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속도로 고령사회에 접어든 만큼 노인자살, 빈곤, 학대 및 폭력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특히 지하철 무임승차를 비롯해 노인 폄하발언, 요양시설 학대 등 최근 붉어진 사건들이 모두 노인인권과 관련된 문제지만 당사자인 노인들조차도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다. 이러한 인권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코자 지난 4월 9일, 현 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 강사이자 한국은퇴자협회 장노년권익선봉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정현(72) 단장과 만났다. 다양한 노인인권 운동과 캠페인, 강연을 펼치고 있는 조단장에게 그간의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Q. 노인인권, 쉬운 듯 어렵다. 명확한 정의와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A. 노인인권은 ‘노인만을 위한 특별한 인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노인들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보편타당한 권리다. 여기에는 소득, 노동, 복지권 모두가 포함된다. 인권은 노인이 사회 공동체에서 배제되지 않는 최소한의 권리인 것이다.

우리는 보통 노인인권하면 학대, 폭행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노인인권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붉어졌던 요양시설의 억제대(노인 손 발을 묶는 도구) 남발사건을 비롯해 고용 및 재취업의 불평등, 공공시설 이용편의 시설 부족 등도 노인인권 문제로 봐야 한다. 장애인들이 이동권, 편의시설 등을 통한 기본적인 생존권을 주장하는 것처럼, 노인들 또한 이용하기 편하게 공공 편의시설이나 대중교통 등의 제반시설 등을 생각해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인권은 학대받은 노인들을 보호하고 치료해주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라 찾고 주장해야 할 적극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Q. 최근 노인인권이 부각되는 이유와 중요성은 무엇인가.

A.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빈곤률 1위, 노인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또한 매스컴에서는 매일 노인학대, 치매노인의 증가, 베이비부머의 은퇴, 독거노인 문제를 언급한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 같은 노인복지가 국가 핵심 정책과제로 부각됐지만 아직까지 노인인권 분야는 황무지 같다.
이는 지금의 노년세대가 인권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 했기 때문이다. 결국 노인들은 자신이 겪은 불이익이 인권 침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그 곪은 상처를 계속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노인복지법 제정(1981년) 이후 노인복지는 생존권적인 권리로 인식돼 온 영향도 크다. 이를 바로 인식시키기 위해 현재 은퇴자협회와 함께 다양한 인권회복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Q. 노인인권 활동을 펼치면서 주로 어떤 내용을 강조하나.

A. 인식개선과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경제수준은 높아졌는데 노인들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낮아졌다. 왜 노인자살률과 빈곤률은 더 높아지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교육의 문제가 크다. 지금의 노인들은 해방 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 했기 때문에 인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그래서 노인복지와 인권에 대한 기본개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재교육 시스템이 절실하다. 강의를 다녀보면 노인학대 상담·신고 전화인 1577-1389를 모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노인인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변화도 시급하

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노인문제를 가족, 내 일로 국한시키려는 경향이 남아 있어 노인인권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아무리 좋은 복지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도 인권에 대한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정책적 접근과 실천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Q. 인권의식을 높이기 위해 교육 외에 대안이 있다면.

A. 사회적 인식변화가 우선이다. 노인인권을 대할 때 ‘지금 노인들의 권리가 미래 나의 권리’라는 사회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이 실시돼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노인복지는 배려적인 차원이 아니라 자선적인 성향이 강하다. 노인들을 위한 경로석, 노인전용 극장이나, 카페 등이 단적인 예다. 얼핏 보면 어른들을 위한 배려일지 모르지만 노인들을 사회적으로 단절하는 것이다. 경로석이 아니라 격리석이 되는 셈이다.

가정의 관심도 필수요소다. 노인들이 소외받고 차별받는 대부분의 장소가 바로 가정이다. 피해 노인들은 가족 간의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상호간의 교류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나 노인보호기관이 긴급출동, 응급조치, 일시보호, 상담 등의 인권보호 정책을 아무리 펼쳐도 가족의 도움 없이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마지막으로 노인 스스로 인권을 바로 알고,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를 잘 실천하고 있는 예가 ‘노인인권지킴이단’이다. 일상에서 노인 스스로 차별, 인권침해 사례를 찾는 능동적 활동을 펼친다. 이는 인권위를 통해 노인인권 정책 수립 과정에 활용되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A. 노인들 스스로 “이 나이 먹어서 뭘 하겠어”라는 식의 자포자기(自暴自棄)는 버려야 한다. 이 나라를 무역규모 1조 달러가 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만든 번영의 주체가 바로 우리 노인들이다. 무엇보다 나이 때문에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노인인권은 노인이 인간다운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마땅한 권리다. 특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성을 보장해 주는 기본 권리를 마땅히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 노인들이 받는 혜택은 우리가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한 댓가를 정당하게 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어깨를 펴고,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글=안종호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