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C 이지연의 출발 멋진 인생
'주명룡 회장의 시니어 정책, 어떤가요?'
‘MC 이지연의 출발 멋진 인생’, 노인 복지정보와 복지정책 등을 따끔하게 진단해 보는 시간입니다.
‘주명룡 회장의 시니어 정책, 어떤가요?’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과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MC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웰빙(Well-Being)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이 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우리 속담에 이런 게 있잖아요?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걸 자주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아요?
주명룡 회장 네, 그렇습니다.
“나는 춥고 어두운 흙구덩이로 들어가야 할 일이 무섭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의 무사한 하루하루에 안도한다.”
소설가 김훈 선생이 쓴 에세이 ‘무사한 나날들’의 한 대목인데요.
이처럼 대부분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죠. 죽음은 한때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던 단어였는데요.
유교적 가치관 때문이었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미약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죽음에 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웰다잉, 즉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 또는 ‘의미 있는 죽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인생 마무리를 원하는 데에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운 죽음을 준비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의지가 담겼다고 볼 수 있는데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앓고 세상을 하직하자’는 ‘9988234’에 대해 들어보셨죠? 한동안 우스갯소리처럼 회자 됐지만, 고령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는 얘기였어요.
MC 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잖아요. 이런 인식의 변화는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는데요. 최근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죠?
주명룡 회장 네, ‘죽음준비’나 ‘죽음체험’ 같은 직접적인 표현 대신 ‘웰다잉’이란 표현이 일반화되면서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사회 지도층의 자살,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 때문에 늘어난 청소년들의 자살, 노인 자살률 1위 등 이런 것들이 삶을 되돌아보게 하면서 우리 인식 전환에 한몫했을 것도 같은데요.
인간의 일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겠죠. 이 세상 누구도 예외 없이 인간이라면 이러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수레바퀴를 굴려야 합니다.
MC 네,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 진리는 언제나 이처럼 간단명료하죠?
그런데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한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시구처럼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명룡 회장 네, 우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게끔 살아 있을 때 정말 사는 것처럼 살아야겠죠.
지난해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팀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웰다잉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를 했는데요.
응답자 10명 중 4명이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의 첫째 조건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환자나 가족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무의미한 치료보다는 ‘모두의 행복’을 우선시하겠다는 것인데요.
‘존엄사’ 논쟁에 불을 붙였던 2009년 ‘김 할머니 사건’ 기억나시죠?
김 할머니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자 자식들이 연명 치료 중단을 요구하며 소송을 건 사건인데요.
김 할머니는 입원 전 자식들에게 “혹 내가 식물인간 또는 의식불명 상태가 되면 인공호흡기를 끼우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대법원의 연명치료중단 결정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당장 생명이 위독하다는 병원 측 말과는 달리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뗀 지 201일 만에 그의 바람대로 품위 있게 돌아가셨죠.
MC 네, 기억합니다. 이 사건 이후로도 존엄사 논쟁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데요. 곧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한 제도화 방안이 마련될 전망이라고 하죠?
주명룡 회장 네, 그렇습니다.
존엄사의 제도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삶과 죽음에 대한 정의, 생명의 절대 가치와 사회적 효율성 등 기본 가치가 복잡하게 얽혀 있죠.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 18명으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특별위원회’에서는 지난 5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한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했는데요.
이번 권고안에는 가족 전부가 동의한다는 전제 아래, 의사 2인 이상의 확인을 거쳐 대리결정을 인정하고,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에 대한 연명 의료 지속 여부는 병원의 윤리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동안 연명 의료에 대해서 논쟁만 계속됐던 터라 이번 권고안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리 결정 문제 등을 두고 논란은 여전한데요. 환자 스스로 자기 죽음에 관해 결정할 권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MC 네, 존엄사 문제는 앞으로 계속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사람이 죽는 방법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반영해야 하겠죠?
주명룡 회장 네,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인데요.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바꿔 말하면, ‘죽음의 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즉, 삶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 있는 동안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식물인간이나 질병 말기처럼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가 됐을 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두는 ‘사전 의료 의향서’라는 게 있는데요.
병원에 입원해 생명 유지 장치를 주렁주렁 달지 않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고자 하는 사람들이 의식이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죠.
우리나라 대표적 소설가인 故 김동리 선생의 부인이자 소설가인 서영은 작가는 일찌감치 이런 유서를 썼다고 합니다.
“의식이 없을 때는 절대 병원에 가지 말 것이며, 장례는 가족 친지들끼리만 간소하게 치르고, 화장한 재는 산의 나무 밑에 뿌려서 거름이 되게 해주면 좋겠다.”
시사하는 바가 크죠? 최근 이런 유언을 남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삶과 죽음의 방식이 생각납니다.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을 참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스콧 니어링은 더는 자기 몫의 짐을 나를 수 없고, 스스로 자기를 돌볼 수 없을 때 떠날 준비를 합니다. 음식과 물을 중단한 채 집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어느 날 아침 “좋아”라는 마지막 단어를 끝으로 숨을 거둡니다. 그 옆에는 물론 헬렌이 있었고요. 이때 스콧의 나이가 100세였습니다.
이들은 손수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먹을 양식을 구하고, 자신들의 생활수단을 마련하는 등 그들 삶의 철학대로 “덜 소유하고 더 많이 존재”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갔어요.
혹자는 이상주의자의 삶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테지만, 삶의 방식과 죽음의 방식을 논할 때, 이들을 하나의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MC 네, 이 책은 지금도 스테디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고 해요.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들 삶과 죽음의 방식에서 크게 감명받았다는 건데요.
바야흐로 우리 사회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향한 쟁론의 시대에 돌입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주명룡 회장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인에서 자유인으로 돌아온 유시민 전 의원이 최근 내놓은 그의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가장 유쾌한 죽음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이름 하여 ‘생전 장례식’입니다.
시설 좋은 나이트클럽이나 넓은 웨딩홀 같은 데를 빌리고, 제대로 된 출장 뷔페를 주문합니다.
선물은, 손으로 쓴 엽서나 직접 기타 반주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제한하고요.
그리고는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를 틀어놓고, 독일산 맥주 바르슈타이너나 배다리양조장 막걸리를 마십니다.
모인 이들이 서로 고백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합니다. 남은 자의 삶과 떠나는 자의 죽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당연히 사후 장례식은 없고요.
이처럼 유쾌한 죽음을 묘사한 유시민 전 의원에게 영감을 준 선구자들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열하일기》를 쓴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 선생인데요.
그는 노환으로 거동할 수 없게 되자 약을 물리치고 술상을 차려 친구들을 불러들여서는 친구들이 말하고 웃는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MC 네, 이야기를 듣는 저조차도 괜스레 유쾌해지는데요. 최근 이런 품격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서 죽음을 공부하는 분들도 늘고 있죠?
주명룡 회장 네, ‘웰다잉 칼럼니스트’라는 신종 직업도 생겼고요.
복지재단들은 ‘웰다잉 전문 강사’를 적극 육성 중이고, 전국 복지관에서는 일반인 대상 ‘죽음 준비 학교’를 열고 있습니다. 이들 복지재단이나 종교기관 외에 지자체에서도 죽음 준비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속속 개설하고 있고요.
정부 역시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에 무게를 두고 각종 정책에 이를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죠.
MC 네, 특히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홀로 사는 노인 가구가 늘고 있는데요. 모든 사람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도록 하려면, 고독사 문제나 노인 빈곤층 문제 해결에 정부가 발 빠르게 대처해 나가야겠습니다.
‘주명룡 회장의 시니어 정책, 어떤가요?’ 오늘은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말씀을 나눠봤습니다.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과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7.19
대한은퇴자협회(KA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