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안 죽는' 세상이 온단다. (나의 시사칼럼에서)
작성자 이헌진 작성일 2014-02-06 오전 11:28:34

커즈와일 같은 미래과학자는 2045년이 특이점의 해로 그 때부터는 세상이 기존의 원리대로 굴러가지 않고 새 세상이 된다고 예고했다.

인간의 수명이 무한대로 늘어나 죽음이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주장에 대해 옳다고 인정하는 저명한 과학자가 더러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무어 같은 학자도 컴퓨터 칩이 1년 8개월 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법칙 발표했고, 이에 답하듯 위 커즈와일도 2030년이면 우리가 이용하는 백만 원짜리 컴퓨터 하나에 인간 한사람의 두뇌만큼의 기억을 하게 되고 2060년이 되면, 전 인류의 두뇌를 합친 만큼의 기억을 위 백만 원짜리 하나의 컴퓨터가 발휘 할 것이라 고 예고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30년 후쯤 되면, 사람의 수명이 10세기 동안 아니 영원히 향유할 수 있게 된다고 하니---.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어쩔 바를 모르겠다.

하늘이 준 인간수명 백년 안팎을 피조물인 인간이 수명을 무한대로 생체를 개조하여 변화시키는 짓은 신을 조롱하고 배반하는 행위가 아닌가 싶어 오싹하게 전율이 인다.

이 같은 생명무한의 시대가 70을 넘긴 노인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라 여겨져 서글프고, 한편 삼사십 대 젊은이들이 누릴 것이라 생각하면 어쩐지 샘이 난다.

그러나 인간이 수명이 천년을 넘기고, 오늘날처럼 출산율이 줄어들면, 천년 후의 인간 사회와 이 지구의 생태계는 어떻게 변모할까 생각하니 지금 내 두뇌로는 그 가공할 변화를 가늠할 수 없고, 한편 신은 자신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한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아 낸 것처럼 인간을 이 지구상에서 절멸시키는 파경이 올까 두렵다.

다만 인간수명 천년의 미래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명제는 이제 학계나, 세계 지도자들이 지구 온난화와 더불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만은 작은 목소리지만 이 글을 통해 호소한다.

참여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이지 싶다.

나는 칠십을 앞 둔 늙은이지만 별 찬은 경력들을 인정받아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서 더러 대표나 임원에 천거되기도 했었다. 이를 때 속으론 은근히 기쁘면서도 "나 같은 늙은이가 지혜가 있나, 힘이 있나, 재력이 있나 제발 좀 빼주소" 하고 거절을 해본다.

그러면, 젊은이들 가운데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요즘은 60십부터가 인생의 출발이라는 데요"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고, 그리고 "옳소"하고 받아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때, 솔직히 내색은 아니 하지만 속으로는 어른의 칭찬을 받는 어린애처럼 기분이 좋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공식 모임에 초청되어 마지못해 참석해 보면, 모임주최 측에서나 안내원이 머리가 반백이고, 줄음 진 내 얼굴을 힐끗 보고는 눈길을 피하는 것이 예사다. 그리고 인생은 60십부터라 하는 말도 듣기가 힘들어졌다.

왜일까. 노인들이 별 볼일 없는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지 싶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지도자들이 '노인들은 활동무대가 없으니 집에서 푹 쉬세요' 라고 하니 너무나 당연하지. 그러니 시중의 젊은이들이 '노인들은 인체 학 상 뇌 세포가 많이 죽어 활동에 무리가 있어, 늙으면 자리를 물러나야 돼 하며 멸시와 창피를 주는 것을 예사로 하게 되었다 그 말이다.

이런 노인 폄하 의식을 가진 지도자들이 노인들이 수백 세를 향유하고 살수 있다는 위 소식을 접하고 어떤 감회를 느꼈을까 궁금하고, 사실 현실로 다가왔다면, 그 때는 어떤 말과 태도를 취할지도 궁금하다.

노인 폄하사상은 따지고 보면, 늙은 노인들의 사회적 생산성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잠재의식에 기인하며, 당연히 인간의 윤리와 삶의 가치를 저버린 만행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명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동물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노인복지, 복지하고 떠들지만,

노인복지(welfare of the aged)란 뜻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노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가족과 사회에 적응하고 통합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사적(公.私的) 차원에서의 국가적조직적 제반 활동을 의미하지 아니한가.

노인의 '인간다운 생활'이란 노인이 국가, 사회의 발전적 수준에 걸맞은 의식주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면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노인들에게 인적·물적 자원을 찾아 연결시켜 주거나 보충하여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개인의 발전을 위한 욕구충족에 필요한 서비스까지 제공하여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노인의 발전이란 바로 직업을 알선하고, 그들의 미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적 배려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젊은 3.4.5세대 지도자들은 위 인간수명 천년시대 예고에 귀를 기우려야 할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삶의 터전을 만들고, 그들의 권익을 지켜주고, 그들 스스로 집단 이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치적 수단을 마련해 줄 방도를 찾기 위해 지금 이 시간부터 고민하여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우선 정부에 노인청을 신설하고, 노인들을 정당공천에 각 당이 일정 율을 의무적으로 배려하도록 법제화하며, 또 대통령 직속에 노인문제를 다루는 특별위원회를 상설 운용하여야 할 것이다.

신가포르는 '효도법'을 만들어 경제력이 있는 자식이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하지 않을 때에는 고소할 수 있게 법정하였고, 법 발효 후 벌써 900여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우리민족의 가장 으뜸 전통이 되어 있고, 동양의 정신 가치로 인정 받는 '효사상'을 선진국 싱가폴이 일찍 도입하여 물질문화를 만끽하고 있는 점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일본은 벌서 90년도 초반부터,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란 어구를 사용하여 노인문제를 사회문제로 제기하였다.

즉 '노인은 늘어나는데 젊은이들이 줄어든다면 엄청난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국가자체가 고령화되고 국가도 활력을 잃고 생명력이 없는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일본은 '소자고령화 사회'라고 부르며, 공적개호보험(公的介護保險)제도를 실시하였다. ('개호'란 환자를 바로 옆에서 돌보는 것을 말한다)

현재 우리 정권이 대응하는 노인대책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라 생각되고, 이 글을 보는 노인들이 있다면, 가슴에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느낄 것이다.

천년수명시대를 준비하는 첫 걸음이 노인문제라는 것을 위정자는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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