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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 다니는 고영(31)씨는 ‘잘 나가는’ 경영 컨설턴트지만 전 재산이 317만원에 불과하다. 버는 돈이 적어서가 아니다. 고씨는 2005년 7월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세금을 빼고 도 6000만원쯤 벌었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난해 7월 고씨는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제 아버님이 병원에서 백혈병 판 정을 받았는데 급히 수술비(5000만원)가 필요해요. 선배님!”
밤새 고민한 고씨는 다음날 후배 통장에 1000만원을 넣었다. 빌려준 것이 아니라 그냥 준 것이다. 며칠 후 후배 어머니로부터 5000만원을 금방 모았다는 연락이 왔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1000만원 냈다는 소식에 친척들이 감동해서 십시일반(十匙一飯) 수술비를 모아줬다는 것이다. 이후 고씨는 아프가니스탄 에 구호활동을 갔다가 간염과 신부전증을 얻은 교회 후배에게도 500만원을 건넸다. 또 시민단체에서 일 하는 후배가 월급을 제때 못 받자 150만원을 생활비로 찔러줬고, 미국에 취업 인터뷰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후배에게는 비행기값 300만원을 대줬다.
이런 식으로 그의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4000만원쯤 된다. 남은 돈을 쪼개 단칸방 월세 30만원과 생활 비를 쓰고 나면 여윳돈이 없다. 그에겐 자동차도 없고 적금도 없다. 첫 월급도 전액 후배들을 위해 몸담 았던 동아리에 기증했다.
고씨가 ‘봉’, ‘밥’ 소릴 들어가며 아낌없이 주는 이유가 있다. 그는 2002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재 학 시절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선배들한테 800만원을 빌려 도전했다가 쓴맛을 본 고 씨는 후배 자취방에 얹혀 사는 처지가 됐다. 학교 인근을 방황하다가 거리에서 ‘영철버거’ 노점상을 하던 이영철(38)씨의 위로를 받게 됐다. 이씨는 고씨에게 흔쾌히 한 학기 등록금 300만원을 줬다.
“자기도 어려우면서 저렇게 남을 도와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저도 결심했죠. 돈 을 벌면 대학 시절 생활비(월세 포함해 60만원) 정도만 쓰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요.” 조선일보 손진석 기자 au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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