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 세상에 대한 남아의 기개를 보여준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일가족은 가히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명가로 손꼽힌다. 모두 40여 명이 조국의 독립운동에 목숨을 내걸었다.
정부가 그 공로를 기려 추서한 훈장을 받은 사람만 11명에 이른다.
100세까지 수(壽)를 누리며 드물게 빛을 본 인물 안춘생(安椿生`1912~2011)도 이 집안 출신이다.
황해도 벽성(碧城)에서 1912년 오늘 태어난 그는 안중근의 종질(從姪`5촌 조카)로 1909년 안중근의 하얼빈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이후 일제 탄압을 피해 1917년 만주로 가족과 함께 망명했다.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제 만주 침략의 본격화로 난징(南京)에 가서 군관학교에서 군사학을 배웠다. 1936년 졸업 뒤 중국군에 배속돼 대일전에 뛰어들어 전공을 세웠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령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 뒤 1940년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들어가 활동하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 육사에 들어가 1949년 졸업해 6`25남침전쟁을 거쳐 1961년 중장으로 예편, 새 생활을 시작했다. 1973년엔 국회의원(9대)을 지냈고 광복회장(5대)과 독립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내 독립운동가로 드물게 빛을 봤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