혹은 ‘당신의 유럽’(신도
브래뉴)을 축소해놓은 지구본이다. 아파트는 엄연히 사람이 들어가 살아야 할 공간인데, 설계도와 인테
리어 자재에 대한 설명 없이 오직 광고로만 승부한다.

최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당신의 얼굴에 가려진 건설사 폭리’라는 글을 써 아파트 광고 논란
에 불을 지폈다. 심 의원은 선분양제에서 아파트 광고는 허상을 통한 가격 폭등의 주범이라고 했고, 곧
이어 경실련은 아파트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 10여 명에게 출연 중단 서한을 보내 화제가 됐다. 대부업
체 광고가 ‘유명 연예인 효과’라는 여론의 된서리를 맞은 뒤라, 경실련과 심상정 의원이 “마약보다
나쁘다”고 질책하는 현행 아파트 광고에도 변화가 올지 관심거리다.

‘쇼’를 하는 집, 아·파·트
2004년 코오롱 건설이 ‘하늘채’ 브랜드로 광고를 시작했을 때 정작 아파트는 등장하지 않았다. 옷가
게 쇼윈도 앞에서 미소 짓는 젊은 주부에게 “당신의 하늘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전부였다. 다음 장면은 파리의 ‘물랑루즈’ 여가수라도 되는 양 벨벳 무대의상으로 무장한 그녀가 바
로 아파트 거실에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있는 주부라는 내용이었다. 브랜드 이름만을 알리려는 이른바
뚜껑 광고는 아파트 광고의 속성이 된 지 오래다.

억지 뮤지컬로 자아실현을 해보려던 ‘주부’ 김태은은 곧 천재소년 송유근으로 교체됐다. 코오롱 건설
은 이후 영화 같은 광고, 더 나아가 ‘오리엔탈 프리미엄’이라는 모호한 이국 취향까지 선보이고 있
다.

아파트 브랜드 시대를 연 삼성물산은 장서희를 앞세운 ‘래미안’ 광고를 통해 유비쿼터스부터 김성수와
의 불륜까지 온갖 드라마와 SF 이미지의 연속 광고를 내보냈다. 김혜수가 선전하는 ‘신도 브래뉴’는
프랑스 파리에서 5박 6일 간 찍은 광고로 ‘당신의 유럽’을 표방하고 있다. 정작 유럽에서 특히 파리에
서 아파트는 서민 혹은 이주 노동자가 사는 슬럼이 되고 있어 사회문제라는 정보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유럽’ 이미지 자체가 허상이다.

그들은 거기 살지 않는다
요즘은 성별·나이에 상관없이 톱스타라면 모두 하나씩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아파트 광고의 대표
적인 패턴은 30대 초반 여배우들이 행복해 죽겠는 표정으로 등장해 커피와 쇼핑과 미소로 하루를 보내
는 콘셉트다. 그녀들은 자신이 광고하는 집에 ‘취해’ 있다.

이미연이 말하는 ‘두산 위브’의 광장은 영국이고 그 햇볕은 스페인의 것이란다. 그야말로 글로벌한 집
인데, 유럽 여기저기를 순간 이동하는 ‘날으는 융단’쯤 되는 모양이다. 오직 ‘브런치의 여유’뿐인
금호 ‘어울림’에서 김희애는 지중해의 햇살만 만끽하면 된다. 절대로 설거지나 빨래 혹은 음식물 쓰레
기 분리수거 등을 하지 않는 왕족들의 공간인 광고 속의 아파트는 대단히 널찍하다. 벽과 천장이 없는
넓디넓은 추상적인 인테리어는 필수다. 조승우의 한진중공업 ‘해모로’ 광고는 동해 앞바다가 온통
‘거실’이다. 브랜드 네이밍은 영어와 우리말과 한자어 및 무수한 다국적 언어를 뒤섞은 국적불명으로
지어야 한다. 그래야 정체 모를 ‘고품격’ 대열에 낄 수 있다.

정선경이 선전하다 최지우로 대체된 신일 해피트리 광고에는 집 안에 시냇물이 흐르고 징검다리도 있었
다. 최근 최지우의 출연작들이 저조한 성적을 거둔 가운데, 며칠 전 신일건설은 최종 부도처리됐다. 30
억대 빌라에 산다는 최지우 저택을 흉내내는 데 너무 거액을 쓴 것일까?

광고 모델 섭외를 못 받기로 유명했던 전도연조차 과거 ‘청광 플러스원’ 모델로 등장한 사실은 아파
트 광고 시장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그 전도연도 결혼과 함께 30억대의 저택으로 이사했다.
물론 결혼 전에도 ‘아파트’에는 살지 않았다.

거액의 광고료를 받는 아파트 모델들은 한결같이 수십억 원대의 빌라에 살고 있다. 위브와 푸르지오, 더
샵과 아너스빌, 해피트리, 블루밍, 유쉘, 힐스테이트, 자이 등 대한민국 아파트의 ‘얼굴’들은 강남 빌
라촌에 산다.

‘당신의 이미지’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경실련은 연예인들에게 아파트광고 출연 자제를 촉구하면서 “여러분은 연예인으로서 쌓은 이미지를
‘거품아파트’ 광고에 이용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 지적에도 오류는 있다.

아파트 광고 모델은 가수 겸업 연기자 비를 포함해 모두 배우다. 스타들이 아파트 광고에서 보여주는 이
미지는 대개 그들이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수한 제작진과 함
께 오랜 세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쌓은 그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협업의 산물이지, 배우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창조된 이미지는 그 드라마의 것이다. 또한 그 작품을 함께 지켜본 시청자와 관객
의 몫이다.

광고 속의 그들은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작품 속의 분위기와 포즈를 재연한다. 그러나 그들이 드라마 속
에서 선보인 ‘배경’은 방송국의 세트다. ‘집’이 아니다. 벽지 하나부터 온갖 가구와 의상은 물론 소
품과 인테리어 자재까지 당대의 신제품으로 협찬받아 만드는 상품 전시장인 것이다. 건설회사는 새 드라
마에 제작지원사로 참여하고 그 이미지로 나중에 아파트 광고를 찍는다. 주인공이어도 악역이거나 그리
고급스러운 ‘품격’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는 인기와 상관없이 아파트 모델 자리를 따낼 수 없다. 최대
한 고급스럽고 우아한 배역을 맡거나 아니면 아예 고소영이나 김남주처럼 활동을 쉬는 편이 재계약에 유
리하다.

스타들이여, 쇼가 아닌 연기를 하라. 건설업체들이 땅만 확보했을 뿐인 ‘세상에 없는 물건’을 광고하
기 위해 거액을 받고 ‘세상에 없는 쇼’를 하는 것은 대중이 부여해준 이미지를 도둑질하는 행위와 다
름없다.

김원〈문화평론가〉

이전글 정통부 엉터리 보고서 알고서도 휴대전화 업계 편들어
다음글 걷다보니…여름 추억 한 페이지가 채워집니다
주소 :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로 589 우)143-805 / Tel. 02) 456-7850 | Fax. 02) 456-7650 | E-mail. karp@karpkr.org
Copyright(c) 2008 KA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