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은 진달래와 개나리일 것이다. 나는 광릉 수목원 근처에 살기에 매년 진달래의 그 붉은 화사함을 만 끽하고 있다. 杜鵑花(두견화)가 한자의 이름이다. 두견새의 피 맺힌 한이 진달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매년 봄이면 친한 부부와 함께 산에 올라 이 두견화를 따서 전(煎) 을 부쳐서 광릉 막걸리를 마시곤 한다. 키가 큰 진달래 나무 밑에 누워 하늘을 쳐다 본 적이 있는가? 하늘의 푸르름과 꽃의 붉음의 조화를! 진달래가 봄의 산을 꾸민다면 개나리는 인간의 삶 속에 봄의 전령의 역할을 한다. 마을 어귀마다 또는 담장마다 축 늘어진 줄기에 다닥다닥 붙은 노란꽃 이 눈이 부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병아리가 물고 다니는 그 꽃이다. 진달래는 '진'과 '달래'의 합성어라고 한다. '진'은 참이라는 뜻이다. 달래 중에서 진짜 달래라는 것이다. 전이나 술을 담궈서 먹을 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한편, 개나리는 '개'와 '나리'의 합성어다. 나리 중에 개 취급 당하 는 뜻이다. 조금 있으면 산에 들에 피는 붉은 '참나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마도 먹을 수 없어서가 아닐까 쉽기도 하다. 이유야 어떠하든 간에 , 그 꽃들이 우리의 主食이 아닌 바에야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이 전부 색깔을 달리하여 우리에게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전해주 는 '봄의 전령'들이 아닌가? 이렇게 일찍 피는 이 꽃들은 다른 꽃들이 필 무렵에는 이미 푸른 잎으 로 덮히는 평범함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자연에게 인간이 붙인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꽃 이름 중에 '이 름 모를 꽃'도 있다. 본래 이름은 없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어느 식물학자는 식물에 있어서 꽃은 '생식기'라고 한 다. 그렇다면 그들의 중매쟁이는 벌과 나비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화려한 생식기에 코를 들이대고 그 냄새를 맡고, 장식 을 하고, 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감히 큰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식물의 '생식기'를 가지고 초봄에 쓸데 없이 궁시렁거리 고 있는 것이다. 시인 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찬란한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 습니다. 하나의 모순어법입니다. 이 봄이 부디 '찬란한 슬픔의 봄'이 아니라 실로 '따사로운 봄'이 되 기를 빕니다. 보지 않으면 '봄'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