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출판기념회, 이대로는 안 된다
최근 중앙선관위는 '2013년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 현황'을 공개했다. 대부분 모금액이 1억5천만 원 선에 걸쳐 있다. 정치자금법상 연간 모금한도인 1억5천만 원을 초과한 금액은 다음 연도에 이월되기 때문에 한도액 수준으로 모금하는 게 일종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가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선거일 전 90일까지 허용되기 때문에 그 기간에 맞춰 선거에 나서려는 각급 단체장과 의원 후보들이 너나없이 책을 펴낸 것이다. 자신을 홍보하고 세를 과시할 수 있어 출판기념회는 선거출정식이나 다름없다. 책값으로 받는 돈은 사실상의 후원금이자 선거자금이지만 한도가 정해져있지 않고 공개할 의무도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 정치자금법이 있으면 뭐하는가. 공식 후원금 모금액만 한도를 정하고 공개하는 건 뒷문 열어놓고 앞문만 단속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일은 뼈를 깎는 작업에 비유된다. 그래서 출판을 축하하고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조촐한 모임이 출판기념회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사뭇 다르다. 모임의 장소는 호화스럽거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몰려든 사람들이 책값이라고 할 수 없는 액수의 돈 봉투를 들고 줄을 선다. 책을 사서 읽으려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주인공인 저자와 얼굴 맞추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수천 권의 책이 동이 난다. 이건 한편의 희극이자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는 대부분 정기국회기간에 열린다. 국정감사를 받는 기관 줄 세우기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유력 정치인들이 걷어 들이는 책값이 억 단위가 된다고도 하고 10억 원을 초과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거액의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모우는 이런 창구가 있다는 건 그들에게 축복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경험, 포부를 책으로 내는 것은 장려할 일이지 비난할 일은 아니다. 정치인이 훌륭한 책을 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책값 수금방법이고 책의 내용과 질이다. 남이 대신 써준 것을 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자기가 쓰지 않은 책을 내는 건 도둑질이요 사기다.
어떤 정치인은 이미 펴낸 책을 제목만 바꾸거나 한번 선보였던 책을 다시 출판해서 모임을 강행했다. 목적은 책값을 핑계로 거둬들이는 돈 봉투에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는 정치인은 바보’라고 하는 소리가 나오는데도 출판기념회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국회의원도 있다. 그 재선의원은 “책을 낼까 생각해서 글을 써놓기도 했지만 그런 글을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게 양심상 허락이 안됐다”라고 말한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후죽순처럼 열리는 출판기념회에 대한 비난이 일자 여야대표는 "정치자금법을 정비하겠다거나 회계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수금창구를 스스로 닫을 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출판기념회를 그대로 둔다면 무엇보다 먼저 정치인 스스로 책값으로 받은 돈 액수를 밝히고 세금을 내야한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는 게 옳다. 정치인이라고 예외가 될 이유가 없다. 출판기념회를 공식 후원금처럼 중앙선관위의 통제 아래 두는 방안도 마련해야한다.
좋은 책을 펴내고 읽는 건 좋은 일이다. 그건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책보다 더 위대한 교사는 없다. 누구나 책을 펴낼 수 있다. 하지만 독자의 지적 호기심과 지식을 충족시켜줄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良識)은 있어야한다. 책을 출판하는 정치인들의 답을 듣고 싶다. 지역과 사회와 국가를 다스리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에게 그런 걸 묻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