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모르는 사람들과 펼쳐진 순간 드라마
근착 뉴욕타임스의 “세대(generations)"섹션에 실린 글입니다.
미국 베비붐 세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어느 날 생긴 일”로 한국의 우리 세대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옮겨 봤습니다. K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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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 집 앞 드라이브웨이(drive way)에 픽업 트럭과 토요타 승용차가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그 차안에선 꾸역꾸역 여러명의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우리 집은 아주 긴 드라이브웨이 끝에 살기 때문에 간혹 차들이 길을 잃고 들어오는 수가 있어서 그러러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여기가 어딘지 알고 온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뉴욕의
뷰루스터(Brewster)를 아는 것 같았으며, 집 뒤로 크로톤 강이 굽이 처 흐르는 것도 잘 아는 것 같았습니다. |
아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뒷마당(사진)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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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리 집 뒤는 크로톤 강이 흐르고, 숭어가 잘 잡히며, 여름날엔 동네 애들의 놀이터, 수영장이 되는 아름다운 곳 입니다.
그 일행 중 유일한 여성, 중년은 넘은, 여성이 내가 풀을 뽑고 있는 정원 꽃밭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녀는 색이 흐린 초록색 상자를 가슴에 앉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 8~9명은 모두들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이 동네서 살았습니다.”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듯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여기서 수영을 하고 고기를 잡곤 했답니다.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곳 이죠.”
나는 그 상자를 바라보고 그리고 멀리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일행들을 멀거니 쳐다봤습니다. 나는 이들이 왜 여기까지 먼 곳에서 왔겠나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그의 소원은 죽은 뒤 이곳에 재를 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내 뒷뜰을 매장으로 쓰겠다고...흠.. 이를 어쩌지!
확실히 우리 세대는 이제 화장이라는 장례에 익숙해졌다. 우리의 부모들은 묘지를 사고, 꽤 고급의 오크 나무관에, 장엄한 예식의 장례를 치르곤 했다.
그러나 베비부머인 우리들은, 아직도 히피 기분이 남아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재(혼)를 바람에 날려 주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내 뒤뜰에서... 너무 하는 것 아냐..
나는 흔히 사람들이 하듯 핑계를 댄다. “저, 남편한테 물어 보고요”
집안에서 나는 피터와 짧은 대화를 가졌다. 우린 창틈으로 그들을 내다보면서. 그들은 울지도 않았고, 서로 얘기도 안하고 서 있었다.
우린 밖으로 나가 그들과 더 대화를 나눴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어디서 살았으며(길 건너 집), 어디서 돌아가셨나(덴버), 그리고 그들은 컨넥티카트에 살고 있다는 것 등. 그런 얘길 들으면서 우린 우리집 앞 드라이브웨이 서있는 이들에게 할 수밖에 없는 말인 “여러분 뜻대로 하세요” 라 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긴 10분가량을 뒤뜰에서, (우리는 애들 셋과 함께 그들을 바라보면서, 애들이 놀랠까봐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 해 주면서) 황당한 10분을 보냈다.
“저 사람들 가족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들이야, 강에 독약을 뿌리고 있다고”
큰애 샘이 말 한다. 9.11 이후로 얼마든 가능한 얘기다. 우린 얼른 샘을 달래면서 우리 쪽으로 오는 그들을 바라 봤다. 그녀는 나를 껴안고 고맙다고 하고 는 모두들 떠났다.
인간 드라마, 전연 모르는 사람들과 벌어진 드라마는 끝났다.
피터와 나는 빨리 집 뒤 강으로 갔다. 재와 같은 것이 강가에 보였다.
바람에 다시 날라 왔나? 이 사람들이 강에 안 뿌리고 정말 뒤뜰에 뿌렸나?
우린 지극히 불안했다. 우린 애들에게 당분간은 강가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리의 막내 죠수아는 그 후 며칠 혼자서 못 자겠다고 했다. 이런 나이 애들은 학교 버스가 공동묘지를 지날 때 버스 의자를 꽉잡고 무섭다고 하는 애들 나이다. 그런대 우리 뒷마당이 묘지가 됐다니... 죠수아는 그 할아버지가 강가에서 자기를 잡으려고 기다린다고 무서워했다. 사실 우린 전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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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쯤, 우리 가족은 이 사실을 잊어가기 시작 했다.
화장, 많은 종교로부터 찌푸림을 받던, 그 화장 문화가 미국사회에 널리 퍼지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2004년에 30%가량이 화장을 택했다. 그리고 이 화장률은 점 점 더 올라 갈 것이다. 이 현상은 주 마다 달라서, 와싱톤 주는 65%가, 오레곤주는 62%, 아리조나주는 57%등이다. 뉴욕은 23%, 뉴저지 28%로 서부지역의 화장률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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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수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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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의 베비부머들이 또 다른 장례(화장)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인생이 끝날 때쯤 대개 17개주 거리만큼 먼 곳에 가족들이 떨어져 살고 있죠.” 장례관계 일에 근무하고 있는 슬라콤 씨의 얘기다.
그런데 이 얘기가 바로 우리 집안 얘기처럼 돼 버렸다.
은퇴해 아리조나주에서 살고 계시던 시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화장된 시아버지의 재가 우리 집에 도착한 것이다.
추운 2월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케츠킬(Catskill)의 강가로 운전해 올라갔다. 얼음 에 뚫은 낚시구멍을 통해 시아버지의 재를 뿌리기 위해서.
케츠킬의 비버킬Beaver Kill River)강은 시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가족들과 자주 놀던 곳이라 한다.
우리는 계속 운전해 올라가서 좋은 지역을 찾아보려했다(우리 집 뒤를 이용한 나그네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이름 모를 다리 부근에서 우리는 차를 세우고 강으로 내려갔다. 피터가 초록색 상자를 열고 플라스틱 백을 꺼냈다.
이건 재가 아니었다. 고양이 밥처럼 거칠었고, 수족관의 작은 자갈들 같았다.
우리는 그때 깨달았다. 그 우리 집 뒤에서 본 것 같았던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것이 그 할아버지의 재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 늘 불편하게 가상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죽음 이라는 것이 집과 너무나 가깝다는 일이었다.
한국의 화장률은 65%에 달하고 있다.
미국보다 훨씬 높다. 국가의 화장 장려와 불교영향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베비부머들이 노년층의 정점에 이르르는 2~30년후부터는 우리의 장례문화도 더 많이 변할 것이다.
<도움말>
| Driveway : 자기 집 차고에서 집 앞 도로까지의 자동차 길 |
| Pick Up Truck: 뒤에 짐을 실게 만든 차. 농장 같은데서 많이 사용 |
| Brewster : 뉴욕 시 에서 45마일 정도 북쪽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 |
| Catskill : 뉴요커들이 휴가 가는 산악 지대. 한국인도 많이 감. |
| Bever kill River :케츠킬 산속에 흐르는 강. 뉴욕, 펜실베니아, 델라웨어를 거쳐 대서양으로 흐른다. 뉴욕 인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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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한국인들이 켐핑, 낚시, 스키를 간다.(케츠킬, 포코노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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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베이비부머들에게 새롭게 유행하는 장례문화(0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