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장의 설전

김 병 택

요즈음 경춘선 복선 전철 덕분에 서울나들이가 수월해져서 생활이 한결 편리해졌다.

나는 각종시험감독도 종종 하고, 가정폭력상담소에서 결손가정 아이들의 심리치료 상담도 한다. 자연히 경춘선 전철의 톡톡한 수혜자가 되었다.

며칠 전에도 상경하여 가정폭력상담소에서 몇 시간 동안 꼬마들이랑 신나게 놀아주고, 곧바로 전철을 타고 춘천에 도착했다. 초저녁에 옛날 퇴근기분에 젖어 남춘천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행운의 빈 좌석에 잽싸게 앉아 읽던 책을 펼치니 하루가 즐거웠다.

저녁 귀가 시간이라 버스가 만원이었다.

대부분 젊은이와 학생들이고 지긋한 어른들은 쌀밥에 콩 얹은 듯 몇 명만 보이는 만원버스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데, 나 보다 약간 위로 보이는 노장이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가누며 "요즘 젊은 학생은 노인을 대접할 줄 몰라, 도대체…" 운운 하자 버스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술기운일까? 약간 상기된 노장은 근엄한 목소리로 버스 안의 학생들과 젊은이들을 압도하며 다음 훈계를 날리는 순간이었다.

약간 떨어진 출입문 곁에서 착 갈아 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거 말씀 좀 삼가 합시다. 학생들이 뭐 잘못 했소?" 점잖은 말투의 핀잔이었다.

"아니, 나는 어디까지나 젊은 애들이…" 소리는 크지만 어느새 선제공격에 움츠러들어 약간 꼬리를 내린 모양새다.

이 토론도 아니고 싸움도 아닌 설전에 이미 버스 안의 모든 시선과 관심이 두 사람에게 온통 쏠렸고 긴장감마저 돌았다. 젊은이 훈계파인 노장은 처음의 근엄함을 보이며 젊은이는 노인을 당연히 알아 봐야 하며, 경로사상이 어쩌고 했지만 어쩐지 그 힘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 보였다. 마치 공격을 당하는 멍멍이가 점점 꼬리를 내리며 방어를 위하여 겨우 으르렁거리는 모양새다. 반면에 처음 차분하게 핀잔을 주던 노장은 점차 강하고 날카롭게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보시오, 당신이 학생들에게 해준 것 있소? 학생들은 돈 주고 탔는데 당신은 얼마나 더 주고 탔소? "

한층 더 위세가 꺾인 모습이 된 노장은 "아니, 나는 어디까지나 내가 앉으려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가…"운운했지만 이미 버스 안의 말없는 관중들은 결말을 다 알아버린 듯 했다.

핀잔을 주던 노장의 소리가 어느새 비슷한 동년배의 노장을 향해 날카로운 질타로 이어졌다.

"여보시오, 늙은 것이 자랑이오? 그런 식으로 세상 살려면 그만 두시오. 우리가 왜 젊은이들에게 큰 소리요?" 하더니, 연이어 결정타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늙으면 안 됩니다. 젊은이라고 당신에게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나이 들며 그렇게 살지 맙시다."

대강 이렇게 끝이 나고, 잠시 후 꼬리를 내린 노장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두 노장의 설전을 생각하며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걷는 발걸음이 몇 시간 전에 서울의 거리를 상쾌하게 걷던 때와는 다르게 갑자기 무거워졌다. 두 노장의 설전이 떠오르고 숨죽인 긴장감이 돌던 버스 안의 많은 눈망울들이 떠올랐다.

“학생들 앞에서 설전을 벌인 두 노장은 지금은 어떤 심경일까?”

“한 마디에 대한 대가를 그토록 톡톡히 치르고야 만 그 분은 지금쯤 얼마나 참담할까?”

“하긴, 상처만큼이나 큰 교훈을 지닌 채 살아갈 것이 아닌가?”

민망한 설전을 벌이던 두 분의 모습에 나를 대신 놓아보기도 한다. 학생들 앞에서 두 노장은 이미 모두 패자인 것이 언짢고 슬프다. 그냥 쳐다만 보고 있던 나 스스로에게도 괜히 자괴감이 든다.

벌써 까맣게 어두워진 밤과 함께 심각한 상념에 빠진 발걸음이 제 멋대로 유혹한다. 나도 모르게 집에 가는 방향을 돌려 먹자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핑계 김에 한 잔 같이 할 녀석을 떠올리며 휴대폰을 더듬는다.

“지금 한 잔 안 하면 기분이 쉽게 안 풀리지. 암 그렇고말고.”

우울한 노장은 그 두 분 뿐이 아님을 새삼 떠올리며 한 잔의 핑계거리로 삼아 잔을 부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