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파트는 6층에 있다.
몇 년 동안 나는 운동삼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인 정형외과 교수한테 물었더니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당장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계단 오르기와 같이 규칙적으로 관절을 자극하는 운동은 장년층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다.
그냥 울퉁불퉁한 산길을 짧게라도 걸어보라고 했다.
꾸불꾸불한 길, 높낮이가 고르지 못한 길을 걷는 게 전신에
고루 자극이 전달돼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규칙성과 건강과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철학자 칸트는 청소년기때부터 심근경색을 앓았던 병골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의사들은 그가 사십을 넘기면 기적이라고
진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팔십까지 살았고, 연구가들은 그 이유를
그가 평생을 두고 실천했던 '규칙성'에 두었다.
그 규칙성 뒤에는 칸트의 충직한 람페라는 하인이 있었다.
진정한 시계인간은 람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주인이 일과를 착오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정해진 시간을 알려주었고 미적거리거나 주저하면 가차없이 달려들어
우악스런 손길로 그를 몰아세웠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칸트는 충직한 하인 람페를 해고시켰다.
후임자는 람페보다 모질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말면의 칸트는 시계같은 규칙성보다
약간은 온건한 불규칙성을 향유했다.

이런 가정이 가능할까?
당시의 의료수준을 고려할 때 분명 희귀한 장수그룹에 속할 팔십수를
누린 칸트, 그런 그곁에 람페가 더 자리를 지켰다면
칸트는 더 오래살았을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그가 팔십의 장수를 누리고 '좋다!'고
말하고 세상을 뜰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말년에 즐긴 온건한 불규칙성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들도 말하듯, 우리의 건강한 신체를 최선의 상태로
유지시키는 조건은 규칙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때때로 시도하는 불규칙성이 타성에 젖은 신체를
흔들어 깨우는 역할을 한다.


*이왕주 교수 / '불규칙의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