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군에게 보내는 편지
[제목] 아빠 !「죠리 뽕」사 주세요
L 군!
「용마」회보가 며칠 전에 배달되었어요. 정성스레 페이지를 넘기는데 8 페이지에 군이 아내와 어깨를 다정하게 포옹한 채 귀여운 딸을 감싸 안은 사진이 “아빠 금연초 사줄까?” 하는 글 제목 밑에 실려 있더군.
훑어보니, 초등 2년의 딸애가 승용차 운전 중 군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고 “아빠! 금연초 사줄게 담배 끊어” 하는 말을 듣고, 돼지저금통을 털어서 금연초를 사주겠다는 진한 사랑이 농축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 날부터 담배를 끊어 딸애의 사랑에 화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로 끽연 자에게 금연할 것을 잔잔하게 설득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 가슴이 찡하였다네.
평소 못난 나를 그래도 선배라고 늘 챙겨주고 관심을 보여주었는데 문득 무심하였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네, 용서하게--.
L군,
나는 화랑담배로 시작했네. 군에 입대한 것이 1959년이고 담배를 끊은 해가 1967년이니, 내 골초 시절은 대략 7-8년이 되나 보네. 내가 담배를 끊은 해수를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가 군에서 담배를 시작했고, 제대 후 '충주 비료(주)'에 근무하다가 ‘66년에 마산에 새로 건설하는 한일합섬(주)로 전직한 이듬해이기 때문이야.
끽연 기간이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니코틴이 충분히 내 몸 속에 축적되었을 터--, 금연이란 쉽지 않았다네. 몇 번 시도하다가 실패도 거듭하였네. 호주머니 안은 언제나 담배 부스러기로 불결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어 털자니 귀찮기도 하였다네.
아주 오래전 얘기야, 어느 날 퇴근하여 월세 집 대문을 들어서는 나에게 네 살 박이 맏딸과 터울인 둘째 딸이 나를 반가이 맞이하면서 "아빠! 죠리뽕 사주세요!" 하고 달라붙는 것이었네. 내 호주머니에는 겨우 2-3백원의 돈이 있었을 뿐인데---.
이 때 성인이 어떤 계기로 큰 깨달음을 받듯, 나도 ‘담배를 끊자! 그리고 그 돈으로 아이들에게 죠리뽕를 사주자! 지금까지 애들에 대한 내 사랑이 부족했음을 갑작스레 발견하고 놀랐었지. 위대한 대오각성이었네---.
뭐 그딴 일로--, 하지말게
그 300원은 사실 내 지출비용의 첫 항목인 담배구입비가 아니던가.
구멍가게를 찾아가서 죠리뽕 3봉지를 샀지, 둘이 나눠 갖고, ‘하나는 엄마 것--’, 하며 밝게 웃는 모습--,
지금도 내 뇌리에 저장된 그 때 그 그림이 망막에 투영되어 가슴이 아려온다네--,
기가 찼었지, 당시야, [금연초]나 [담배사냥꾼]같은 처방약이 있기나 했던가. 있어 본들 내 형편엔 빠듯한 가계비로 엄두를 낼 수 있었겠어.
‘별 것 아닌 얘긴데 뭐 야단인가’ 하지 말게, 그 때 형편으로 3백원 답배 값은 큰 액수였고, 금연이란 예나 지금이나 보통 결심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 않는가.
요사이 끽연 애호가들이 단연하지 못하고 마치 중병을 치료하듯 비싼 약들을 사먹고 야단 굿을 벌이는 것을 보면, 정말 격세지감이 든다네.
조상들이 벌인 단연운동이 생각나는구먼--.
1907(융희1년)년경 대한제국이 일본에 빌린 외채(外債)가 천 삼백 만원이나 되었는데, 이 돈을 갚지 못하자 국가재정이 일본자본에 예속되어, 이 상태로 가다가는 도저히 자주 국가로의 갱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대구 광문회의 서상돈. 김광제 같은 민간인 젊은이들이 주도하여, 일본에 진 빚 천삼백만 원을 2천만 국민이 석 달간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모아서 갚자는 국체보상운동을 벌였는데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국권을 회복하자는 열화 같은 애국운동이 일어난 일도 있었다네.
이런 운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금연운동이었지만, 요즘은 국민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면서 국가가 앞장서 금연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보면, 고소를 금할 수 없네.
오히려 담배 판매량이 줄면 국가 세입이 줄어드는데, 금연은 반 애국으로 볼 수도 있잖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네.
나는 당시 내 가정의 생계를 위해, 그리고 내 가정의 사랑과 믿음의 복원을 위해 그 맛나던 담배를 끊었다 말일세. 그 때부터 내 지출 항목에선 담배구입비가 사라졌지.
지금 나는 금연 득인지 모르지만 70을 넘어 섰지만 아직 건강하고, 동기들 중에서 너무 젊어 보인다고 왕따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네. 유쾌한 왕따지 않는가.
L 군!
군은 "아빠! 금연초 사줄까!"하는 딸애가 주는 사랑으로 담배를 끊었지만, 나는 "아빠! 죠리뽕 사주세요!"하는 딸들에게 사랑의 시혜를 위해 담배를 물리쳤다네. 분명히 말하네만 담배를 끊게 된 동기의 가치로 평가한다면 군은 사랑을 받으면서 끊었고, 나는 사랑을 주면서 끊었다는 사실이네.
흔히들 말하기를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나의 금연 동기가 군보다는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실현한 행위인 점을 인정 해주게---.
하, 하, 하---.
L군!
다 쓸데없는 얘기들이고, 실은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시대의 가난과 아픔을 말하고자 했음 일세---.
죠리 퐁 한 봉지 사주기 위해 금연해야했던 그 시절이 자꾸만 그리움으로 물결쳐 가슴이 아려온다네.
못난 선배의 푸념
L 후배에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