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
12월 19일 우리나라의 운명을 걸머지고 나라를 이끌어갈 유능한 지도자를 뽑느냐, 아니면 나라의 운명을 잘 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나락으로 떨어뜨릴 지도자를 뽑느냐 하는 중대한 결정을 하는 날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해방을 맞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시작할 때에 서구 어느 나라의 지도자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혹평을 하였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서구 여러 나라가 200여 년 동안이나 걸려서 이룩한 민주주의를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에서 인정하는 민주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저 난지도의 쓰레기더미 위에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고 아름다운 갈대숲을 즐길 수 있게 되었듯이 말이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감옥에 가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투사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고, 그 때마다 우리 국민은 함께 나서서 민주주의를 지켜 내려고 손을 마주 잡았었다. 그리하여 지켜낸 민주주의를 우리는 좀 더 나은 정치지도자를 선택하는 안목보다는 정에 치우쳐서, 지방색이며, 학벌을 따르기도 하고, 이념논쟁에 밀리고 네거티브 전략에 속아서 잘 못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현재의 모습과 형편을 보고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 되는 순간에 ‘세계체제론’이라는 이론을 정립한 미국의 윌러스타인 교수가 국내 신문과 인터뷰에서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세계체제론에 입각하여 현재 우리나라를 바라본 입장을
“지금처럼 위계(僞計), 착취, 양극화를 재생산하는 체제와 비교적 민주주의적이고, 비교적 평등한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은 반반이다.”
“중기적으로 20~50년 이상 극심한 환란을 겪은 뒤 혼란 끝에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체제를 얻기 위한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는 것이었다.
마침 지금 우리는 바로 우리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경제를 살려주라는 염원을 담아서 [오직 경제만을 살리는 대통령]을 뽑아서 잘사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은 세계체제론에 입각하여 본다면 우리 경제는 더욱 악화되어서 더 위계에 시달리고, 비정규직은 노동계급의 하층민으로 추락하여 더 많은 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양극화는 도를 넘어서 하위 50~60%의 국민들은 살기위한 몸부림에 지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매일 벌어지고 있지만, 상위층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세계에서 가장 명품 소비가 많은 나라로 손가락질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윌러스타인 교수의 지적대로 20~50년 동안이나 기다리고 극심한 환란을 겪고 나서 새로운 질서가 오도록 까지 기다릴 것인가? 다시 말해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고, 약자들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 일을 20년 이상 50년 가까이나 더 당하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번 12월의 대선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올바른 선택으로 당장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질서를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체제를 얻기 위한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는 윌러스타인 교수의 충고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서 이번 대선에서 올바른 선택으로 더 빨리 행복한 미래를 맞을 수 있게 온 국민이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투표 결과를 보고 후회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지 말고 내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내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명하게 나의 의사를 표현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 더 많아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민주주의 의 원칙에 의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정당한 권리,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켜 나가는 가장 근본적인 의무인 투표조차 하지 않고서 뒷날 불평불만을 쏟아 내는 것은 자기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신의 잘 못일 뿐, 누구에게 원망을 할 수 있겠는가?
투표장에서 나의 의사를 표시하는 투표는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을 잊지 말자. 그리고 모두 나아가서 자신의 뜻대로 투표하자.
나의 장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