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속 노신사의 모습을 보여 세대간 소통 기회 열어 <①편에서 계속>
작성자 박찬원 작성일 2015-11-01 오후 11:20:37

영화속 老신사의 모습을 보여 젊은이들의 세대간 소통 기회 열어

<①편에서 계속>
영화에서 벤의 활약상은 딱 인턴답다. 과거 부사장(전화번호부 제작사 ‘덱스원’에서 40년간 근무하면서 인쇄, 영업, 광고를 두루 거침) 경험 노하우를 살려 회사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도 아니고, 컴맹 벤이 젊은이들과 소통하면서 소셜네트워크의 달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첫 출근 날 벤은, 젊은이들이 가방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꺼낼 때 돋보기와 알람시계, 계산기를 꺼낸다. 영화는 스마트폰이 정답이고, 돋보기와 계산기는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두 세대가 자연스럽게 섞이고 소통하는 현장을 보여준다.

회사에서 벤의 역할은 단순하다. 꼭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을 많이 살아본 이들이 가르치는 방식은 두 가지다. 눈에 거슬리는 것마다 이지가지 훈계를 하든가, 거슬리지만 꾹 참고 꼭 필요한 말만 하든가. 벤은 후자다. 나서거나 오버하지 않는다. 살아온 시간만큼 아는 것도 보이는 것도 많지만 그는 ‘지적질’을 하지 않는다. 절대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그저 삶의 노하우를 슬쩍슬쩍 보여주기만 한다. 자신의 성공 경험이 현재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벤의 상징은 빙그레 웃음과 묵직한 입이다. 세상 모든 걸 품어주는 듯한 푸근한 웃음. 새파랗게 어린 CEO가 자신의 재킷에 뭐가 묻었으니 빨아달라며 옷을 ‘버릇없이’ 던질 때에도 ‘빙그레’. 전문경영인 영입 문제를 엿들은 벤에게 직원들이 “벤, 안에 무슨 일이 있어요?” 물어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고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는 말 없이 다림질된 손수건을 건넬 뿐이다. 젊은 직원들은 그런 벤에게 점점 자석처럼 끌린다. 존재감 없던 벤 주위로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이고, 벤은 회사 최고의 인기남으로 등극한다.
70대 인턴 벤의 페이스북 가입을 도와주는 줄스. /영화 '인턴' 스틸컷
70대 인턴 벤의 페이스북 가입을 도와주는 줄스. /영화 '인턴' 스틸컷
한국의 세대 갈등, 이례적 흥행 요소

이 영화가 한국에서 유독 어필하는 이유가 또 있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서로 다른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의 행복한 공존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세대 전쟁은 유별나다. 세대 갈등은 한국의 급격한 사회 변화가 안겨준 부산물이다. 광복 이후 한국은 60년 동안 농업사회,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지나 지식정보사회에 들어섰다. 현기증 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겪는 동안 각 세대의 가치관도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가치관이 다르니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세대 간 갈등의 최고 격전지는 지하철이다. 아무리 노인혐오론자라고 해도 지하철에서의 노인과의 만남은 숙명적이다. 구글 검색창에 ‘지하철 노약자석’을 치면 관련 검색어가 무려 180만개가 뜬다. ‘노약자석 폐지’ ‘노약자석 법’ ‘노약자석 나이’ 등 관련 검색어도 다양하다. 지하철에서 노인한테 혼쭐을 당한 젊은 경험자들의 검색 흔적일 것이다. 혼쭐 멘트는 엇비슷하다. “쯧쯧. 세상이 말세야 말세! 어르신은 서 있는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앉아 있다니!”

노약자석을 둘러싼 노(老)-노(老) 간 다툼도 흔하다. 60대 남성이 50대가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두들겨 팬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지난 5월에는 노약자석을 두고 60대 두 남자가 서로 앉겠다며 다투는 장면이 뉴스로 중계됐다. 현장음은 이랬다. “이놈의 XX가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을 텐데 이 개XX가 그냥” “너 몇 살이나 처먹었어?” “난 60살이다. 이 XX야.”

벤이라면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를 어떻게 대했을까? 아예 그쪽으로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 다리가 아프다면 특유의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수트에서 빳빳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 시늉을 하지 않았을까? 나이를 벼슬과 동일시하는 순간, 소통의 통로는 막혀버린다. 소통의 키는 결국 노인이 쥐고 있다. 노인은 젊은이의 세계를 알지만, 젊은이는 노인을 모른다. 노인은 젊어봤지만, 젊은이는 아직 늙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민희 주간조선 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이전글 카프협동조합과 함께 하는 11월 워크톤 계획 안내
다음글 20대가 영화 '인턴'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
수정하기 삭제하기
주소 :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로 589 우)143-805 / Tel. 02) 456-7850 | Fax. 02) 456-7650 | E-mail. karp@karpkr.org
Copyright(c) 2008 KA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