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를 위한 정당을 위하여 신당추진 원탁회 이루어진 발제문 전문.
작성자 박순웅 작성일 2015-06-17 오전 8:48:08

본 글은 MBC-TV원로들의 원탁회의에서 거론된 얘기이며 발제문입니다 조금은 길지만 참고로 읽어 보시면 현안 인식에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한국정당체제의 위기와 대안 - 90%를 위한 정당을 위하여   신당추진 원탁회 이루어진 발제문 전문.

1. 한국정당정치 위기의 원인 - 대표성의 위기와 경쟁의 부재----->
한국 정치는 깊은 속병을 앓고 있다. 몇 군데 손보는 것으로 치유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특징은 양대 기득권 정당에 의한 과두 지배 체제로 요약된다. 이 체제는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낳고 있다. 대표성의 위기와 정치적 경쟁의 부재이다.

 

지난 총선의 경우, 새누리당은 정당투표 기준으로 국민들로부터 42.8%의 지지를 받았지만, 의석수는 152석으로 과반(50.7%)을 넘었다.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도 정당득표율은 36.5%에 그쳤지만, 의석 점유율은 42.3%(127석)로 과반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것도 겉으로 드러난 수치에 불과하다. 평소의 지지율은 총선에서의 정당득표율을 훨씬 밑돈다. 특히 제2당은 전신인 민주통합당 시절부터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 이르기까지 통합 효과를 누린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20% 초반의 지지율에 머물렀다.(한국갤럽 조사 기준) 그러나 선거 때가 되면 현 제1야당 이외에 다른 선택을 갖지 못한 야성향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이 제1 야당 후보를 선택할 수 밖에 없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지율이 아무리 바닥을 기어도 총선에서 너끈하게 100석을 전후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에 비해 진보정당은 사표방지 심리에 의해 평소의 지지율만큼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양당과 결합된 기득권 세력은 정치적으로 과잉 대표되고, 여기서 배제된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과소 대표된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비조직 노동자, 자영업자, 2030세대 등이 여야 어느 당에 의해서도 정확히 대변되지 않는 정치적으로 소외된 이들이다. 마땅히 야당을 지지해야 할 강북우파가 계급 배반투표를 하고 청년세대가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것은 정치적 소외감의 한 표현이다. 결국 의회에서 국민의 목소리가 올바로 반영될 수 없고, 대표성이 취약한 의회는 다수 국민으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된다.


증오의 정치라 불릴 만큼 양대 정당의 대결은 일견 치열하다. 그러나 각각 특정 지역과 특정 진영에서 누리는 독점적 지위로 말미암아 정당간의 실질적 경쟁은 매우 약하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는 정당의 대결이 아니라 정당과 거리를 둔 후보자간의 경쟁이 되었고, 우리가 보듯 야당은 대선에서 지고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호갱이라는 말이 있다. 바보 같은 고객이라는 뜻이다. 시장에서 경쟁이 없으면 소비자가 호갱이 되기 쉽다. 경쟁이 없는 이유는 시장 참여자가 너무 적거나 또는 참여자 간에 담합을 하기 때문이다. 경쟁의 압박이 없는 이런 시장에서는 시장참여자(기업)가 혁신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발전이 없고, 결국 다 망하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같은 시장감독기구가 필요하고 재벌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 활동에서 경쟁이 없으면 국민이 호갱이 된다. 다시 말해 국민을 무력하게 만든다.(샤츄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다. 친노 패권주의를 포함한 계파주의, 공천제도의 문제점, 당원의 무력화를 비롯한 당내 민주주의 부재, 의원들의 기득권 세력화 등 무수히 많은 비판적 지적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셀 수 없이 많이 구성되고, 그 숫자만큼 쇄신안이 작성되었다. Post-DJ이래 10년을 넘겨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래도 변화는 없었다. 왜 그런가? 문제의 근본 원인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거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들은 근원이 아니다. 결과일 뿐이다. 근원은 경쟁의 부재다. 쇄신을 강제할 요인의 부재이다. 야당으로서 특정 지역과 특정 진영에서 누리는 독점적 지위를 위협할 존재의 부재이다. 진보정당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것은 제1당인 새누리당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2. 야당교체? 시스템 교체가 답이다.

양대 기득권 정당의 변화를 통해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 해법의 하나로 야당교체론이 등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제 구실을 못하므로 제대로 된 당을 만들어 야당을 대체하자는 말이다. 야당교체론은 바람직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현 제1야당이 후진 것은 맞다. 새 정당은 다를 것인가?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권력의 속성에 무지하거나 또는 오만한 거다. 왜 새정치민주연합이 후지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양대 기득권 정당이 특정 지역과 특정 진영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지금의 양당체제가 새정치민주연합뿐 아니라 한국 정치 전체가 후진 근본 원인이라는 진단이 진짜 답이다.


주로 양당 체제를 고수하는 영미계 정치가 주로 다당 체제를 시행하는 유럽 대륙계 정치보다 전반적으로 후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당체제는 양극정치로 나아가거나 담합정치로 수렴되었다. 그리고 그 둘은 우리나라에서 보듯 동전의 양면이었다. 전후 유럽에서 양당 체제를 정착시킨 나라들은 빠른 정치안정을 이뤘지만 진보 세력을 배제한 답합정치와 부패를 그 비용으로 치렀다.(토니 주트, 포스트워) 양당체제의 대표적 모델인 미국정치는 한 때 뉴딜합의로 초당적 협력이라는 정치문화를 자랑했지만 지금 가파르게 양극화 정치로 치닫고 있다. 보수-노동의 양극정치에서 식상한 영국국민들이 서서히 자유민주당에 더 많은 표를 주고 있다. 뉴질랜드도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다당 체제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최태욱,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한다)


야당교체론은 진보정당을 만든 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왼쪽과 기존의 진보정당들의 오른쪽은 신당에 합류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오른쪽은 새누리당에 합류해 진보-보수의 양대 정당구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영국에서 노동당이 자유당의 자리를 대체한 역사를 참고한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서는 1985년 2.12총선에서 양김이 신민당을 만든 후 어용야당인 민한당을 누르고 총선에서 승리하고, 결국 민한당을 흡수했던 사례에 기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 이 구상은 현실성이 없다.


첫째, 영국 노동당의 경험을 살펴보자. 영국 노동당은 1900년에 창당했다. 직후 치러진 첫 선거에서 얻은 의석은 두 석에 불과했다. 1906년 총선에서 약진하는데, 이는 상당부분 자유당과의 선거협약 덕분이다. 일정한 선거구를 양보 받고 나머지 선거구는 자유당 후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50개 지역에 후보를 내서 29석을 차지한다. 노동당은 1918년이 돼서야 전국정당의 면모에 걸맞게 약 600개의 지역구에서 361명의 후보를 냈고, 1923년 드디어 191석을 얻어 정부를 구성했다. (고세훈, 영국노동당사) 영국 노동당은 전국정당이 면모를 갖추는데 20년이 걸렸다. 물론 영국처럼 20년을 내다본 장기 프로젝트라면 구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총선과 대선을 목전에 둔 현실을 감안할 때 한가한 생각이다.


둘째, 신민당과 민한당의 관계가 신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관계는 다르고, 결정적으로 호남과 PK지역을 대표하는 양김이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없으며, 그런 지도자가 정치를 이끌던 시대와는 다르다.
셋째, 새정치민주연합의 왼쪽에 자리한 정치인들, 특히 현역의원들은 신당의 성공가능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전에는 합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모험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1985년에도 정대철 등 민한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총선 전에는 신민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넷째, 만약 신당이 총선에서 약진해도, 매우 낮은 가능성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을 능가하는 성과를 거둘지라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소멸하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을 압도했지만 민주당은 상당기간 존속했고, 오히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호남에서 열린우리당을 앞섰다.


다섯째, 새정치민주연합의 오른쪽이 새누리당으로 넘어갈 이유가 없다. 맨 왼쪽에서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오른쪽이 새누리당과 차이가 없지만 실제로는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하며, 더 중요하게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오른쪽이 상당부분이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인데 호남 유권자의 정치지향이 어느 정도 바뀐다 해도 그들이 제2의 이정현이 되기를 바라고 새누리당을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선거구제 개편이 이뤄져 독일식 정당명부제나 중대선거구제의 도입, 또는 최소한 비례대표의 획기적 확대 등이 이뤄진다면 새정치민주연합 현역 정치인들이 -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 현 소속정당에서 원내잔류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고 따라서 더더구나 새정치민주연합을 이탈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야당교체론은 위기에 처한 한국의 정당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답이 아니다.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기득권 양당의 과두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다당 체제로 전환하는 시스템 교체가 답이다.


3. 노선이 아니라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의 문제


신당이 가장 먼저 받을 질문은 기성 정당, 특히 새정치민주연합과 ‘무엇이 다른가’일 것이다. 소위 차별화의 압박을 받는다. 기성 정치의 전통적 사고에 따르면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특정한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손쉽다. 한 가지는 새정치민주연합을 중도 또는 보수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 왼쪽 자리를 차지하는 방안이다. 다른 한 가지는 중도라는 이름하에 보수와 진보 또는 새누리와 새정치민주연합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 방안이다. 최근 출범한 <국민모임>은 전자를 선택했고, 과거 안철수 의원은 후자를 선택하려 시도했다.

 


후자의 실패는 이미 입증되었다. 안철수 진영이 빠져있던 중도주의는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많은 무당파 층이 존재하고, 그들은 기성정치에 대한 반대자들이며, 여와 야, 또는 진보와 보수의 - 정치 및 경제사회적 가치에서 - 중간에 위치하며, 그들이 안철수 현상을 구성하는 집단이므로, 정치 메시지나 행보는 중도 층을 소구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최종숙 박사(충남대)는 대선 전인 2012년 10월과 대선이 끝난 2013년 봄, 두 차례의 국민여론조사를 토대로 안철수 현상을 낳은 안철수 지지자들의 성향을 실증적으로 연구했다. 연구는 조사대상을 박근혜 지지자, 문재인 지지자, 안철수 좌파(안철수를 지지했지만 문-박 양자대결에서 문재인을 지지한 사람)와 안철수 우파(안철수를 지지했지만 문-박 양자대결에서 박근혜를 지지한 사람) 등으로 나눈 후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을 비교했다. 그 결과, 안철수 지지집단은 “복지확대, 경제민주화에서는 통상적인 진보 층에 가깝지만 대북정책에서는 중도, 물질적 성공 지향에서는 통상적 보수층에 가까우며 성공의 조건으로 개인의 노력과 구조적 요인 모두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진보와 보수적 성향을 모두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그는 안철수 지지집단이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는 ‘동시에’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볼 때 안철수 지지집단이 완전히 보수적이지 않으며 진보주의자들이 볼 때에도 안철수 지지집단이 완전히 진보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의 연구에 따르면, 안철수 지지자들은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과 비교해도 대북정책을 제외하면 복지확대, 경제민주화 등에서 거의 비슷한 지향을 보여주고, 특히 안철수 좌파(2013년 조사에서 전체 안철수 지지자의 약 65%)는 문재인 지지자들보다 더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숙, 안철수지지집단분석)


연구결과는 한마디로 ‘중도는 없으며, 이중개념주의자가 있을 뿐이다’는 레이코프의 통찰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진영은 존재하지도 않는 중도를 붙잡고 씨름하다가 자멸했다.


최태욱에 따르면 안철수 후보의 '새정치'는 다음의 세 가지 목표를 지향하는 개념이다. 첫째, 양대 정당의 지역 기반 기득권 체제를 타파한다. 둘째,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체제를 구축한다. 셋째, 증오와 대결이 아닌 소통과 합의의 민주체제를 확립한다. (최태욱, 상동)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첫째 목표는 자동 소멸했다. 둘째와 셋째 목표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양대 기득권 정당이 지배하는 과두지배체제의 귀결은 야합에 의한 약자의 - 정치적으로는 소수지만 사회적으로는 다수인 - 소외 즉, 민의의 배반이거나, 극한적인 증오와 대립일 뿐이다.


<국민모임>이 촉구한 신당에 합류하기로 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를 우클릭으로 진단한다. <국민모임> 토론회에서는 신당의 노선을 비(非)중도 진보 정당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보아 마땅히 야당을 선호할 법한 사람들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의 우클릭 때문에 지지를 거둔 사람들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지 않거나 또는 지지를 철회한 이유는 노선이 아니라 대표성에 있다. 다시 말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들을 대변하지도 대표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야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호남인들도 돌아서고 있다. <한국갤럽>이 2015년 1월 9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44%, 새정치민주연합 24%, 무당파 29%이다. 호남만 살피면 새누리 22%, 새정치민주연합 37%, 무당파 35%이다. 최근 몇 개월간 호남에서 무당파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최소 대등하거나 능가했다. 그 이유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우경화에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난 보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이 훨씬 오른쪽에 있는 이정현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과거 민노당이나 통합진보당이 호남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은 것도 그들의 진보적인 ‘노선’ 때문이라 보는 것은 무리다. 호남인이 돌아선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더이상 호남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모임>이 참고한 영국 노동당의 창립과정을 살펴보자. 노동당에는 노동조합 뿐 아니라 페비안협회(Fabian Society), 사회민주연맹, 독립노동당 등의 사회주의단체가 함께 참여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맑시즘에 충실한 사회민주연맹은 사회주의적 지향을 분명히 할 것을 주장했으나 결국 노동당의 모호한 색깔에 실망해 이탈한다. 노동당 안의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인 노동당 창당에 동의했지만 - 그것도 극히 일부 노조만 - 이념보다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데 충실했다. 이름도 '노동대표위원회(Labour Representation Committee)'라는 느슨한 이름을 선택했고, 조직의 성격을 규정한 선언문에 이념적 지향(사회주의)은 전혀 언급하지 않을 만큼 조심스러웠다. 당헌에 사회주의를 채택한 것은 그로부터 12년 후였다.(고세훈, 상동) 다시 말해서 영국 노동당의 지도자들은 노동당을 창당한 것은 자유당의 우클릭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정확히 대변해줄 정치적 대표를 원했기 때문이다.


박창기는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담론과 ‘1%대 99%의 모순’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한국 사회를 0.1%의 이권장악집단 G1(Group 1), 0.9%의 이권비호집단 G2, 9%의 이권추종집단 G3, 그리고 70%의 침묵하는 대중 집단과 20%의 소외집단인 G5로 나누어 설명하는 ‘5G+i(이데올로기)’ 모델을 제시한다. 이권장악집단에서 이권추종집단까지를 합친 10%가 나머지를 착취하기 위한 최소승리연합이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지배-피지배 전선은 그 10%와 나머지 90% 사이에 그어진다.(박창기 등, 블랙오션)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가는 것을 밝힌 김낙연 교수의 소득분포에 대한 연구도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신당이 나아갈 방향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신당이 진보적 이념을 앞세워 스스로 소수의 대변자가 될 이유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도 이념적 노선이 아니다. 마땅히 대변해야 할 사람들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당이 10% 지배블럭의 최소승리연합에 맞서 90%의 최대승리연합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90%의 서민을 대표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것으로 가능하다.


4. 이념이 아니라 현장

언론인 남재희는 한국의 진보 정당을 오랜 기간 관찰한 소회를 담은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데올로기를 먼저 설정하고 하향식으로 정책을 세우는 방식보다, 현실에 바탕하여 정책을 먼저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그 위에 그 모델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정립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에는 아직도 독일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일본 사상계의 관념론적이고 연역적인 사고가 남아 있다. 영미의 경험론적 귀납적 사고방식은 그와 다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식이 아니라 땅에서 올라가는 식의 사고를 하자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보다 현실을 먼저." (남재희, 한겨레 칼럼)


한국 사회는 전근대, 근대, 현대 등 여러 시대에 속한 개혁 과제가 중첩되어 있다. 압축적 성장의 후과이다. 그만큼 한국 정치가 감당해야 할 과제가 단순하지 않다. 한국 사회는 인권과 자유의 신장과 같은 자유주의적 개혁이 필요한가 하면, 복지의 확대와 노사협력과 같은 사회민주주의적 개혁도 필요하다. 재벌개혁처럼 시장원리를 강화해야 할 부분과 교육이나 주택처럼 공공성을 강화해야 할 부분이 함께 존재한다. 글로벌 고용 환경의 변화에 맞춰 노동유연성을 일부 수용하는 대신에 기본소득과 같은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원전 확대를 멈추는 생태주의적 가치와 원가에도 미치지 않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 전력소비를 억제하는 시장주의적 수요관리정책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만큼 공화주의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 없듯이 한 가지의 칼로 이 모든 것을 요리할 수 없다. '맞춤형 개혁'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사고에 입각한 특정 이념의 자리에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새로운 정당은 진보, 중도, 보수라는 전통적인 구분법을 뛰어 넘어야 한다. 대신 예를 들어 불평등과의 전쟁, 정의로운 시장 경제, 분권화,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 번영과 같은 구체적인 의제나 강령으로 당의 정체성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신당에는 현재의 양당 구도를 깨자는 것을 제외하면 생각하는 바, 추구하는 바가 서로 다른 다양한 세력이 참여할 것이다. 참여 세력들 간에 공동의 목표를 만드는 토론은 필요하겠지만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특정한 이념(이데올로기)으로 이들 참여 세력을 묶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파국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세력이 추구해온 또는 염두에 두고 있는 중심 의제를 하나씩 내놓고 각각의 의제가 큰 틀에서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 이걸 공동의 강령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생각해 본다.


비슷한 사례로 독일 녹색당의 창당과정은 좋은 참고가 된다. 독일 녹색당이 출발할 때 녹색당원들은 생태주의자, 평화운동가, 전일적(holistic) 활동가, 반원전 운동가, 여성해방론자, 제3세계 운동가, 가치 보수주의자, 급진 좌파 출신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연방강령은 기성 정치와 다른 새로운 정치라는 일견 추상적인 공동 목표 아래 자신들의 정책이 전통적인 좌와 우의 구분법과 사뭇 다른 네 가지 기본원칙에 입각해 이루어질 것이라 선언한다. 그 원칙들은 생태주의, 사회적 책임, 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이다. 그 후에 분권화, 탈 가부장제적 전망, 영성 등이 기본 원칙에 추가된다.(카프라 등, 녹색정치)

녹색당의 강령도 여전히 추상적이라 볼 수 있다. 남재희가 지적하는 '현실에 바탕한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과 정치인, 이론가, 평론가들이 즐겨 말하는 합리적 진보, 진보적 자유주의, 변혁적 중도 같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말들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더구나 이 원칙들은 관념적 사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장의 삶(투쟁)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이것으로부터 핵심 정책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 또한 출신 배경이 제각각인 녹색당원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훌륭하게 반영하고 있다.


5. 명사 정당이 아니라 풀뿌리 정당


신당은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과제와 씨름해온 세력들이 연합하는 무지개 연대이자 풀뿌리 연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 명의 뛰어난 인물 또는 스타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문국현과 안철수의 사례를 통해서 배웠다. 지역과 부문을 넘어 활동해온 사람들이 있다. 노동, 농민 등 사회운동, 지역당 운동, 분권 운동, 생협 등 생활 운동 다양한 풀뿌리 운동의 활동가들이 그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민주노동당에서 시작해 개혁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가장 최근의 새정치추진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비록 실패했지만 소중한 경험을 축적한 정당활동가들도 있다. 새롭게 사민당을 추진하는 그룹도 있고, 각 분야의 전문성과 정책역량을 갖춘 유능한 전문가 집단들도 있다. 작은 내들이 모여 거대한 강을 이루듯이 이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은다면 그 어떤 당 못지않은 훌륭한 당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당의 강령도 소수 이론가들의 키보드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 신당에 참여할 모든 세력, 당원, 활동가들이 현장의 삶에서 얻은 깨달음들이 모여 만들어져야 한다. 소수의 명망가들이, 스타들이 깃발 들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창당은 틀렸다. 위에서 밑으로가 아니라 밑에서 위로 이루어지는 창당이 되어야 한다.


창당 이후 당의 구조나 운영도 달라야 한다. 철저한 당내 민주주의가 관철되어야 한다. 단순히 당의 지도부를 당원의 손으로 뽑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당의 강령, 대부분의 주요한 정책, 선거 공약 등이 모두 당원들의 손을 거쳐 결정되어야 한다. 영국 노동당도 창당 초기에는 그와 같은 원칙이 잘 지켜졌다. 그러나 집권 이후 당수 겸 수상으로 권한이 집중되는 과정을 겪는다. 노동당은 당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노조 간부 등이 주축이 된 지구당 활동가들의 권한을 약화시킨다. (고세훈, 상동) 이것은 우리 정당에서 대의원을 무력화시키고, 모바일투표를 도입해 당원의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킨 것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노동당의 권력집중은 당의 우경화와 함께 진행된다.


지구당을 부활시켜야 한다. 지구당을 중심으로 당원 사이에, 당원과 유권자 사이에, 당원과 선출직 공직자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질 수 있다. 당내 당으로서 청년당, 노인당, 여성당, 노동당, 소상공인당 등 각 직능별 당원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당원의 직접 참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많이 있다. 독일 해적당은 리퀴드 피드백(liquid feedback) 시스템을 활용해 모든 의사결정을 당원들의 손에 맡기고 있다.


<요약 - 신당의 방향>

1) 야당 교체 -> 시스템 교체

2) 진보 정당 -> 국민 정당 (or 서민 정당)

3) 명사 정당 (or 엘리트 정당) -> 풀뿌리 정당

4) 이념 우선 -> 정책 우선 (or 민생 우선)

5) 위에서 아래로 -> 아래에서 위로


6. 검은 백조는 날아 온다

오늘 원탁회의로 모인 우리는 한국정치를 바꾸고 나아가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양대 기득권 정당의 과점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며, 이를 위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로 모였다. 앞서 제시된 현실인식과 여러 제안은 오늘 회의를 준비해온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예비토론의 결과이며, 논의를 여는 마중물에 불과할 뿐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신당의 이념, 노선, 강령, 주요 정책, 당의 조직구조, 운영방안 등은 신당에 참여할 모든 구성원들의 창발적 노력과 토론으로 채워져야 한다.


신당이 구체화될수록 저항도 커질 것이다. 벌써 새정치민주연합과 친야 지식인 및 언론들은 야권분열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신당이 야권을 약화할 것이란 주장은 허구다. 실제로는 반대이다. 신당 창당은 국민주권을 강화하고, 덤으로 야권을 강화할 것이다.


신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위를 일시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 신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의 신임을 놓고 경쟁하게 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고, 혁신에 더 힘쓸 것이고, 그 안의 개혁그룹의 목소리는 높아질 것이고, 더 강해질 것이다. 선택권이 넓어진 국민의 힘은 커지고, 덤으로 야권 전체의 힘도 커질 것이다. 따라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신당 창당을 환영하는 것이 옳다.


현실론도 있다. 동참하는 의원이 한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신당이 되겠냐고 한다. 과거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사례와 원인을 줄줄이 꿴다.


검은 백조는 '극단값'이다. 극단값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존재할 가능성을 과거의 경험으로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검은 백조는 매우 큰 충격을 안겨 준다. 일단 그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인간은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검은 백조를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나심 탈레브, 블랙스완)


많은 사람들이 신당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가능성은 회의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서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신당이 성립하면 한국 정치에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일단 성립하면 사람들은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신당 출현이 불가피했었음을 설명하려 들 것이다.


안철수는 실패했어도 안철수 현상은 살아있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적 메시아니즘의 한 변종이다. 그 현상에는 한 인물에게 모든 것을 기대려한다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간절함 아울러 기꺼이 변화에 동참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폄하할 수 없다. 박상훈도 우리 정치가 “두 개의 거대 정당으로 이루어진 독과점체제”이고, 안철수 현상을 만든 시민들의 정당에 대한 비판은 이에 대한 것이었고, “그들의 진정한 기대는 제대로 된 정치세력에 대한 바람”이라 했다.(박상훈, 경향신문 칼럼) 각종 여론조사는 때때로 제1당을 능가하는 무당파의 견고한 존재를 보여준다.


신당은 반드시 출현한다. 검은 백조는 온다. 그날은 검은 백조가 반드시 날아올 것이라 믿고 대비한 사람들의 시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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