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 원효의 구도 행적 …백제 기와 400년 미학

경주·부여 국립박물관 선 굵은 문화재 기획전

국내 문화재 전시의 아쉬움 가운데 하나가 명확한 주제나 특정 유산의 통사를 포괄하는 ‘선 굵은’ 기획전이 드물다는 것이다. 정리된 사료의 부족과 기획 역량의 한계 등으로, 주제가 모호한 명품, 발굴유물 중심의 짜깁기식 전시가 많았다. 모처럼 이런 한계를 벗어나려는 도전적 전시회들이 눈에 띈다. 국내 최초의 역사인물 탐구전을 표방한 국립경주박물관의 특별전 ‘원효대사’(11월21일까지·054-740-7518)와 백제의 400년 기와 역사를 처음 집대성한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와전’(12월5일까지·041-833-8562)이다.

원효대사전
저술 ‘판비량론’ 필사본 눈길
헤어졌던 ‘금석문’ 한데 모아

원효대사전은 한국 사상 가장 탁월한 불교사상가의 한명이었던 고승 원효의 어록과 문헌으로 가득하다. 7세기 동아시아 지성계의 슈퍼스타로 추앙받았던 원효(610~680)의 발자취가 어린 유물과 문헌들을 어렵게 끌어모아 구성했다. 단연 뛰어난 볼거리는 전시장 후면에 있는 고승 원효(610~680)의 저술 <판비량론> 필사본(일본 오타니대 소장)이다.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온 중국 고승 현장의 불교 교리 해석을 유일하게 비판한 이 저술의 필사본은 얼핏 단아한 수백년 전 서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8세기 원효의 저술을 정성껏 베껴 일본에 건너간 유일본이다. 당시 이 본을 소장하게 된 일왕(덴무왕)의 왕비가 직접 직인까지 찍은 사실을 알면 다들 놀라게 된다. 행서체로 거침없이 흘려쓰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은 유려한 글씨체가 시선을 잡아끈다. 학계는 글씨체 수준으로 미뤄 신라인이 써서 일본에 건넸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해골물을 마신 일화로 유명한 원효와 의상의 유학 동행기를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극적으로 재현한 두루마리 그림도 등장한다. 일본 교토 고산지(고산사)에 소장된 12~13세기 그림인 <화엄종조사회전>의 복제본이다. 원본이 아닌 복제본이지만 원효가 의상과 의기투합해 유학길을 떠났다가 무덤 속에서 귀신을 만나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 의상의 당나라 유학과 선묘와의 로맨스 등이 극적인 구도로 묘사되어 어떤 자료보다도 생생히 원효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원효의 행적을 새긴 9세기 초 금석문 자료인 서당화상비는 동국대가 위편을 소장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래편을 소장했던 것을 이번 전시에서 처음 한데 모았다. 걸출한 업적에 비해 국내에 남은 실물 자료들이 별로 없는 만큼 출생부터 입적까지 그의 생애를 자기 고백담 식으로 풀어내면서 일본 쪽 사료를 공들여 수집한 노력이 돋보인다.

백제와전

한성시기 문양 중심에 놓고

아스카-신라-고구려치 비교

 연꽃무늬로 대표되는 백제문화는 선이 부드럽고 우아한 율동과 반전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으로 꼽히는데, 이번 전시의 중심은 사비, 웅진 시기 기와와 크게 다른 한성백제 기와의 재발견이다. 풍납토성 발굴로 본격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한 한성 백제 시기의 기하문양 기와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같은 계통인 중국 남조 기와를 비교해 기와 문화의 국제 교류관계를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동전 모양에서 연꽃무늬로, 연꽃무늬 끝에 돌기가 솟고, 장식미 또한 더해지는 백제 막새기와의 변화상을 볼 수 있다. 백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일본 고대 아스카 기와들과 신라, 고구려 기와들을 비교 전시하고, 각양각색 한·중·일 도깨비 기와들도 함께 놓아 여러 각도에서 백제 기와 문화를 조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경주 부여/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