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청도>를 찾아서

결실의 계절 10월, 시골에는 일손이 없어 야단을 부리는 시기가 된다. 대대로 과수원을 경영해 온 집안이라 이번 가을에도 예외가 될 수 없었겠지만 유별나게도 금년은 추수와 대추, 감 수확이 겹쳐 더욱 일손을 필요로 하여 10월 26일 금요일을 맞아 차를 몰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며 고향 길을 찾아 나섰다.

평균 시속 130km를 유지하면서 혼자 내려가자니 지루하기도 했으나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가을 풍경에 도취되다 보니 금새 지난날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솟아났다.

첫 번째 휴식을 위해 정차한 <충주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에 오징어를 씹으며 발아래 전개된 충주 호반을 바라보면서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던 2003년 매주 수요일마다 국도로 <충주성심농아학교>를 찾아가 수화로 영상제작법을 강의하면서 농아학생들이 제작했던 <쌍둥이-농아 여형제의 꿈>이 생각났다.

또한 국내 최초로 듣도 말도 못하는 농아학생들을 위해 열성적이었던 교장선생님과 함께 야구팀을 구성하여 충북 연고지인 한화야구단의 지원 아래 전국대회까지 출전케 했던 이정표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아로 새겨져 있음을 확인케 되었다.

경부고속도로는 시속 100km에 전용차선이 있고, 호남행 차량까지 통행하기 때문에 복잡하지만 <중부내륙고속도로>는 오로지 경상도 방향 차량만 다닐 수 있으며, 최고속도 110km에 전용차선이 없어서 훨씬 편리하다 그러나 도로면의 대부분이 세멘트 포장으로 되어 지면이 곱지 못하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약 3.7km인 <문경 새재>터널을 통과할 때까지 터널 수를 헤아렸는데 긴 터널을 지나다 보니 잊어 먹었다. 다음은 <군위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로하고 진입하여 정차하기 무섭게 ‘아미새 아미새 아미새가 나를 울린다.“라는 구성진 뽕짝음악 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주변의 들판에는 황금빛을 발산하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비탈진 산에는 붉은 빛을 발하는 사과나무가 장관을 이루었으며 햇빛을 받은 산비탈에는 단풍나무와 쌍수리 나무의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풍미하고 있었다. 추수를 마친 비탈진 밭에는 허수아비가 바람에 날리면서 마치 승무(僧舞)를 연상케 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우라......”를 외어 보았다. 뜨거운 여름철 내내 새들을 쫓기 위해 헌옷으로 위장한 뒤 주야로 새를 쫓아 준 은공도 잊은 채 무정한 주인이 그냥 가 버렸구나 하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서울을 출발한지 4시간 후 대구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팔조령고개>에 당도했다. 터널을 지나면 바로 청도이며 정면으로 바라보면 맞은 편 건너 산에 자리한 어머님의 선영에서 “막내 아들 이제 오나?”하시며 반기시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가족선영을 지켜보았다.

7년 전에  별세하신 관계로 고향에는 형님 내외분과 친척분들이 살고 계시지만 어덴지 모르게 지난 날 어머님 생전보다는 방문횟수도 줄어들었고 애착마저 줄었다.

불현듯 엄습해 오는 황혼의 부루스 처럼 내 나이를 생각하게 되었고, 황혼기와 황금빛 벌판을 대비하면서 고향집에 도착했다. 

벅차게 짜여진 일정

대추는 전부 수확하여 건조기 속에서 건조 중에 있었고, 서리 맞아 본격적으로 붉은 빛을 발하는 감을 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금년에는 예년보다 수확량이 많아 몇 차례 걸쳐서 따기로 하고 차례대로 마구잡이식으로 따기 시작했다.

6명이 하루 종일 딴 것이 30kg들이 콘테이너(프라스틱 박스) 70상자를 땄다. 시중에 판매되는 상자는 겨우 10kg이라 210상자분량을 수확한 것이다.  하지 않던 일을 했던 관계로 저녁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피로가 몰려 왔지만 준비해 놓은 전어회와 물 맑은 운문사 근처에 위치한 금천산 <동곡 동동주>로  피로를 풀기 시작했다.

10시경 잠자리에 들면서 서울서 2번째 읽다가 갖고 간 <삼국지>하편을 읽기 시작했다. 위. 오. 촉의 쉴새 없는 힘의 대결 그리고 촉의 제갈공명의 뛰어난 예지력에 감탄하면서 그가 촉군을 이끌고 <남만>땅을 철수해 나오면서 <노수>강가에 이르러 행군을 중지시키고 제사를 준비 시켰다. <노수>싸움에서 잃은 아군 병사들과 <남만>인들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였다.

공명은 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모양을 만들어 강 가운데로 갖고 나가 강물에 던졌다. 이것은 영혼들을 위한 제사 밥이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만두>의 시초라고 하여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이튿날 역시 아침 식사를 빨리 마치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냇가에 위치한 과수원으로 나갔다. 반복되는 작업은 새참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6일간 계속되어 대부분의 감을 수확하였다.

지난해는 수,우,미,양,가로 상품의 중량을 재는 저울 위에 상자를 얹으며 상품을 정리해 두면 오후 6시경 농협공판장 트럭이 순회하면서 포장해 둔 감 상자를 싣고 가는 것으로 또 다른 하루를 지내게 되었는데 금년부터는 일을 줄이기 위해 포장작업하지 않고 큰 컨테이너에 담아 바로 싣고 가도록 하여 일을 대폭 줄였다.

 감나무의 五節과 五常 그리고 五色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仁宗(인종) 때 <고욤=떫은 맛이 나는 작은 감 종류>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감이 재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건시(乾枾)와 수정과에 대한 기록이 있고, 일찍부터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물에 감이 포함되어 있었고, 의식이나 제물로도 올려졌다고 한다.

 예부터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득남을 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었다. 100년 된 감나무에는 감이 1000개 열린다고 하여 감나무 고목은 得男과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더불어 ‘감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면 불행이 온다’는 속설도 있다.

酉陽雜組(유양잡조)」에서는 감나무가 五節(오절)과 五常(오상), 五色(오색)의 美德(미덕)을 지니고 있다고 찬양하고 있다.

오절(五節)이란 수(壽: 수명이 길다)·무조소(無鳥巢: 새가 집을 짓지 못한다)·무충(無蟲: 벌레가 살지 못한다)·가실(嘉實: 열매가 달다)·목견(木堅: 나무가 단단하다)을 말한다.

오상(五常)이란 文(문: 감나무 잎은 글씨를 쓰는 종이가 된다)·武(무: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로 쓰인다)·忠(충: 겉과 속이 한결같이 붉다)· 孝(효: 노인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節(절: 과일 가운데 유일하게 서리를 이기고 晩秋(만추)까지 버틴다)을 말한다.

오색(五色)이란 黑(흑: 나무의 목질이 검다)·綠(녹: 잎이 푸르다)·黃(황: 꽃이 노랗다)·赤(적: 열매가 빨갛다)·白(백: 곶감에 흰 가루가 있다)을 말한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紅枾(홍시)」는 갈증을 멈추게 하고, 심열을 치료하며, 주독과 열독을 풀어 주어 위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하며 토혈을 멈춘다』고 했다. 식료본초」에서는 ‘산후에 열이 계속 나고 한기로 인하여 팔다리가 쑤시고 아플 때 서리 맞은 감을 하루 3개씩 먹으면 낫게 된다’고 했다.

장(腸)을 다스려 주는 <홍시>의 효능

홍시는 腸(장)을 다스려 주고, 설사 치료, 숙취 해소에 효과가 있다. 「白枾(백시)」,즉 곶감은 딸꾹질 멈춤, 성대 보호, 숙취 해소, 기미 치료에 좋다. 감 껍질을 벗겨 불에 말린 「烏枾(오시)」와 감을 물에 담가 떫은 맛을 우려낸 「沈枾(침시)」는 설사 치료에 효과가 있다.  감잎에는 비타민C가 풍부한데, 봄에 감잎의 새순으로 만든 감잎茶(차)를 상복하면 고혈압에 좋다. 감을 즐겨 먹으면 피가 맑아지고, 중풍을 예방할 수 있으며,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감꼭지는 딸꾹질이나 이뇨작용에 좋으며. 야뇨증(夜尿症)에는 감꼭지와 솔잎을 섞어 달여 먹으면 좋고. 감꼭지를 약으로 쓸 때는 서리 맞은 감꼭지를 햇볕에 말려서 쓴다고 한다. 서리가 내리면 잎이 다 떨어지고 감만 남아 있어 약효가 크기 때문이다. 감꼭지를 달여 그 물을 먹으면 流産(유산)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삽시(枾澁)는 곶감을 술에 담근 것으로 갈증 해소에 좋단다. 민간에서는 오래되어 떫은 맛이 나고 당분이 적은 시삽과 무즙을 같은 양으로 섞어 공복에 하루 2회 상복하면 중풍에 좋다고 했다.

곶감을 태운 가루로는 치질을 다스린단다. 감은 차가운 성질이 있어 몸이 냉한 사람과 임신부,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고 하는데.....

뱀에 물리거나 화상,동상을 입었을 때와 옻이 올랐을 때는 감즙을, 독사에 물리거나 벌에 쏘였을 때는 시삽을 환부에 발랐다고 하니 약효험에 대해서는 증빙된 셈이 아닌가.

옛날에는 감잎으로 음식을 싸서 보관했는데, 이는 감잎에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감잎에 싼 풋감으로는 감물을 만들어 방습제·방부제·염료로 사용했고, 재목은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워 고급 가구재로 쓰였다고 한다.

<연화제> 한 장으로 만드는 <홍시>의 맛

시중에 늘려져 있는 홍시는 흠집 하나 없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익은 홍시가 아니라 감상자 속에 한 <연화제>를 넣고 약5일만 지나면 먹음직스런 홍시가 된다. 자연적인 홍시는 나무에서 직접 따야 하는데 거의가 벌레가 먹은 것이라서 상품가치가 없으니까 <연화제>로 홍시를 만들면 위생문제도 없이 깨끗하게 만들어진다.

또한 홍시 외에도 <감말랭이>가 명물로 등장했다. <청도>에서는 대량생산하는 관계로 <곶감> 만드는 사소한 일은 하지 않고 대도매로 매매하다가 몇 년 전부터 약간은 곶감형식을 빌려 감을 4등분하여 바짝 말리지 않고 반 정도로 말린 뒤 당도가 높을 때 맛도 좋고 빛깔도 좋아 새로운 상품으로 등장한 뒤 매년 일찍 동이 난다고 한다.    

전국에서 유일한 실내 <투우장>

경부선 열차를 타고 가다 동대구, 경산 다음에 나타나는 경부선에서 가장 긴 <남성현 터널>를 지나면 좌측에 유명한 <게르마늄>온천장이 나타나고 조금 밑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실내 투우장이 웅장한 모습으로 시선을 끈다.

매주말마다 실시하는 투우대회에는 일본-호주 등에서도 참가하여 명색이 국제대회로 명성을 얻고 있었으나 2008년부터는 상시대회를 개최하면서 때때로 즉석투장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7일간 일손이 된 다음 상경길로

귀경 준비하면서 감, 대추, 호박, 고추, 콩, 파 등으로 뒷 트렁크가 가득차게 실었다. 여늬 해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머물렀던 이유는 일손이 모자랐고, 상속 받은 내 몫을 직접 거둬야 함이었다..

오후 3시 강의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일찍 아침식사를 마친 뒤 청도에서 바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동대구 IC에서 경부선으로 바꾸어 타고 질주했다. 늦어도 1시 30분까지 도착해야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 갈수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1차선에서 앞차를 따라 열심히 달렸다. 구미를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진입했으나 너무나 한산하여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마치 전세라도 낸 듯 신나게 달렸다.

2012년의 가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을을 고속도로에서, 시골에서 만끽했던 관계로 아쉬움은 없었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월을 탓하는 사이에 11시 조금 지나 집에 도착했다.

                                                     2011.11. 1  박 순웅 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