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부터 중요한 시장 중 하나였던 화개장터
화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지리적 위치로큰 번영을 누렸던 곳
오늘날 고향의 향수와 옛 추억을 되살리는 곳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도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지금 이 평화로움 뒤엔 군번도 이름도 없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받친 어린 용사들이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의 기습적인 전쟁 도발
전쟁 발발 후 30여 일도 안되어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섬진강 화개장터에 이르렀습니다.
창설 이래 예비 병력이 없었던 한국군은 약 30만 명의 많은
병력이 필요했지만 전쟁의 혼란 속에서 병력 보충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남 순천에 주둔하던 국군 15연대에 인근 지역의 전남 여수,
순천, 보성 지역에서 약 180여 명이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그들은 15세 전후의 학생으로 군번도 계급도 없는 학도의용군이었습니다.
180여 명의 학도의용군 중 70여 명이 사망, 실종 북한 정규군을 상대로
총 한 자루를 잡고 전투에 나간 어린 용사들의 희생은 막대했지만
그들이 교전한 3시간 동안 주민들의 피난 시간을 벌었고 전라도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북한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5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혈서를 쓰고 학도의용군에 지원했던 어린 소년은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화개전투는 어찌보면 작은 전투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학도병 180명의 혼이 담겨있습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전쟁에서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학도병들의
죽음을 잊지 않고, 이 아름다운 국토를 지켜 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