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난 항공기가 미국을 들어가는 데는 여러 도시가 있다. 그중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는 가장 TRAFFIC이 많고 한국인이 제일 많이 거주하는 도시다.
뉴욕에서 20년을 거주한 필자는 뉴욕이 제2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뉴욕 한인을 대표하는 한인회장을 거친 이유도 있지만, 뉴욕은 조국에서 살아가기에 바빠 꿈도 못 꾸던 이루지 못하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 석사 학위, 명예박사 취득(명함 뒷장에 한국에서 은퇴자협회장으로 얻은 별의별 직책을 다 나열하지만, 명예박사는 표기하지 않았다), 한인 최초 맥도날드 경영자, 뉴욕 5th avenue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 점포, 은퇴협 설립, 역이민….
이민자였지만 또한 유학했다는 자부심이 없었다면(내 노력의 댓가지만)…. 어찌 유학해 3~4년 미국 시골 대학에서 학위를 따고, 귀국해 정계에서, 학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왜 이리 뉴욕뉴욕이 빛나 보이는지….
그래서 만약에, 만약에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난 역시 New York New York으로 돌아갈 것이다.
New York New York은 맨해튼이다. 이민 초기 살던 콜롬비아 대학 브로드웨이 111가, 그리고 콜롬비아 대학 John Jay 옆 델리가게-그 가게가 중소기업인으로 성장하는 데 바탕이 되어주었다. 브로드웨이를 오르내리며 언젠가는 링컨센터에서 살아보자 해서 살았고, 뉴요커들이 부러워하는 트럼프타워에 주소도 가져봤다.
조국에 KARP(은퇴협)를 설립하고 장년층의 은퇴문화를 장착해보겠다는 미션이 조금씩은 이뤄져 가는 것 같지만, 지나간 세월을 보면서 얼마나 더 많이 노력해야 하나 할 때, 텅 비어가는 머리에 휴가 한 번 가져보지 못한 내가 자초한 삶에 혼자 버둥거릴 뿐이다.
오늘, 오랜 뉴욕 거주 지인들이 우연하게 협회를 다녀갔다. NGO 운영하느라 고생하는 줄 지레짐작하고 찾아오지 않는 그런 세상인심이라 그저 반가웠다. 밀린 얘기 듣고, 묻고….
10여 시간을 날아온 KAL기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자유의 여신상 위를 날아 락어웨이 비치를 거쳐 뉴욕의 케네디 공항으로 하강한다.
연말에 잠시 다녀올까…. 뉴욕으로 하늘을 난다.
젊은 시절, 미국을 200여 번은 왕복한 필자지만 이젠 점점 멀어져가는 태평양 너머다. 그만큼 은퇴협(KARP)이 제2의 고향으로부터 나를 떼어놓고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10월 14일 밤 (아, 내일 강촌으로 회원 나들이가는 날인데, 잠 좀 자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