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장 자끄 티보(Thibaud)는 50년 대 중반 연주 여행 중 비행기 사고로 알프스 산에 딸과 함께 묻혔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70년 대 중반이어었습니다.  애지중지 하던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도 같이 묻힌 것이지요.

그는 피아니스트 코르드, 첼리스트 카잘스와 함께 피아노 트리오를 형성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곡인 '대공'은 아주 유명하여 제가 20대 초반부터 즐겨들었던  곡입니다.  

그는 파리 음악원을 졸업하고  잠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어느 겨울밤, 연주를 마치고 악기를 챙기던 중 웬 중년의 사나이가 다가와 같이 한 잔 하기를 청합니다.  기꺼이 승낙하고 둘이 마주 앉았습니다.  그 사나이가 먼저 입을 엽니다. '어떻게 그리 아릅답게 연주를 하죠?"

그 후로 음악 , 문학 등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날이 새어 새벽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주로 그 사나이가 했습니다만.

둘은 밖으로 나와 헤어지게 되었는 데, 이 사나이가  젊은 티보에게 하는 말이 " 여보게, 삶이 오늘 처럼 안개가 자욱하더라도 저 상록수처럼 푸르름을 항상 잃지 않아야 하네." 하고 코트 깃을 올리며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티보는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 자기의 하숙방으로 돌아와 정신 없이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오후에 잠을 깨어 신문을 보니 평소 자기가 좋아하던 상징파 시인 '베르네르'가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보도와 함께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바로 그 새벽에 헤어졌던 그 사나이었습니다.  그는 울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슬픔과 왜 좀 더 이야기 시간을 끌지 못했는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친 것이었습니다.

티보의 연주를 들어보면 슬픔이 깔린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시인 김영랑의 '찬란한 슬픔'이라고나 할까요? 일찌기 젊은 시절의 심적 고통의 경험은 에술에 있어서 그 영향이 매우 크다는 알 수 있습니다.

에피소드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애국가의 작곡자인 안익태 선생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문하생에서 그의 추천으로 지휘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어 파리 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티보와 함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게 되었습니다.  연주 중에 안익태는 청중을 향하여 이렇게 코멘트를 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이 티보 선생의 연주가 있었는 데 입장료는 당시 미화로 1달였습니다. 그 돈이 없어서 저는 밖에서 기다리다 나오는 사람들에게 연주의 내용을 질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이 위대한 연주자와 협연을 하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청중의 박수소리가 진동합니다. 하나의 드라마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오늘 같은 겨울의 흐린 날 이른 아침,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이 티보의 연주를 들으며 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