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의 도전은 내일도 계속된다..
한국우주인 선발 1차 통과, 5년간 마라톤 풀코스 12회 완주 총 952.8025km, 보스톤 마라톤 참가권 획득!!
63세의 열혈청년, 고재덕님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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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에 있었던 압록강마라톤 참가중에 멋진 포즈 한컷(주인공 고재덕님은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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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에는 어떻게 응모하시게 되셨어요?
“늙었다고 도전 못할 것이 없습니다.
서류심사, 체력검정, 필기시험을 통해 300명을 뽑는 데, 꼭 성공해서 나이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편견을 깰 것입니다.”
투쟁 없는 인간은 비참한 것이며, 승리없는 인생은 비참한 것이다.
사자보다 느린 말은 잡혀 먹히고 말보다 느린 사자는 굶어 죽는다.
늘 가슴에 품고 있는 금언이다.
오늘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분의 용기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지난번 시험감독관 참가여부로 희비가 엇갈렸을 때 KARP자유게시판에 이런 흔적을 남겼다.
(물론 그는 참여가 확정되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젊고, 책임성있게, 멋지게 살렵니다.
보스턴 마라 톤 참가권을 획득했으니 내년에 꼭 보스턴에 참가할것이며,8월12일 100km 무박 울트라마라톤출전합니다.
반드시 성공할것입니다.
선배회원님들의 많는 지도편달 바랍니다.
그리고 KARP 자유게시판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신 분이 낙담된다고 하였더니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마시고 계속 노력하시기 바랍니다”고 응원해 주었다.
그분다운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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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계속되는 고재덕님의 도전을 보면서
혹 나이가 들었다고 지레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핑계나 변명을 들이대며 주저 앉아버린 것은 아닌지.
채찍질해본다
고재덕님!!
꼭 우주인에 최종선발되셔서 나이듬이 절대 좌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세요
아자! 아자!
오늘도,, 내일도,,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쭈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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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에 제천에서 있었던 알몸 마라톤 모습
왼쪽에서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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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뉴스의 해드라인은 협회에서 정한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뉴스에 고재덕님 이야기를 싣겠다고 하였더니 수기와 사진을 보내면서 고재덕님이 쓴 것이다.
그렇다! 늙었다고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결코 포기해서도 안된다.
아래 수기는 압록강 마라톤에 참가한 후 고재덕님이 직접 쓴 것이다.
이 수기는 최우수작으로 입상하였다.
압록강마라톤참가수기.(2006.5.7.행사 ,최우수작입상)
1.뱃고동소리
인천연안부두에서 출항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승선했더니 정작 출발은 1시간 지연되어 떠났다. 중국인은 시간개념이 아직도 없나보다. 퇴색한 1만톤급 페리호가 상어처럼 입을 벌리고 인간이든 화물이든 지게차든 집어 삼키더니 둔탁한 뱃고동을 내며 인천항을 미끄러진 후 북서쪽을 향해 달려본다. 부두엔 전송할 사람있을 리 없고 갈매기떼 만이 공해상까지 전송해준다. 갑판위에서 던져주는 새우깡을 날쌔게 낚아챈다. 엔진소리 때문에 잠못이뤄 갑판위에 나가봤다.
"창공에 빛난별 물위에 비치니 바람은 고요히 불러오누나, 내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 "불러본다.
칠흑 같은 밤바다 위를 겨우 18.6노트로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간다.
빈자(貧者)의 여행은 서럽지만 그런대로 낭만이 있어 즐겁다.
2.압록강변에서 한판
호텔에서 출발장소에 1시간 전에 도착. 제1회라 그런지 행사준비와 봉사방식이 아직은 미숙하다.
이동식 화장실도 없고, 칩도 전자패드도 없고, 단동시 여자 부시장의 권총소리로 출발했다.
2200여명중 한국인이 200명도 정도지만 우승보다 역사적의미를 갖고 배번 21042를 달고 하프를 뛰었다.
가마동은 혼자라 외롭지만 가톨릭티셔츠를 입고 달렸다.
중국인들은 손을 좌우로 흔드는 자, 고개를 앞뒤로 끄덕끄덕거리는 자, 발을 힘주어 꿍떵거리는자, 한결같이 기합소리를 내며 달리는 자 등 가지각색이며,우리 최코치나 박코치가 교정해줬으면 좋겠다.
여자는 극히 드물었으며, 응원객은 중국민속악기와 민속춤으로 요란했으며, 음료수는 물컵없이 패트병채로 주어 두어모금마시고 던지면 아낙네들이 잽싸게 가져간다. 더운 초여름날씨인데도 구경꾼들은 묵직한 오바,가죽잠바를 걸친체"짜이올짜이올(힘내라)"를 연호한다.압록강을 우측으로 끼고 압록강철교밑을 지나 강하구로 달렸다.압록강물은 황갈색에 물살이 쌨다.신의주뚝에서 북한주민들이 손을 흔들어댔다.다음에는 단동이아닌 신의주에서 달렸으면 좋겠다.우리는 위하도 끝에서 이성계회군처럼 반환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 결승점에 꼴인했다.우승은 모두 중국인에게 뺏겼다. 하프를 국가대표급들이 70분대에 꼴인하니 기죽여준다.우리팀 입상은 엄두도 못내고 한국인중 25위로 겨우 01:49:13에 땡 !
압록강 총길이 925km로 국내에서 최장,깊이 123m,큰강폭 2000m,중국과북한과 국경하천으로 103개섬중 북한이 100개관리.압록강철교는 총연장944.6m로 한국전때 북한부분만 1/2 이 폭파되었으며, 현재 관광명소로 이용중.이성계는 고려우왕으로부터 명나라를 치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1388년5월20일 위하도에서 회군하여 쿠데타를 일르켜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씨조선을 창건했다.
3.백두산 천지를 눈앞에 두고
단동에서 통화까지 장장 9시간을 비포장도로를 달려 통화(通化)에 도착,1박 후 백두산으로 향했다.
중국농촌은 우리의 60년대 보릿고개 같다. 모두 흙담집인데 집마다 커다란 간판(문패)을 부쳤고 마당구석에 옥수수창고가 있다.강우량이 적어 벼농사보다 옥수수가 적격이다. 저런 집에 빈대와 모기는 얼마나 많을 가
식구가 모두 들에 나가 낮에는 텅텅 비어있고,다만 오리 20여마리가 주인이 간섭않더라도 아침이면 개천에 스스로 나갔다가 해저물면 줄줄이 집을 찾아온 것이 신기하다. 위생시설도,문화시설도,교육혜택도 없이 정치에는 관심없고 먹고, 자고,짝짓기만하며 동물 본능적으로만 산다.
조상의 묘소처리는 유골을 묻고 모래성을 쌓은 후 꼭대기에 막대기만 박아놨다.
공자의 나라에서 효(孝)는 팡게친지 오래다. 어쩌면 이런 삶이 골치 안아파 행복해 보일지 모른다. 우리가 풍요하다는것을 여기와서 깨달았으며, 감사할뿐이다.
6시간을 휴식없이 달려 백두산입구에 도착하니 갑자기 춥고 소나무,자작나무,잡목들이 울창하여 금방으로라도 맹수가 나올것같이 음산했다. 해발 2500m지점에 나무로 생계를 이어가는 송강하(松江河)라는 도시가 나타났는데 도대체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공동도시다. 산불방지에 무척 신경썼으며, 찦차 6대에 분승한후 천지 정상을 향해 빽빽한 원시림숲속을 달렸다. 눈이 가슴까지 쌓였고 아스팔트길이 좁아 일방도로를 엉금엄금기어갔다. 천지 800m 전방에 도달하니 도로가 끊겨 행군해야하는데 중국경비원이 사고예방을 위해 차단시켰다. 정상은 흰눈과 구름속에 떠있어 백두산(白頭山)이란 의미가 있는것 같다. 일생에 한두번 올까말까 한 기회이므로 돌격앞으로했지만 실패다. 잘못했다간 삼천궁녀꼴될것같아 눈물을 먹음고 포기했다.백번왔다가 두번 성공한다해서 백두산이란 말도 있다.
천지는 속세에 오염된 자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것 같다.
너무나 아쉬어 눈밭에서 뒹구는자, 함성을 지르는자, 흰눈을 병에 넣는자, 소주를 마시며 "선구자"를 부르는자, 모두 떠나길 주저했다. 압록강,두만강,중국 송화강의 발원지가 이백두산이다.
하산하여 대협곡으로 향했다. 빙하가 지나간 자국으로 130m 낭떠러지에 풍수에 씻긴 바위들이 칼날같이 서있고 손가락으로 건들기만 하면 넘어질 것 같은데 수천년을 버티고 있으며 꼭대기에 소나무한그루가 지조를 지키고 있어 조마조마하다.
너무 장엄하고, 신비하여 민족의 영산으로 추앙받을 만하기에 남북한 국가(國歌)가사에 공히 이"백두산(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부름)"이란 말이 들어있다.
4.존경하는 광개토대왕님비,장수왕능
광개토대왕비는 후세에 중국인 자기땅이라고 우기는 것을 막기위하여 집안시(集安市) 들판에 말뚝을 박아 놓았는데 역시 예상했던데로 중국인이 되게 우기니 되놈은 되놈인것같다. 고구려때 연개소문이 당나라군을 살수에서 쳐부수고, 광개토대왕이 소국으로서 만주벌판을 정복할 때 대국에 대항할 정도의 군사력과 전술전략이 상상만해도 대단하다. 그광활한 만주땅을 중국에 빼앗기고. 이제는 그 비마저 중국변방의 부족국가작품으로 조작하려니 이문화재마저도 뺏길가 두렵다.
먼조상들이 개척한 땅을 뺏긴 우리 후손으로서 부끄러울뿐이며,좁은 땅에서 우리 식구끼리 싸우니 조상 볼 면목이 없다.김일성이가 이실지를 회복하지 않고 남쪽의 동족에게 총뿌리를 겨눴다는것을 이분이 아셨다면 무척 호통맞았을것이다. 이분이야 말로 민족의 태양이시다.특히 오늘날 정치인들이 이곳에 많이 와서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고 그 마음을 새겨서 광개토대왕처럼 큰 인물로 변화했으면 좋겠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제19대왕으로서 재위 391∼412동안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고,사후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며, 재위기간 고구려의 영역을 크게 확장시켜 서는 요하, 북는 개원(開原)∼영안(寧安), 동는 훈춘(琿春), 남는 충주중원(고구려탑이있음)에 이르렀다.이분이야말로 진짜 민족의 태양이시다.1대에서 19대 까지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인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비석이 광개토대왕비이다. 이 비석은 사면석 비(四面石 碑)로서 집안시(中國 吉林省 通化專區 集安市)의 시청소재지인 통구성(通構城)으로부터 동북쪽 약 4.5km 지점인 태왕촌 대비가(太王村 大碑街) 들판에 서 있으며, 비의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대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태왕릉(太王陵,광개토대왕능)이 있으며,200m떨어진 곳에 장수왕능이 12.4m 높이로 피라밑 처럼 버티고 있다. 현재는 1982년에 중국 당국에 의하여 새로 건립된 비각 속에 있으며, 비 주위에는 철책이 설? 〉퓸?있다.
너비 1.35m∼2.0m, 높이 6.39m에 달하는 한국 최대의 크기로 개석(蓋石)이 없는 고구려 석비 특유의 형태다. 비신의 사면에는 한예(漢隸)의 팔분서(八分書)에 가까운 고구려 특유의 웅혼한 필체로 14∼15cm 정도 크기의 문자가 음각(陰刻)되어 있으며, 현재에는 5mm 깊이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비신의 4면에는 모두 44행 1,775자의 문자로 2004년7월에 UN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번 여행은 마라톤을 겸한 압록강,백두산,광개토대왕비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었으며, 어느 여행보다 즐거워서 SNB여행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훌륭하신 마라톤동호인을 만나 반가웠으며, 앞으로 우정을 나누길 원합니다.
백두산줄기마다,압록강구비마다 더듬어 봤지만 피어린 자국은 분명히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