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슬픔
작성자 박순웅 작성일 2014-05-22 오후 6:32:09

[김동률 병영칼럼] 아버지의 슬픔

세계적인 경기를 보다 보면 자주 듣는 소리가 있다. “영광을 어머니께 돌리고 싶다”란 말이다.

홍수환도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지만 아버지 얘기는 한 마디도 않았다.

병영생활을 다룬 TV의 ‘우정의 무대’ ‘진짜 사나이’도 비슷하다.

훈련병도 역시 엄마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적시지만 서운하게도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가끔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경우 대개 그 말을 하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에게 공을 돌린다는 말은 정말 듣기 어렵다.

그래서 살아생전 서로 밉고 으르렁대기만 하다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그립고 보고 싶은 묘한 대상이 아버지다.

 실제로 많은 아들들은 아버지를 멀리하고 싶어 한다.

시인 신경림도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아버지 자리는 늘 무언가 허전하고 쓸쓸하다.

 부모의 사랑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 성격을 띠고 있다.

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지만 아들은 기대하는 모습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딸 바보’는 주변에 넘치지만 ‘아들 바보’는 아주 드물다.

실제로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이 기대하는 기준에 도달해야 만족하며,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고 미워하고 증오한다. 심할 경우 의절 관계까지 나타난다.

재벌들이 아들이 여러 명이면 뻣뻣한 맏아들보다 고분고분한 둘째나 셋째 아들을 후계자로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아들은 드물다.

아들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은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의 성묘길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은 아버지와 아들이 단둘이 대화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평균 7분 정도에 그쳤다.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많은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애정을 아예 갖지 못하거나 설사 가진다 하더라도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일생을 보낸다.

재미있는 것은 무뚝뚝한 아버지라도 아들의 아들인 손자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보인다는 것이다.

손자에게 보여주는 애정을 아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의 아들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남몰래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들들은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이 얼마나 슬프고 고독하고 처절한 것임을.

이 땅의 모든 아들아,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 보기 전에 부디 미리 알아다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온 아버지가 더 이상 슈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나의 헌사다.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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