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명 사 랑
2015. 2 조경숙
나는 아이들의 이름에 대해 깊은 관심이 많았다. 한 생명이 태어날 때 그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과 애정과 기대를 가지고 그 이름을 지을까 해서이다. 대부분의 이름은 한자어를 염두에 두고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물론 순수한 순 우리글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허술하게 지은 이름은 하나도 없다.나는 신학기가 되면 아이들의 이름에 담긴 소중한 뜻과 한자어를 풀어오게 하였다. 학급 아이들의 이름을 출석번호대로 정리하여 교실 뒤 게시판에 일 년 내내 게시했다. 내 이름 뿐 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이름도 소중함을 알게 하는 생명사랑 교육방법이었다. 아울러 자신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졌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애완견이나 동물, 풀이나 나무에도 정성을 다하여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왜냐면 생명은 하나같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희망사랑시집 ‘베이비박스에 희망을 싣고’라는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그 박스 안에는 이름도 생년월일도 없이 간단한 포대기에 쌓여진 채로 발견되는 영아들이 있다. 생명이란 무거운 주제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누구든 그 설치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찬성의 말에는 생명존중의 감성이 들어있고, 반대의 말 속에는 합리성이 들어있다. 국가의 정책과 법과 제도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그 박스가 왜 필요하냐고 말할 수 있다. 열 달 동안이나 자기 뱃속에서 먹고 자란 아이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누구든 말할 수 있다. 임신에 대한 사전 교육이 사건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쩌랴. 며칠 전에도 검은 비닐봉지 속의 영아가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되는 세태인 것을. 이론적으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이미 이 험한 세상에 던지어 진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시인들은 말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외친다.
도현미 시인은 ‘ 숨고르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홀로서기에 나선 아가야, 그래서 미안하다.’면서 절규한다.
‘엄마 아빠는 아마도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저를 저 상자 안에 넣었겠지만 또렷한 엄마 아빠의 목소리와 얼굴을 엄마의 동굴 속에서 부터 알고 있었다.’고 이미선 시인은 아이의 마음을 빌려 호소한다.
베이비박스 기금을 후원하는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회장은 기념 축사의 말에서 국내 항공회사의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울먹거렸다. 말로만 듣던 ‘고아수출’이라는 생생한 현장증언은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70년대 초, 국제선 비행기 맨 뒷부분 좌석에는 외국으로 입양될 아이들이 매일 사십 여 명 씩 탔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영아들은 차라리 괜찮았다고 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내는 굉음소리에 네다섯 살 된 아이 한 명이 앞날이 순탄치 않을 비극을 예감해서인지 비행기 벽면을 쥐어뜯으며 울면 모든 아이들이 따라 울부짖었다고 한다. 엄마아빠가 사는 고국을 완전히 등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느낀다는 것이었다. 칠십 년 간 살아오면서 그때 그일 같이 힘든 일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며칠 전 TV 동물농장 프로그램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지붕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방영하고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서도 그 주특기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웃들은 마음을 졸였다. 앞 건물에 사는 젊은 여인이 안전장치도 전혀 없는 위험한 창문 난간 위에 올라 비밀봉지에 싼 고양이의 먹이를 반대편 난간으로 성공할 때까지 던져주고 있었다. 그녀의 엄마는 혹시나 딸이 떨어질까 봐 다리를 붙들고 안절부절못하며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사연인즉 사람 손에 길들여진 집고양이가 어떤 연유인지 자기 집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들고양이 신세가 된 것 같다. 그 거친 환경 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붕꼭대기로 쫓겨 올라갔을 것이다. 내려다보이는 살벌한 세상이 두려워 다시는 내려갈 엄두를 못 냈을 것이라고 동물병원 의사는 진단했다. 그 젊은 모녀같이 이렇게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은 도처에 있다. 인간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선한 모양이다. 살맛나는 세상이다.
얼마 전 ‘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 있었다. 임신 팔 개 월 된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사 들고 오다 변을 당한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 두 명,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까지 합쳐 세 명이나 일시에 잃었다. 아니 그들 부모, 친척 등을 모두 합치면 엄청난 숫자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시민들은 그 범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드디어 찾아냈다.
‘크림빵 아빠’인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그 범인을 두 번씩이나 용서한 것 같다. 그도 한 집안의 가장이며 또한 어느 집 안의 아들일 거라면서. 우리 애는 땅 속에 있지만 그 사람은 이제부터 고통이 시작되지 않겠느냐고, 나도 우리며느리도 굳세게 살 거란다. 생명사랑은 이렇게 이어가고 또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슬프면서도 숭고하다.
이유미 박사가 지은『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나는 아이들의 필독도서로 선정하여 수시로 읽게 했다. 풀과 나무라는 생명에게서 오래된 삶의 법칙을 배우게 된다는 편지글이다.
김용택 시인도 고3인 딸에게 이 책을 권했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과 생명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엿보면서 몸과 마음의 피곤을 달래라고.
하루에도 수없이 쉽게 밟히는 아주 하찮은 벌레와 풀들까지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순전히 귀한 생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