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노후 생활을 어떻게 안락하게 보낼수 있 는가?를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 소개하는 주명룡(한국은퇴자협회)회장은 그 안락한 길 을 접어두고 다시 조국의 품안에서 가시밭길을 헤치고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지난 세월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불굴의 투지로 살아 왔다 면 그의 노후 생활은 조국과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지막 여생을 바치고 있다. 아마 여느 인간들 같으면 찬란한 경력을 들이대어서 정권에서 한자리 하겠다고 하겠지만 뉴욕한인회장까지 했던 그가 한국에 돌아와서 한일은 20여년간 힘없 는 사람들의 일자리 마련, 끝없는 봉사와 사회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돈만 벌면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 권력에 빌붙어서 으시대는 사람 들, 그나마 가지지 못한 약자의 등을 쳐서 먹고 사는 인간들은 여기 이 위대한 분의 글을 읽고 반성을 해라. 무엇이 애국이고 무엇이 참 인생의 길인가를 이분은 가르쳐 줄것이다. (이 글은 나약해빠진 오늘날의 젊은이와 자식들에게 꼭 읽히고 보여주 어야할 글이기에 이곳에 싣는다. 어제 나도 우연한 기회에 이분을 만나고 와서 앞으로 무엇으로든 함 께 일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주간조선에서 **************** [뷰니풀 시니어] 주명룡 한국은퇴자협회 회장 100억대 ‘아메리칸 드림’ 일군 한인회장 “실직 가장 돕자” 귀국 해 일자리 전도사 한국은퇴자협회 사무실은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서울 광진구 광장 동) 인근에 있었다. 지은 지 꽤 오래된, 지하 주차장도 없는 상가건 물 2층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입구에서 주춤거리고 있으려니 진 (jean) 소재 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주명룡(64) 회장이 성큼성 큼 걸어와 악수를 청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주명룡입니다.” 협 회에서 보내온 프로필 사진보다 몇 년은 젊어보이는 인상이었다. 그의 집무실은 보물창고였다. 벽면마다 가득한 상패와 증서들, 책상 위도 모자라 바닥에까지 수북하게 쌓인 서류더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그려진 철판, 각종 사진이 담긴 액자, 한쪽에 세워진 베이스기 타…. 없는 게 없었다. 낡은 라디오에선 AFKN 방송이 나지막히 흘러나 오고 있었다. “전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잊혀진 사람이에요.” 주 회 장이 천천히 입을 뗐다. 그의 아버지는 만주의 이름없는 독립군이었다. 중국 봉천(지금의 선 양)을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광복을 맞았다. 아내는 만삭이 었다. 누가 보나 긴 여행은 무리였다. 그래도 해방열차에 오르기로 결 심했다. 광복이 되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굳게 다짐했던 터 였다. 국경을 넘기도 전에 아내는 산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중국 어느 역에 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낳았다. 사내 아이였다. 8월 25일, 광복을 맞은 지 불과 열흘 만이었다. 일행 몇몇과 나룻배를 빌려 압록강을 건너기로 했다. 강 양쪽으로 소 련군의 경비가 삼엄했다. 핏덩이가 울음이라도 터뜨리면 일행의 운명 도 그걸로 끝이었다. 아이가 울면 다 죽는다. 잠에서 깨 울면 입을 틀 어막아서라도 강을 건너자. 누군가 제안했고 모두가 동의했다. 일행 의 얘길 듣기라도 한 걸까. 아이는 강을 넘는 동안 새근새근 잠든 채 한번도 울지 않았다. 결국 그도, 그의 부모도 살아서 조국 땅을 밟았 다. “아버진 술만 취하시면 늘 그때 얘길 하곤 하셨어요. 그때 네가 희한하게 안 울더라, 하시면서. 그러고 보면 저도 참 질긴 운명이 죠.” 의대 중퇴 학력으로 ‘대졸 모집’ 항공사 도전 “시험만 치르게 해달라” 회장에 편지 써 합격 1972년 청년 주명룡의 무대는 서울 명동 곰다방이었다. 잘 나가던 모 탤런트의 아내가 운영하던 그곳은 1970년대 초반 ‘얼짱’들의 집 합소였다. 군 제대 후 그의 일상은 하릴없이 곰다방에 앉아 맘 맞는 또래들과 시간 죽이는 게 전부였다. 한때 그도 어엿한 대학생이었다. 우석대(현 고려대) 의과대학에 입학해 2학년까지 다녔지만 가세가 기 울어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적 사건이 일어났 다. 바로 그 곰다방에서였다. “하루는 다방에 있는데 친구가 자기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 대한항공 에 다닌다면서 태국에 다녀왔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조종사냐고 했더 니 아니래요. 조종을 배우지 않아도 비행기 타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단 걸 그때 처음 안 거죠. 이거다 싶었어요.” 그해 가을 때마 침 대한항공이 남녀 승무원 모집공고를 냈다. 그는 원서 쓸 생각에 가 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응시요건 앞에서 무너졌다. 거기엔 이렇게 쓰 여 있었다. 4년제 대학 졸업자 이상 응시 가능. 원서 접수일, 길게 늘어선 지원자 행렬에 그도 있었다. 손엔 6매짜리 입사원서를 쥔 채였다. “기가 막혔어요. 저 많은 사람들 틈에 내가 못 끼는구나 싶어서. 원서 마지막 장은 공란이었어요. ‘본인에 대해 기술하라’고 돼 있었죠. 그 여백에 당시 조중훈 사장 앞으로 편지를 썼어요. 귀사에 너무 들어가고 싶다, 다른 자격은 넘치는데 대학 졸업 장만 없다, 시험이라도 치르게 해달라고요.” 성적증명서도, 졸업장 도 없는 원서를 들이밀면서도 그는 당당했다. 가까스로 손바닥만한 접 수증을 받아들고 나올 땐 벌써 대한항공 직원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 다. 여섯 차례에 걸친 전형도 당당히 통과했다. 오매불망하던 스튜어 드가 되는 순간이었다. 비행은 그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었다. 시차 때문에 밤낮이 바뀌고 수 면부족에 시달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힘들 때면 ‘돈 벌면서 외국에 놀러 다니는 일이 또 어딨겠냐’며 스스로를 달랬다. 고비도 있었다. 1978년 4월 프랑스 파리를 출발, 알래스카를 경유해 서울로 오는 KAL 902편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사고를 당했다. 비행 중 경로를 이탈, 소 련 영공에 진입한 항공기는 소련 공군의 공격을 받고 핀란드와 러시 아 사이 카렐리아해협의 무스만스크 호수 위 얼음에 불시착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했지만 그를 포함한 승무원과 승객 107명은 기적처 럼 살았다. 그런 사고를 겪고서도 그의 ‘비행 사랑’은 변함이 없었 다. 사표… 사업 실패… 대책 없이 미국으로 일자리 못 찾고 방황, 한때 자살 생각 1980년, 9년차 승무원이 됐다. 직책은 사무장. 누적 비행시간은 9000 시간을 넘겼다. 1년 이상을 하늘에 떠 있었던 셈이다. 그의 나이 36 세, 네 가족의 가장이었다. “승무원 일이 좋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 을까 싶었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 회사 사장이 될 순 없었으니까 요. 뭔가 다른 인생을 꿈꿔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그 즈음 떠올린 게 미국이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라면 뭐가 됐든 그럴 듯한 사업 아이템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그는 틈만 나면 미국을 오갔 다. 고심 끝에 선택한 게 당시 텍사스주에서 한창 뜨던 처치스치킨이 었다. 결국 그해 12월 23일 사표를 냈다. 회사 측은 “1년 안에 돌아오면 현 재 직급으로 복직시켜주겠다”는 파격적 제안까지 하며 붙잡았지만 뒤 도 안 돌아봤다. 당장 처치스치킨 본사로 날아가 생닭 써는 것부터 배 웠다. “회전하는 원형 톱날에 닭을 갖다 대면 두 동강이 나요. 그 작 업을 반복해 닭 한 마리를 여덟 조각 내는 거죠. 섭씨 2~3도 되는 대 형 냉장실에 방한복 입고 들어가 10만 마리는 족히 썰었을 겁니다.” 그러나 치킨사업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동업자의 변심과 한국 닭 값 폭등이 원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부음 소식까지 전해져 왔 다. 귀국해 장례를 치른 그는 결심했다. ‘아예 미국으로 들어가자!’ 아 내를 설득한 후 전 재산을 털어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다시 미국에 왔 다. 처음엔 뉴욕으로 갈 요량이었다. 무더운 낮 시간을 피해 밤마다 뉴욕행 도로를 질주했다. 동이 터오면 여행자 모텔을 찾아 새우잠을 청했다. 고생이 늘며 맘은 조금씩 약해졌다. “당시 맨해튼엔 늘 승무 원 동료들 수십 명이 머물렀어요. 대책 없이 행상이라도 해야 할 판인 데 뉴욕에서 동료들 만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내 발로 관 두고 나왔는데 초라한 모습 보여주기 싫었거든요.” 아내를 설득해 뉴욕이 아닌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자리를 잡 았다. 워싱턴DC에 가게를 열기 위해 발품도 팔았다. 그러나 흑인 밀집 지역으로 보안이 취약했던 워싱턴에서 가족과 함께 할 만한 가게를 찾 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편의점을 해볼까 하고 세븐일레븐 점주 모 집에 응시, 자격을 얻었지만 편의점 운영 역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총격에 대비, 유리 대신 플라스틱으로 창을 달아야 할 정도였다. 하루 는 흑인이 운영하던 슈퍼마켓 인수를 의논하러 들어갔다가 승용차가 흑인의 습격으로 망가지는 사고를 겪었다. 가게를 열면 태워버리겠단 협박까지 당했다. 이후 부부는 3세, 9세 형제를 두고 금요일마다 뉴욕에 갔다. 주말 내 내 가게자리를 둘러보다 월요일 새벽에 돌아오는 생활이 몇 달간 계속 됐다. 10세 미만 아동을 집에 홀로 두면 안 된다는 주법까지 어겨가 며 필사적으로 돈 벌 궁리를 했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부부는 허드슨 강가에 승용차를 대놓고 강물에 뛰어들 생각까지 했다. 뭘 한들 이보 다 못할까 싶어 귀국을 결심했다 번복한 것도 여러 차례였다. 7개월 간의 버지니아주 생활을 접고 뉴욕에 정착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잘나가던 승무원이었던 그는 미국땅에선 그저 ‘백수 가장’일 뿐이었 다. 도전·재도전… 8년 만에 맥도날드 운영권 4개 지점 맡아 연 매출 1000만달러 컬럼비아대학 모퉁이에 있던 식품매장을 알게 된 건 뉴욕에 온 지 얼 마 안 돼서였다. “유대인 영감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절 보더니 매 장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가게자리를 보고 있는 중이라며 거절했는데 자꾸 거기 생각이 나는 거예요.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해달 라고 했죠. 얼마 후 주인이 절 잘 봤는지 가게를 인수해보지 않겠냐 고 해요. 그런데 건물주인 대학 쪽에서 반대하더군요. 신뢰할 만한 기 준이 없단 게 이유였어요.” 다급해진 그는 ‘한국식’으로 건물관리 담당자에게 5000달러의 뇌물을 건넸다. 물론 망신만 당한 채 쫓겨났 다. ▲ KAL 근무 당시 마지막 비행이었던 보잉 747 기내에서 동료들과 함 께한 주명룡(가운데). / 뉴욕 맨해튼 5번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건 너편에 개장한 맥도날드 매장 오픈행사 모습. 그러나 그는 1983년 결 국 그 매장 운영권을 거머쥐었다. 매장 단골 중 건물관리 책임자가 있 었던 것. 성실한 근무태도, ‘일단 맡겨주면 정말 잘할 수 있다’는 당돌한 자신감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매장 인수 후 그는 타고난 부지 런함과 항공사에서 배운 서비스 정신으로 단번에 매출을 2배로 늘렸 다. 먹고 살기 급급했던 그가 뉴욕 한인사회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 도 그 즈음이었다. 처음엔 이민자 정착을 조금씩 돕다가 뉴욕에서 식 품상을 운영하는 한인모임에 가입, 회장을 연임했다. 국회의원 선거보 다 더 치열하다는 뉴욕한인회장까지 됐다. 그의 오랜 꿈은 ‘한국 이민자 최초의 맥도날드 매장 경영’이었다. 이민 초기였던 1981년 시카고 맥도날드 본사에 전화해 원서를 신청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거주 경험이 전무했던 그는 ‘100% 자 격 미달’이었다. 식품매장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그는 매장 운영을 아 내에게 맡긴 채 8년 만에 재도전에 나섰다. 정성껏 쓰고 틈틈이 표현 을 고쳐가며 완성한 원서를 1989년 여름 시카고로 보냈다. 2개월 후 면접을 보러 오란 답장이 왔다. 롱아일랜드에서 이뤄진 5시간의 1 대 1 면접, 아내와 함께 참가한 3시간30분의 면접, 최근 3년간의 세금 납 부 내역 사본 제출, 최종면접…. 거의 1년간의 마라톤 전형을 거쳐 마 침내 합격통보를 받았다. ▲ 주명룡 회장을 대서 특필한 월스트리트저널 2000년 6월 12일자. 그 게 끝이 아니었다. 매장 운영자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실습코스 가 남아 있었다. 돈 한 푼 못 받고 주당 20시간씩 꼬박 1800시간을 일 해야 하는 ‘죽음의 코스’였다. 그는 이 과정을 무려 4400시간이나 이수하며 매장 실무를 익혔다. 화장실 청소하고 패티 굽고 주문 받고 계산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견딘 끝에 맥도날드 운영권을 따냈다. 그가 운영한 매장은 모두 4개였다. 두 번째로 맡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맞은편 매장은 직원 110여명, 연매출 400만달러의 초대형 규모였 다. 카네기홀·유엔본부·차이나타운 등 나머지 매장도 하나같이 목 좋은 곳 주변이었다. 한창 때 그의 연매출액은 1000만달러에 달했다. 햄버거 장사로 100억대 부자가 된 것이다. 그의 성공담은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타임스 등 미국 유력 일간지에도 대서특필됐다. ‘편안한 여생’아닌 ‘의미있는 여생’ 보내자 20년 만에 홀로 한국행, 제3의 인생 시작 2001년 말 그는 돌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민 후 첫 귀국이 9 년 7개월 뒤였을 만큼 철저하게 잊고 지낸 조국이었다. 가족은 미국 에 둔 채였다. 사람들은 수군댔다. ‘뉴욕한인회장까지 한 양반이니 한국서 정치하려는 것’이란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엔 전 혀 다른 시나리오가 있었다. “한인회장 일을 끝낸 후 절 돌아보게 됐 어요. 이대로 계속 살면 어떻게 될까. 맥도날드 매장 10개쯤 맡겠죠, 돈은 쌓여가겠죠, 매일 골프 치겠죠, 1년에 한두 번 한국 와서 폼나 게 돈 쓰겠죠, 독특한 여행지 찾는답시고 아프리카 사파리며 북극 따 위를 찾아나서겠죠. 그러고 나면 뭘까요. 죽는 겁니다. 전 제 끝을 보 면서 살아요. 그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는 뉴욕에서 IMF사태를 겪는 한국 뉴스를 접하곤 맘 아파 밤마다 눈 물 흘렸다. 특히 눈에 밟힌 건 한창 나이에 실직 당한 후 방황하는 중 장년층 은퇴자들이었다. 그는 사업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주경야독하 며 공부를 계속했다. ‘4년제 대학 졸업장’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 다. 리젠트대학을 졸업한 후 머시대학에서 조직통솔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머시대학에선 ‘명예박사학위’와 ‘개교 50주년 기 념 명예의전당 입성’의 영예도 얻었다. 한인회장이 되고 봉사활동에 눈뜬 후엔 뉴욕대의 NGO학 코스를 수료했다. 그런 그에게 한국은퇴자 협회 활동이 ‘제3의 인생’이 된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한국은퇴자협회는 올 1월 창립 7주년을 맞았다. 갓 귀국했을 때 쏟아 진 스포트라이트가 잠잠해진 후에도 주 회장은 묵묵히 협회를 꾸려나 가고 있다. 올 3월부터 시행 중인 연령차별 금지법이 제정되기까지 1 인시위도 마다 않고 뛰었고 부실투성이 상조회사의 문제점을 제기하 며 관련 당국의 대응을 촉구했다. TV든 라디오든 신문이든 고령화사회 의 이슈를 짚고 대안을 제시하는 공간이 생길 때마다 협회의 목소리 를 대변했다. 지난 정부에선 대통령 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수익을 챙기긴커녕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십 수 명에 이르는 스태프의 월급을 줘가며 이 모든 일을 감당해왔다. ▲ 2002년엔 서울 명동거리에서 연령차별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가 두시위를 벌였다. 7년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귀국 직후 마포에 마 련했던 널찍한 사무실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비워줘야 했다. 15명 에 이르던 스태프의 덩치도 쪼그라들었다. 정부나 기업 지원 없이 순 수하게 회비와 후원금만으로 운영하다 보니 햄버거 팔아 모은 돈을 헐 어 써야 하는 상황도 부지기수였다. 최근엔 40~50년 전 부모님께 물 려 받은 고향 아산 땅을 조금씩 팔아 협회 활동자금으로 쏟아붓고 있 다. 미국에선 벤츠를 몰고 다녔지만 여기선 차도 한 대 없다. 유지비 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송파구 집에서 전철을 타고 출퇴 근한다. “지금은 뭐랄까, 좀 지쳤어요.” 아닌 게 아니라 사진 속 풍채 좋던 그는 몇 년 새 상당히 야위었다. 풍성했던 머리숱도 눈에 띄게 듬성해 졌다. “한국에서 은퇴자협회를 꾸리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아요. 일 단 은퇴자 당사자들이 비협조적입니다. 받는 것에만 익숙하고 베풀 줄 은 모르죠. 취지를 설명하면 동의하지만 그뿐이에요. 그런 사람을 NATO(No Action Talking Only)족이라고 한다더군요. 어떤 분은 협회 앞에 솥단지 걸어놓고 밥 짓고 국 끓이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해요. 그 래야 돈이 좀 모인다고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은 그런 게 아니거든 요. 개개인의 손에 1000원씩 쥐어주는 게 아니라 5000만 국민이 대대 손손 혜택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겁니다. 그걸 돈으로만 따지 려고 하니….” 요즘 그의 최대 고민은 ‘어떻게 하면 주명룡 없이도 한국은퇴자협회 가 잘 굴러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혼자만의 힘으로 협회를 꾸릴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2006년 자체 생산시설을 갖 춘 사회적 기업 ‘포춘쿠키(행운의 과자)’를 세운 것 역시 협회의 재 정적 자립을 염두에 둔 장기 포석이었다. 그는 “포춘쿠키가 어느 정 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협회 창립 10주년이 되는 2012년쯤엔 사정 이 좀 나아질 것 같다”고 했다. “요즘은 가족이 참 그리워요. 손녀가 셋 있거든요. 보스턴에 살고 있 죠. 지난 4월 3년여 만에 만났는데 덜컥 걱정이 되더군요. ‘저 사람 누구야?’ 할까 봐서. 이민 초기 맨손으로 시작할 때도 제 결정을 묵 묵히 따랐던 아내가 이젠 제 말을 안 들어요. 협회에 쏟아부을 돈으 로 ‘주명룡 복지관’이나 하나 짓고 말지 왜 고생을 사서 하냐며 핀 잔이죠. 완전히 제 보스라니까요.” (웃음) (이 글은 주간 조선에서 옮긴글이며 본인이 시민일보,조선닷컴 토론장 네이션코리아에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게시판은 사진이 안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