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아십니까? 2/1
작성자 박순웅 작성일 2015-04-23 오후 10:43:52

대포집 그때를 아십니까?


★ 니나놋 집(일명 대폿집)

어려웠던 시절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이면 생활과 일에 찌든 술 꾼들이 피곤과 삶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삼삼오오 어울려 찾아 들던 이른바 "니나노 집" 이 번성 했던 때가 있었다.

★ 금 줄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 하던 시절 금 줄에 걸린 붉은 고추는 행인 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할 만큼 스스로 당당함 을 뽐냈다. 빈부 격차나 신분의 고하, 지역을 가릴것 없이 새끼줄에 빨간 고추와 숯, 솔가지가 매달렸으면 아들이고 가지와 숯만 걸리면 딸이었다.

★ 이

300기 이하이신 선.후배님들은 현역 복무시절 털로 짠 동내의 틈 사이에서 [이 님]들이 살이 통통 찌도록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추억을 갖고있으며 어렵던 어린 시절에 이, 징그러운 미물이 목숨 걸고 날라다 준 인정과 우애의 교감 조차도 지금은 온 몸을 활보하던 스물거림의 추억과 함께 잊혀져가고 있다.

★ 헌 책 방

40대중반 이상이면 학창시절 헌 책방에 얽힌 추억을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미팅으로 만난 여학생과 대화를 위해 고전 문학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던 곳,멀쩡한 교과서나 사전등을 팔아 군것질을 하기위해 찾았던곳,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새책값으로 헌책을 구입하고 나머지는 군건질이나 미팅 비용에 슬쩍했던 일등….

★ 뻥 튀기 장수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60∼70년대의 풍경이다.

당시는 주전부리 라고 해봐야 고작 찐 고구마,감자,옥수수 등이 전부였다.
봄 부터 여름 까지 과일등 으로 입을 달래던 꼬마들은 날씨가 선선해 지면서
주전 부리를 할 먹 거리가 별로 없어 심심하였다.

이런 가운데 뻥 튀기 장수라도 올라치면 최고의 군것질 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눈깔사탕"과 같은 것도 있었지만 큰돈 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이 뻥

튀기였다.

★ 측 간

결코 아름답거나 향기롭지 못했던 것들도 현실이 탈색되면 향수의 대상이 된다.
"측간"(厠間)이란 말에는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가려주는 시간의 먼지가 소담하

게 쌓여 있다.

★ 지 게

북청 물장수 물지게, 영 호남의 바지게 등 온갖 지게는 사실상 용도 폐기되고

​몇개는 박물관으로 옮겨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난데없이 ‘지게차’란 서양차가 태어나 지긋지긋한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

★ 전 당 포

전당포가 절박한 삶의 마지막 구원처가 되었던 그때 그 시절이 있었다.
고작 몇 천원짜리 꼬리 표를 매단채 시커먼 금고 속으로 사라지는 고물
태엽 시계 같은 삶의 사연들로 전당포 문지방이 닳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 서 커 스 단

빨간 코에 얼룩무늬 옷을 입은 피에로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롱을 피울

때는 부초(浮草)같이 떠도는 그네들의 삶의 서글픔 마저 배어났다.

★ 엿 장 수

보리 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배고픈 시절, 엿 장수는 시골 어린이

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 이었다.

동네 입구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집집마다 꼬마들은 부리나케 움직인다.
엿 장수가 오길 기다리며 모아 놓았던 갖가지 고물을 챙기느라 부산하다.

★ 흑 백 탤 레 비 죤

시골에 처음 흑백 T V 가 들어온 것은 60 년대 말에서 70 년대 초.
값이 비싸 대개 한 동네 통 털어 제일 잘사는 부자 집 한 집에만 TV 가 있기

마련 이었다. 라디오 보다 몇 백배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저녁마다 그 부자집

마당은 T V 를 보러온 마을 사람들로 꽉 차곤 했다.
T V 를 가진 부자 집의 "TV 유세" 는 대단했으며 이들은 흑백 T V 를 보물 단지

모시듯 했다.

낮에는 자물쇠 를 채워 놓은 집이 흔했다.

★ 꽃 상 여

기억 나시지요.

아득한 들길 멀리 너울 너울 꽃 상여가 떠나고 마침내는 "어 화 널 어 화 너 얼

어화리 넘 자 어 화 너얼" 애잔한 상두꾼들 소리조차 가물 가물 아지랭이에 먹

힐 즈음이면 뜸부기 우는 들 가운데 서서 까닭없이 눈물을 훔쳤던 콧잔등 싸한

추억이.....

★ 방 앗 간

정미소가 사라지는 것은 쌀 생산량이 줄어 들어서가 아니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대형 도정 공장 때문이다.
도시에서 대형 유통 업체가 구멍 가게를 몰아내는 적자 생존의 법칙이 농촌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 요 강

돌이켜 보면 요강 만큼 우리 삶의 흔적을 많이 함축한 것도 흔치않았습니다.
염치(廉恥)가 중했던지라 낮에는 딴전 부리듯 마루 한쪽에 엎어두지만 부엌일

​마친 어머니 요강 단지를 방 한쪽 구석에 들여놔야 비로소 일과가 끝났습니다.
바로 뼈 빠지는 노동의 대미(大尾)에 요강이 있었던 것이지요.


★ 학 교 종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 교정에 맑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든 학교 종소리.

땡 땡 땡,그 소리가 그립다.


★ 고 무 신

20 여년 전만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용되던 고무신이 요즘은 특별한

때 특별한 곳에서 쓰는 것으로 인식될 만큼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 성 냥
선진국에서도 성냥산업이 사양 산업으로 분류돼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 물 장 수
집 집으로 물을 팔러 다니는 물장수의 모습에는 급수시설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옛 시절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우리들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상수도가 본격 보급된 뒤 "물장수"라는 말이 거리에서 사라져갔다.

◈세월의 역사속에서 빛바랜 옛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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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중국인촌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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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용주골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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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 남해항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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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역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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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영도다리 부근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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