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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을 나이를 꿸 수 있는 꼬지로 치면, 내 삶의 꼬지도 거의 꽉 차서 몇 해를 더 꿸지. 인생이 덧없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시리도록 저려 온다.
힘께나 쓸 때, 늙은이가 된다는 것은 남의 일로 치부하였는데, 요즘 내 뒤편을 훑어보니 꼬지에 가득 꿰어진 연륜(年輪)이 북어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는지라, 어떤 수단으로도 여남은 개 빼버리려고 좋다는 탄약도 지어먹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운동도 해보지만 별 효험도 있는 것 같지 않고, 겉 매무새라도 노티를 벗어보려고 뽀얗게 바랜 머리칼을 흑갈색으로 물들여 보곤 해도 내 행동 거지에서 탕수 국 냄새가 우려 나올 것임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다행이 햇빛을 반사할 정도로 머리숱이 빠지지 않는 것만은 어느 조상이 물려 준 유전인자인지 몰라도 정말 고밀도(高密度)의 머리숱을 남김없이 저승으로 되 가져가신 이름 모를 할배가 고마울 따름이다. 나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열댓 살이나 아래 인 대머리 조카 한 놈이 있는데, 나와 만나 술잔을 나눌라치면 가끔 하는 말이 “내가 조상님께 대궐 같은 집을 물려 달라 캣나 논밭을 물려다라 캣나, 줄기 없으면 그만 이지 해필이면 대머리를 물려 줄기 뭐꼬” 하고 대머리 선조를 묶어서 원망하면, 나는 그래도 아재비라고 “일마야 니가 이 아제한테 투정하는 것은 조치만, 조상 원망은 왜 하노. 그 대신 니한테는 좋은 성품과 탐스런 인물을 줏꾸마능 고거는 우째 까묵고 인노.” 하는 등 반 농 짓거리를 주고받으며 취기를 만끽하는 것이다.
하기야 그 조카 놈이 다섯 형제 중에 유독 자신의 머리만이 하늘로부터 제일 가까운 최상단 부위에서 뒤편으로 기울면서 숲 속의 헬기 착발 장 마냥 매끄럽게 탈발 되어 번쩍이고 있으니, 얼핏 그 쪽 풍경만을 크로스 업 시키면, 결례지만 이 곳 긍지인, 전직 국정 총수 분의 후미 두상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언제 최고품의 가발을 하나 사주어야지 하고, 혼자 벼르다가 여태 실천하지 못했음을 자책을 해본다.
내 나이 이렇게 꽉 차다보니, 이전(以前)에는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좋다”는 속담을 가볍게 듣고 넘기던 내가 요즘은, 날이 바뀌고 해가 더할수록, 위 속담이 나에게 주술(呪術)을 걸었는지 향애심이 가슴속에 소록소록 피어올라, 명절 때라야 일 년에 두세 번 공식 행사인양 마지못해 오가던 고향길이 이제는 한 달의 3분의 1 쯤을 고향 산하에 파묻혀 싱그러운 풀 냄새와 꾸릿한 흙냄새를 맡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겨우 하늘을 가리고 숙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둥지를 틀어 놓고 잡사(雜事)의 일정(日程)에 따라 남북 몇 백 리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세월을 파먹고 지내는 노구(老軀)인기라. 그러니 귀소(歸巢) 본능(本能)이 하찮은 동물들에게 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도 늙으면 고향을 찾는 것이 섭리(攝理)인가 싶다.
바로 조상의 얼과 핏줄이 뿌리 내린 땅이 내뿜는 신비한 흡인력(吸引力) 때문이지 않나 싶다.
내 본향(本鄕) 합천이 한 때, 17만 명이나 되는 인적 자원을 포용하고 있어 군세를 자랑한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겨우 6만여 명에 지나지 않아 단독으로 국회의원을 뽑지 못하는 약소 지자체(地自體)로 전락하여 있음에 가슴 조이는 아픔을 느낀다. 그러나 넓은 땅에 인구가 적으니 우선 단위 공간이 넓어 숨쉬기가 편하고, 천연의 환경자원이 보다 보존되어 더욱 좋다. 황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마름 없이 흐르고, 한결같이 출중한 전국적 인물을 키워내고 있으니 자랑스럽다.
들이쉬는 공기마다 옛 향기가 베여있고, 발 딛는 곳마다 동심이 묻어난다. 보이는 풍광은 옷을 갈아입듯 꾸밈새는 변했으나 그 산하는 옛 모습 그대로다. 진녹색으로 변해가는 갈마산과 무당바위 저편의 서쪽 노을에 잠시 취하여 섰노라면, 어느새 아스라이 옛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의 추억들이 망막을 자극하여 나를 육갑 이전의 시간대로 되돌려 놓는다. 뒹굴며, 뛰며, 싸움박질 하면서 유년기에서 소년으로 바뀌었고, 옆집 가시나를 보고 가슴 태우면서 귓 뿌리의 솜틀을 걷어내고, 소년들의 중앙청 요지에 까칠까칠한 숲의 밀도를 높여갔다. 꼬치친구 o일, o기, o진, o필 등과 멱 감고 피라미 잡던 옛 강물, 병정놀이 술래잡기로 다져 온 골목길, 박빙의 논에서 썰매 타다 낭패 당해 물과 뻘로 범벅이 된 바지가랑이와 구멍 난 양말을 모닥불에 태워먹던 그 논둑 등, 한동안 잊고 살아오기를 반세기, 그 대지 위에 자의든 타의든 고목이 되고서야 뿌리를 내리려니 숨 가쁘고 힘 부친다.
이런 노쇠한 내가 막역지우는 저승으로 보내고, 고향의 대지 위에 고독한 존재임을 확인할 때마다 오늘과 미래는 희미해지고 옛 사연들만 하루에도 수십 번 HD 화면처럼 뇌리에 투영된다. 그래 ! 옛을 지우고 오늘을 확인하자. 그리고 미래의 그 날이 올 때까지 소박한 꿈을 키우자. 그 꿈을 새 친구들과 엮어 나가자. 미래의 그 날이란 과연 무슨 날이기에. 내가 내뱉은 말임에도 아리송하다. 진정한 친구라면, 세대가 무슨 문제이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