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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쿰 회사”이야기
스크큼사는 미국 시애틀 북서쪽에 위치해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스크큼에 근무하는 600여명의 직원들은 평균 연봉 3만 5천여 달러씩을 받고 있다. 직원 중 2~3%는 7만달러 이상을 받고 있다. 시간제로 일하는 직원들도 12달러에서 38달러에 이르는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이 정도 급료는 미국 평균 최저 임금이 6불선임을 비교할 때 대단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크큼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다 정상인은 아니다.
51살 먹은 여성 윌리는 바이폴러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를 수시로 일으키는 증상으로 윌리는 사회보장성이 주는 장애연금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취직은 엄두도 못 내고 살아있다는 것을 원망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어느 날 윌리는 스크큼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윌리는 채용이 됐으며, 현재는 청소부로 근무하면서 또 다른 신규 채용인들의 업무코치로도 일하고 있다.
이제 설립 18년째를 맞고 있는 스크큼사 명칭은 미국 북서부에 거주했던 인디안 언어다. “강하고, 잘 만들어지고, 잘 지어진”이란 뜻을 스크큼은 담고 있다. 맨 처음 스크큼은 줄넘기를 만들어 판매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청소업, 재활용업, 조경, 자동차 정비, 화장실 사업까지 하고 있다. 또 다른 사업부는 석면제거, 곰팡이 납 제거 등의 환경산업에까지 진출해 왔다.
대개의 비영리 단체들은 기부금과 정부 지원 등에 의지하고 있으나 스크큼은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판매의 이익금으로 이들의 급료를 주고, 고용훈련을 통해 자립하도록 돕고 있다.
설립자 웨스톨은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급료를 주며 고용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회의 저변에 있는 계층을 돕고, 안전하고 계속적인 지원이 되는 직장의 제공입니다. 우리는 투자에 대한 사회적 환원을 늘 말하며, 이것은 보잉사가 투자금에 대한 이윤을 얘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라고 말한다.
짐 웨스톨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1988년, 10평이나 될까한 주차장에서 고등학생들의 취업 훈련을 위해 색을 입힌 구슬을 실에 꿰었다 다시 빼는 훈련을 가르칠 때까지는 이런 사업이 될 줄은 몰랐다. 어느 날 구슬을 꿰는 줄을 갖고 학생들이 줄넘기를 하는 것을 보고 웨스톨은 구슬을 꿴 줄을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기 집을 잡혀 3만 달러 융자를 얻은 웨스톨은 줄넘기 회사를 차렸다. 주문을 얻기 위해 전국 학교와 가게마다 안내서를 보내고 발송했다. 3명의 직원을 채용해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인 웨스톨은 학교가 끝나면 공장에서 때로는 새벽까지 일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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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용 창출을 위해 사회적 목적으로 세운 줄넘기 회사는 판매 벽에 계속 부딪혔다.
생각다 못해 웨스톨의 처가 모아둔 돈 1만 달러를 투자해 뉴욕에서 열린 국제 장난감 쇼에 출전을 했다. 장난감 쇼 출전은 톡톡히 투자 몫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했다.
행운은 계속 찾아와, 짐은 NBC텔레비죤의 Today쇼에 초청돼 출연하는 행운이 왔다.
주문은 빗발치듯했고, 스크큼은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스크큼의 직원들은 채용 단계 시부터 철저히 교육을 받는다. 일단채용이 되면 시간당 10불로 시작한다. 이들은 매주 평가를 받으며, 평가는 철저하게 생산목표, 생산일정, 예산, 능률적인 작업 등을 놓고 평가한다. |
| 스크큼에서 처음으로 일하게되는 직원에게 구슬을 줄에 꿰는 작업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있는 스크큼의 설립자 짐웰스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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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사회엔 스크큼과 같은 수많은 사회적 공익 기업이 존재하고 있다. 한사람의 창의적인 생각이 불우한 사람들에게 일반 사람들과 같은 주류에 속하게 해주면서 사람같이 살수 있는 직장을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외부의 지원 없이 자립을 해내도록 하는 창의적인 생각들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살만한 세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창의적 생각을 가진 NGO, 기업주들이 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Trade, Not Aid, 이것이 우리 사회에도 전염병처럼 퍼질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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