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2.26
문화일보에서 통판 기사를 쓰겠다고 기자분이 전화가 왔다.
약속 날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협회를 방문했다. 사진을 족히 50여장은 찍어 갔고, 취재는 두어시간은 걸렸다. 개인에 대한 기사를 통판으로 쓴다니 꽤나 많은 지난 얘기들을 자세히 취재 했다.
자연히 내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생활, KAL승무원 생활이 화제에 올랐다. KAL은 내 인생의 제일 젊은 시절을 길게 차지 차지했다.
미국이민 생활을 하면서 “미국에 오려면 진작 더 빨리 왔었을 걸” 하는 생각을 이민 초창기 많이 했었다. 이민생활이 꼭 남자들의 군대 생활 비슷해서 먼저 정주한 사람들의 코치를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KAL타고 왔다면, 내 비행기나 동료 비행기 타고 왔을텐데 하곤 했다...
여하튼 나는 원 없이 여행 했고, 원 없이 날라 다녔다.
초창기 KAL은 비행시간을 초과해 넘기기 일 수라서 보통 한달 1백 수십시간씩 비행 하곤 했다. 승무원 비행시간은 block time 이라고 해서 비행기 바뀌가 움직이기 시작해서 목적지 gate에 도착, 멈추는 시간 까지를 계산 한다. 월봉급외에, 해외체제수당, 비행수당 등을 받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항공사의 꽃으로 꽤 좋은 대우를 받는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KAL상패를 보면 전체 비행시간이 기재되어 있는데, 9천시간 가까운 비행을 했다. 하루 24시간 계산해서 대충 1년이상을 하늘에서 살았다. 지금 다시 1년을 하늘에서 계속 살 으라면.....끔찍하다!
여하튼 나는 태평양을 200번 이상 왕복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북극상공을 날다 쏘련 영토로 들어가 쏘련공군기가 쏜 미사일을 맞고 얼어붙은 호수에 불시착하는 운도 겪었다.
이제 해외 여행차 공항에 나가게 되면, 1973년 봄, 김포공항에 처음 도입, 착륙하는 KAL의 747 점보기를 환영하던 시간, 78년 봄, 쏘련에서 생환해 돌아오던 생각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제 시속 천키로로 날던 시절이 아니건만, 왜 이리 땅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도 빨리 가는지...
크리스마스 이브날,
5주년 창립 행사준비를 하면서 잠시 생각에 빠진다.
생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용감하게 은퇴했던 젊은 시절의 스튜어드 생활, 그리고 사진으로 남은 내 마지막 비행을 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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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행기내 파티>
이 얼굴들은 지금 다 어디서 살고 있을까? 50줄을 훨씬 넘은 부모세대가 되어 있겠지.
서울로 들어오는 KAL001의 태평양 노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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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명 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