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갖가지 파열음이 들린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둘러싼 보수여당 내 갈등이나, 보수야당의 개혁안 논쟁은 공천권 향배와 직결되어 있다. 보수정당들이 공천권만 공정하게 행사하면 한국 정치는 발전할까. 총선에 나갈 선수를 누가 뽑든 현재의 게임 규칙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정치의 미래는 암담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거의 규칙을 바꾸는 일이다.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고단한 사회다.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 비정규직 못지않게 불안한 정규직, 학력사회의 경쟁에 내몰린 청소년,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세계 최고의 이혼율, 노령 자살률.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민주화’가 쟁점이 되어 양극화가 해소되리라는 기대를 했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여당은 그것이 선거 구호였음을 선언했다. 그렇다고 보수야당이 양극화 해소를 위해 변변한 대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현재의 보수정당에 기대할 것은 없다. 왜? 그들은 현재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시민들이 자신들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최악이고, 자신들은 조금 낫다는 네거티브 전략만으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실 현 제도는 차악의 선택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제3의 후보가 아무리 훌륭해도 30% 이상의 표를 모으기 어렵다고 예상되면, 현명한 시민은 신진 후보를 지지해 최악의 후보를 돕느니 차악의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마침, 국회의장이 지역패권과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혁파하기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이란 화두를 던졌다. 어떤 개혁을 할 것인가. 길게 논의할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검증된 제도를 도입하면 된다.
독일처럼 절반의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 독일 하원은 절반을 소선거구제로, 나머지 절반을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제로 선출한다. 정당 난립을 막기 위해 최소득표율(5%) 제한을 두고 있다. 이 제도에는 여러 이점이 있다. 먼저, 높은 정치적 관심이다. 지지하는 정당의 성공 가능성이 높으니, 소외된 계층이 적극 참여한다. 소수의 목소리가 들리니, 기존 정당은 혁신한다. 절대다수당이 될 수 없으니, 정당은 타협의 정치를 한다. 상호존중과 타협을 통한 정책 중심의 정치적 관행이 정착한다.
절반의 비례대표제는 피폐한 한국 사회와 정당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첫째, 지역구도를 깨뜨릴 것이다. 지역구도에 안주해온 보수정당들에 30~40%에 이르는 무당파는 존재를 위협할 가공할 정치세력이다. 영남 정당, 호남 정당이 사라질 것이다. 둘째, 네거티브 전략으로 지탱된 차악의 선거제도가 무너질 것이다. 뚜렷한 정책대안이 제시될 때, 네거티브만으로 생존할 수는 없다. 건전한 정책정당이 출현하게 되고, 우리를 속여온 이미지 정치인도 사라질 것이다. 셋째, 소외됐던 정치세력의 등장으로 고단한 한국 사회의 면모가 쇄신될 것이다. 청년실업, 비정규직, 치열한 교육경쟁, 재벌과 기득권층의 특권 등이 모두 격론의 대상이 될 것이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면 지역구 의원 수가 줄어들고 현직 의원들이 반대하니 절반의 비례대표제는 비현실적이란 소위 현실론자들이 있다. 이런 논의는 기득권이 비례대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내세우는 상투적인 수법에 불과하다. 선거법을 바꿔, 국회의원 정원을 늘리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다.
이 쟁점도 독일의 사례를 본받자. 인구 8100만명의 독일은 상원, 하원이 있고, 하원의원 수는 614명이다. 같은 비율을 적용해, 인구 5000만명인 우리도 의석 수를 늘려 380명(지역구, 비례 각각 190명)을 선출하면, 현역의원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물론 확대된 의원들의 특권의 총량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면, 국민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절반의 비례대표제는 타협의 정치와 정책 경쟁을 가능케 할 것이며, 고단한 한국 사회에 신선한 희망을 줄 것이다. 극도로 피폐한 한국 사회는 활력을 필요로 한다. 더 이상 지체하면 일어나기 힘들다.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절반의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