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 노인 집단 공원" ; Twilight Zone
종묘공원의 한나절을 들여다본다.
토요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는 빼곡하게 들어찬 노인들의 인파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신문지를 깔고 누운 몇몇 중늙은이들(?),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무리, 소주판을 벌이는 형형색색의 무리, 붓글씨를 쓰는 무리들로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동상은 포위되어 있다. 엉성하고 얼마 안 남은 머리숱, 주름지고 거무틱틱한 얼굴위의 무표정, 먼 곳을 응시하며 앉아 있는 벤치 위의 노인들... 이런 인파가 12,000평의 종묘 공원을 메우고 있다.
넥타이를 맨 구식 양복의 노신사도 있고, 유행에 뒤지지 않는 고운 빛깔의 셔츠를 양복 안에 바쳐 입은 노인도 있지만, 남루하고 바랜 잠바차림의 노인이 대부분이다. 놀러 나온 듯한 젊은이들이 간간이 보이지만 그들은 ‘있을 데가 아니구나’ 싶은 듯 이내 사라져 버린다. 외눈이 나라에 짝눈이가 온 듯...
이 큰 군중의 무리는 누구의 지시나 안내 없이 모두가 무언가에 열중한다. 8개의 수도꼭지가 달린 수돗가에는 목을 축이는 노인들 곁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비누로 바지를 빨고 있다. 좁은 국악정(사각정) 주변은 토론장이다. 삼 사십명 쯤이 둘러서서 김재규 얘기에 경상도당, 전라도당하는 정치판 얘기로 열을 올리고 일본인인 듯한 한 젊은이가 대형 카메라를 들고 이런 모습을 담는다.
300원짜리 자판기가 설치된 그늘막 아래서는 한 무리가 구성진 하모니카 반주에 ‘경상도 아가씨’를 따라 부른다. 어정(종묘에 갈 때 왕들이 마셨다는 우물)주변에는 술에 취한 중늙은이 두어 명이 맨 바닥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고, 2~3명씩 신문지 위에 앉아서 큰소리로 떠들면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편의점이 있는 주차장 관리소에는 종묘공원에 어울리지 않는 ‘원두커피점이 자리 잡고 있다. ‘본 부대시설은 주차장 이용 고객을 위한 전용시설물’이란 안내문과 ‘주차장 이용 고객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협조’해 달라며 보안요원에게 제재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게시판은 역설적으로 종묘에 몰리는 인파의 성격을 단숨에 파악케 한다. 50여석 남짓 되는 Coffee Shop의 내부는 강남 못지않지만 궁색해 보이지 않는 5-6명의 노인들만이 앉아있을 뿐이다. 커피는 한잔에 2,500원...
음악소리가 요란한 곳으로 가니 음향 기구를 틀고 장구소리에 맞춰 100명은 족히 되는 노인들이 농부춤을 추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선 disco음악에 맞춰 빠른 춤이 한창이다.
3시가 넘자 모 교회의 청년 봉사대가 라면 급식을 시작하고 약속이나 된 듯이 하나 둘 줄을 선다. 컵라면 350개를 갖고 왔단다. 나무 젓가락의 겉포장을 미리 찢어내고(공원 아무데나 버릴까봐) 뜨거운 물을 일일이 부어 나누어 주는 그들이 대견해 보인다. 종로4가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는 또 다른 회사가 떡(백설기)과 식혜를 나눠주고 있다. 라면 대열보다 더 긴 대열이 천천히 움직인다. 내용이 실한 좋은 간식이라 생각되었다. 물어보니 500명분을 준비해 왔단다.
근처 포장마차는 성업 중이다. 소주 한 병에 2,000원, 안주 최저가는 3,000원이다. 둘이서도 10,000원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많은 노인들이 자리 잡고 앉아 있다. 근처 노점상은 제일 싼 1,300원짜리 장미담배가 가장 잘 팔린다고 한다.
초겨울 햇살이 나뭇잎을 비추는 5시가 조금 넘자 종묘의 군중은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누추하고 똑같아 보이던 무리들이 바깥세상의 군중들 속에 뒤섞여 또 다른 무리를 이루며 종로3가 지하철로 향한다. 종로3가(종3)는 이들이 젊은 시절에 많이 왔던 곳일 터다. 하지만 이제는 그 옛날의 종로3가가 아니고 보석상들의 골방이나 공장이 들어선 낯선 공간이다.
종묘공원은 원래 주택가였다. 18년 전인 1985년에 공원 조성이 됨으로써 종로3가의 낡은 주택들이 모두 없어졌다. 서울시는 이 12,000여 평의 공원에 41,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벤치 240여개, 수도 3개소, 화장실 2곳 등을 설치했다. 지하에는 1,40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들어서 있다. 탑골 공원이 보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일반시민공원처럼 사용되었으나 3년 전인 2000년경 탑골 공원이 보수를 거치고(질서 유지를 강요하면서) 재개장을 하면서 개방시간을 제한하자 자연스레 종묘는 노인공원화 되어갔다.
공원 관리소 측의 얘기를 빌면 날씨 좋은 주말에는 4-5천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살기 괜찮은 노인부터 끼니를 얻어야 하는 노인까지 여러 층이 몰려든다. 이들은 대개 안국동 부근에 있는 복지관이나 종묘에 나오는 자선 기관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여러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 때문에 부지런하면 간식도 해결 할 수 있다. 1호선, 3호선, 5호선의 3개 지하철이 만나고, 7,8,9,10,11 등 여러 개의 출구가 종묘로 향해 있다. 11번 출구에서는 불과 수십 미터 거리다.
나는 귀국한 후 종묘공원을 10여 번 찾았다. 그리고 매번 3-4시간을 그 무리들 속에서 지내곤 했다. 은퇴자협회를 한다는 내가 과연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노인집단 공원’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다. 대답은 매번 달랐고 이제는 무뎌졌다. 그래도 습관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이곳에 와보곤 한다.
New York 의 Central Park, Tokyo 의 Shibuya 공원, London의 Hyde Park, L.A.의 McArthur Park 등에 들렸을 때도 homeless(노숙자)들은 봤지만 ‘노인집단 공원’은 보지 못했다. 종묘를 메운 이들은 복지관도 경로당도 마다하는 제3의 그룹이다. 갈 데가 없는 사람들도 아니다. 술에 취한 몇몇이 남아 있기는 해도 밤이 되면 그 많은 사람이 다 사라진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 사회를 일궈온 많은 사람들이 막다른 길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고 그저 방치하는 소극적 행동이 사실은 가장 적극적으로 이들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란 걸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불행한 다수가 형성될 때 우리 자신만은 행복한 예외가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시민사회는 기꺼이 소외된 자들을 위해 행복한 예외의 주머니를 비우게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어려운 상황에서 종묘에 시선을 돌려야하는 이유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그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묘공원으로 가 보시라. 당신이라면 그곳에서 노년을 허비하고 싶겠는가? 바로 그곳에서 몇 천 명의 노인들은 매일매일 시간을 죽이는 것이다...
>>사진으로 보는 종묘의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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