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4.09
출입국 관리소 통계에 의하면 일일평균 24,000여명이 국외여행을 떠난다. 그 중 골프를 치기 위해 골프 장비를 신고하고 떠나는 여유 있는 사람들도 매일 1,4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딴 나라 얘기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오늘 얘기다.

72년으로 기억된다. KAL에 국제선 승무원으로 탑승근무를 시작해서 동경 하네다 공항에 잠시 머무를 때다. KAL이 한참 국제선 노선을 확장하기 시작할 때라 일본 같은 가까운 노선은 하루에 2번씩 다녀오곤 하던 때였다. 공항 라운지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일본 애들 수 백명이 열을 지어 나오더니 곧장 Air France 점보기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70년 초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 많은 실업자가 우글거리고, 해외여행이란 꿈도 꿔보지 못할 때였다. 우린 막연히 이 대단한 나라의 꿈같은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가 그렇게 돼가고 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대한민국 만세!
매일 해외여행을 떠나는 24,000명 대부분은 단체 관광단이다. 비행기에, 기차에, 버스에 때로는 배에 실려서 먹고, 자고, 짐 싸고 그러다보면 피곤이 쌓인 체 귀국길에 오른다. 뭘 봤는지도 잘 모르고 열 지어서 찍은 사진만 잔뜩 있다. 이게 70년대 일본 단따이(우린 그렇게 불렀다)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신기하게도 우린 관광하는 것 마저 일본을 쫓아서 한다.
미국여행은 쉽지가 않다. 비자 받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911사태이후론 국토안보부란 것을 만들어서 모든 외국인 출입관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인은 중동인들과 뚜렷이 구별되기 때문에 비자만 받으면 미국공항 통과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미국에 가면 대개 몇 개의 도시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여행사가 그렇게 스케줄을 짜기도 하지만, 단독으로 떠나도 대개 도시에 인척이나 지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엔젤레스, 뉴욕, 시카고, 보스톤, 워싱톤 DC,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달라스. 아틀란타 등이다. 이 중 뉴욕을 안보고 오면, 한국에 와서 “서울”을 안들리고 간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뉴욕에서 20년을 살아서가 아니라 뉴욕은 보고 또 봐도 끝이 없는 도시다. 이중 맨하탄은 우편주소의 New York, New York으로서 뉴욕시(New York city)를 상징한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및 다인종이 모여사는 세계 최대의 도시다. 딘킨스(전 뉴욕시장)는 뉴욕시를 모자이크도시(Mosaic city)라 했다. 180여개의 국가 출신들이 모여살고 있다. 24시간 살아 숨 쉬는 도시다.
맨하탄에 가게 되면 십중팔구 미드타운에 있는 32가 주변을 들르게 될 것이다. 32가는 한국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다. 퀸즈의 Flushing에도 한인 타운이 있고, 뉴저지 Palisade Park에도 한인 타운이 있지만 맨하탄 한인타운은 다르다. 중국타운보다 훨씬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
91년 초부터 뉴욕 한인들은 32가 주변을 한인타운으로 명명해서 뉴욕시 지도에 표기해 주기를 희망했다. 한인타운 명명운동은 90년 중반에 본격적으로 뉴욕시를 상대로 펼쳐졌다. 뉴욕한인경제인 협회와 뉴욕 한인회가 창구가 돼서 뉴욕시의원 및 줄리아니 시장을 상대로 로비해왔었다. 1년여가 넘는 길고 긴 여러 차례의 모임 끝에 뉴욕시는 “Korea Way"로 Broadway 32가 주변을 명명하게 했다. 이정표(Street Blade)에 Korea Town을 넣고 싶은 우리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우린 Korea Way를 뉴욕시 32가 Broadway에 달게 될 때 너무나 기뻤다. 미국의 영토에 ”Korea Way"를 만든 것이다.
흔해진 외국여행, 친척하나쯤 미국에 안사는 한국인이 없을게다.
|
|
 |
올 여름, 아니 내년이고, 후년이고 미국에 가게 되면 뉴욕을 꼭 들리길 바란다. 그래서 Korea Way를 들여다보기 바란다. 거기서 여러분이 잘 아는 박지원 전장관도, 김혁규 국회위원도 미국의 꿈을 키웠던 곳이다. 한마디 더 한다면, KARP(대한은퇴자협회)상주 사무실이 위치해 있었던 곳이다.
주 명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