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
작성자 박순웅 작성일 2015-12-23 오전 7:12:24

지기불가이위지자여 (知其不可而爲之者與)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

 

 논어에 어떤 은자가 공자를 평한 말입니다.

 공자의 생존시에 이야기로

공자의 제자 자로가 석문 근처에서 묵을 때였다.

석문은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의 성문이 있는 곳으로 도성에서 지방으로 가는 경계에 있는 성이었다.

문지기가 자로에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물었다. 자로가 대답했다.

“공씨(孔氏) 댁에서 옵니다.”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다.

 “바로 그 안될 줄 알면서도 행하는 자 말이오?”

 

문지기의 말은 단지 그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이 공자를 평가하는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각 나라가 전국 통일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시대에 공자가 부국강병책으로 내놓은 처방이라는 것이 겨우 ‘예(禮)’였다. 사람의 도리였다.

바쁜 시국에 예라니. 뜻은 좋지만 당장의 현실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상이 아닌가.

‘삶의 어려움을 누그러뜨려주지도 못하고,

죽음의 두려움을 위로해주지도 못하는 자기 탐구와 자기 개혁의 힘든’ 길이 예가 아니던가.

 그 힘든 길을 가는 사람이 공자였다.

안될 줄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이 공자였고, 아무리 바빠도 지켜야 할 것이 사람의 도리였다.

그런데 시대착오적이고 현실성이 없어보이던 공자의 가르침이 2천5백년 동안 동양에서 가장 강력한 주류 사상으로 군림해왔다. ‘

예’야말로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근본바탕이기 때문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우선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보라고 주문한다.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물이 된다’라고 답하지 말고 ‘봄이 온다’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큰 흐름을 조망해 보면 우리 사회가 경쟁을 강조하는 ‘몸의 시대’에서 협력을 강조하는 ‘마음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논어에 따르면

 군자는 이유와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소인은 이유를 남에게서 찾는다.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되는 일이 없다.

자기의 문제로, 내 탓으로 돌리고 자기 변신을 하는 사람이 큰 성공을 하는 것이지,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문제를 자기의 힘으로 해결하는 군자의 모습으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논어다.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의 강의중에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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