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카페에서 나는 무심코 맞은편에 앉아있는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대학교 일학년 쯤 되었을까? 죄 없는 나의 시선에 그녀는 갑자기 “재수 없이 왜 쳐다보는 거야?” 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나는 놀라서 얼른 카페를 나와 버렸다.

 빈자리가 대부분인 극장에서 영화를 혼자 보던 날, 젊은이 하나가 다가와 “여기 제 자리인데요.”하며 표를 내민다. 할 수 없이 나는 자리를 옮겨 앉는다. 그 많은 빈자리를 다 놓아두고 자리를 비키라니, 갑자기 한숨이 나온다. 아마 앞으로의 시대는 뇌물이나 비리 같은 건 아주 사라질 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깨끗한 세상은 정말 살기 좋을까?

 한 집안에서조차도 소통이 불가능한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외롭게 문을 나선다. 지하철에는 각기 다른 세대의 얼굴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노인을 향해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은 점점 없어져간다. 나는 가끔 나 자신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하는 젊은사람인지 속으로 고민한다. 그러다가도 노인을 보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고 만다. 아날로그적인 행동 양식이다. 갑자기 나는 아무런 후회도 죄책감도 책임감도 없는 디지털적 인간이 되보고 싶다.   산다는 일은 어쩌면 껌 씹기를 닮았다. 단 물이 다 빠진 뒤의 껌 씹기의 지겨움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상의 지루함을 닮았다. 하지만 껌 씹기와 사는 일의 다른 점은 단물이 다 빠진 뒤에도 계속 씹어야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늙음은 온다. 종로 3가에 있는 허리우드 극장에 가면 노인들을 위한 영화관이 있다. 허리우드 클래식을 상영해주는 그 곳에는 오십에서 팔십대 노인들을 위한 영화관이라고 씌어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난다. 아직은 포기하지 않은 내 오십대 초반의 젊음이 노인이라는 단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까?

 종로에서 젊음을 보낸, 지금은 노인이 된 사람들을 위한 영화관이고 씌어있는 그 곳에 가면 정말 멋쟁이 노인들이 영화를 보러온다. 화면 속에서 오드리 햅번과 그레고리 팩이 영원히 젊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곳, 그곳에서 시간은 언제나 아날로그적으로 느리게 흘러간다.   나는 문득 영화를 보러온 노인들의 얼굴에서 텔레비전 광고 속의 옹알이를 하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본다. 갑자기 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황주리의 사색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