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늦여름의 눈물

                                                                                                                   김병택

매 주 금요일 어느새 정든 서울 같지 않은 서울 용마산 밑자락 재래시장 길을 걷던 날, 그 날엔 이상하게 낮은 구름처럼 거리에 깔린 침묵이 답답했다.

종종 들르는 단골 식당에서 늘 웃음으로 맞이하던 젊은 여인이 시무룩하게 던진 한 마디에 그 녀의 먹구름이 내게도 덮쳤다.

‘모르세요? 살인사건.’ 아이를 둔 30대 엄마를 살해한 남자가 현장검증하는 모습이 화면을 흐르고 맛없어진 점심을 마친 후 상담소에서 아이들과도 내내 그 이야기가 화제였다.

며칠 후 태풍 “볼라벤”이 지나간 파아란 날에 입을 “X자” 마스크로 봉한 수 많은 캠페인 행렬 속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슬픈 거리를 떠내려갔다.

잠시 후 우리 상담원장님(여자)과 “성폭행 예방” 전단지를 들고 캠페인 띠를 두른 채 지하철 출구 옆에서 전단지를 돌리던 그 때, 멋진 철도공사 유니폼의 젊은 여자가 잡상인 내 쫓는 품새로 우리를 나가라고 할 때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의 뜻을 실감했다.

몇 걸음 위의 지상에서는 시민과 교통경찰까지 늦여름의 더위와 맞서며 ‘더 이상의 성폭력과 연이은 살인의 비극을 막아보자’는 절규가 거리를 덮는데 몇 미터 지하에서 젊은 여성역무원은 캠페인 전단지를 돌리던 우리에게 나가달란다.

‘당신 참 별천지에 사시네, 지금 위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아시오?’ 하는 내 말은 아랑곳없이 여전히 실실대며 나에게 여긴 이런 거 하면 안 되니 나가달라던 역무원이 순간 나의 무서운 눈길을 피해 사라졌다. 그 뒤로 곧 젊은 남자직원이 나와 우리더러 또 나가달란다.

그 순간 나는 타오르는 증오로 맹수가 되어 있었다. 영리한 원장은 어느 새 나를 끌고 갔다.

잠시 전만 해도, 졸지에 아내를 잃고 아이들과 오열하던 남편의 사진 앞에서 이 땅에 이런 일이 이제는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내가 어느새 딸 같은 역무원을 살인적인 증오로 저주하는 맹수가 된 현실에 가슴이 메어진다.

중곡동 주민들이 희생된 여인의 슬픔을 함께 하며 침묵캠페인을 벌이던 그 날 나는 낯모르는 그들과 함께 땅을 치고 실컷 통곡하고 싶은 한 마음을 확인했다.

사람이 흉기로 변하는 일이 이젠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은 끔직한 거리에 이 땅의 젊은 엄마들이 침묵의 행렬을 만들던 날 돌아오는 경춘선 전철 속에서 나는 기도한다.

이 땅의 남자들이 순결한 남자가 되게 해 달라고, 순결한 남편, 참으로 아름다운 이 땅의 아빠들이 되게 해 달라고. 그리고 나부터 이 땅의 아름다운 남자로 살아가게 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