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의 죽음과 공포정치
작성자 이헌진 작성일 2013-12-21 오전 7:18:01

북한의 제2실력자요, 노동당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며,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인 장성택은

자신의 노력으로 권력을 안겨준 김정은에 의해 2013. 12. 8 북한의 최고 의결기구인 노동당

정치국확대회의장에서 체포된 후 4일 만에 총살당하였다.

장성택은 정치국 위원 등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김정은의 탁상을 내리치는 분노의 질타에

묵묵부답하다가 군 정복을 입은 인민 보안원 2명에게 체포되어 연행 되었다.

 

김정은은 누구인가 장성택의 처조카요 장성택은 김정은의 고모부가 아닌가.

장성택은 뭇 시선이 주시하는 가운데 수갑을 채이는 수모와 죽음이 예정된 4일간의 공포,

그리고 총탄을 맞아 뼈가 부서지고 육체가 박살 나는 물리적 폭력으로 생을 마감했다.

마치 밀림의 젊은 숫 사자가 힘 빠진 애비 사자를 처참하게 물어 죽이는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또 노동당 정치국확대회의란 남한으로 치면 국무회의나 국회를 합친 것과 같은 북한 최고

의결기관이다.

이런 중대한 회의가 열리는 현장에서 장성택이 체포된 것이다.

우리 국회 본회의 석상에서 현역 국회 부의장이 체포되는 경우에 버금간다.

국회의원은 불체포 특권으로 회기 중에는 구속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일 야당의 국회의원들은 지금 박근혜 정부를 독재정부라 매도하고 우국민이

뽑은 대통령임도 물러나라고 야단이며 민주주의정치가 말살되었으니 복원하자고 고함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야당은 북한 인권 법안을 만들자는 여당 안에 반대하여 법제화를 저지한

사실을 기억한다.

우리는 보았다. 장성택의 체포와 실권(失權)을 여러 정부 기관에서 사실 단정을 유보할 때, 국정

원만은 정보력을 통해 정확하게 판단하였다.

그럼에도 지금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야당이나 재야단체는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직접 눈으로 보지는 아니하였지만, 북의 생생한 보도를 통해 평양에서 일어

난 김정은이 저지르는 공포와 폭력통치를 보았다.

공포정치의 동력은 대중의 공포에서 찾는다.

 

‘군중과 권력’이란 책을 쓴 엘리아스 카네티는 공포는 고양이 앞에서 죽음 직전에 쥐가

느끼는 심적 고통이요, 폭력은 고양이 앞발에 짓눌려 이빨로 살점이 찢어지는 아픔이라고

비유 했다.

같이 북한은 인권이 없는 공포와 폭력 정치가 행해지는 이지구상의 유일한 국가임을 부정

할 수 없다.

 

공포정치의 원조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지롱드 파를 밀어내고 정권을 잡은 자코뱅파가 사회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펼친 정치가 원조이다.

1793년 국민공회를 장악한 자코뱅당은 10월 '혁명정부'를 주창하면서 공포정치를 펼쳤다.

혁명정부는 사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는데,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정적(政敵)이나 반

혁명세력은 철저하고 잔인하게 죽였다.

국민공회의 지도자 로베스 피에르는 혁명재판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길로틴에서 처형시

켰다.

 

자코뱅 당의 공포정치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반감을 샀고, 결국 '테르미도르의 반동'

이 일어나게 된다.

폭군 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에 의해 자코뱅당의 로베스 피에르는 자기가 통치 수단으로 악

용했던 길로틴에서 처형되고, 자코뱅의 공포정치도 1794년 7월 1년 만에 막을 내린다.

공포정치는 근대에 와서는 스타린주의나, 파시즘, 제3세계의 독재정권에서 통치 수단으로

자행되었다.

 

위 역사 사실에서 보더라도 프랑스의 공포정치는 1년 만에 끝이 났고, 스타린의 공포정치나

파시즘정치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북한은 김일성, 정일, 정은으로 무려 3대

에 걸쳐 이어진 권력은 어찌 된 연유인지 반세기가 넘도록 공포와 폭압 정치를 계속해

오고 있다.

1인 외의 모든 사람을 공포에 질리도록 하는 극악한 폭력수단을 통해서다.

 

이런 마의 괴물 왕국인 북한이 유엔회원국이라니--,

 

유엔 인권선언 제3조에는 모든 사람에게는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했으나 장성택에게는 구원의 방도가 아니었고, 제5조에는 그 누구도 고문을 당하거나 잔혹

하고 비인도적이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처우 또는 처벌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했

으나 그림속의 떡일 뿐이었다.

 

또 제11조 1항에서는 형사상의 범죄로 소추당한 모든 사람

은 자신의 변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보장들이 행사된 공적 재판에서 법률에 따라 유죄로

판정받을 때까지 무죄로 추정 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했으나 이런 조문은 무시된 채 군사재

판에 의해 총살형을 당했다.

 

이런 지구상에서는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장성택의 체포과정과 처형을 보면서 아래

와 같이 평하는 기사를 보았다.

 

왈, --「북한은 장성택 처형을 즉시, 공개적으로 알림으로써 북한 내부 단속을 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서 그것은 공포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공포정치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철도 노조원들이 직위 해제됐다. 국가기관 대선개입을 지적했다고

종북이라 매도당한다. 이는 파업을 해서는 안 되고, 국가기관의 행위에 반대하지 말라는

공포정치 아닐까?

 

우리 안의 공포는 외면하고 상대적인 공포를 비난하는 보도는 형평성에 맞다고 할 수 없다.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티끌만 보는 훈계성 보도는 북한을 다루는 기사에

서 흔히 볼 수 있는 안타까움이다.」--

 

정말 기가 막히는 소리다.

 

남(南)의 이기적 난동은 눈에 든 큰 대들보이고, 북(北)의 장성택 파 숙청은 작은 티끝이

란 말인가.

이렇게 인명을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취급하는 북의 폭력 공포정치에 치를 떨면서도

한국사회의 질서유지와 시장경제의 자율적 경쟁 충돌을 보고 북보다 더한 ‘공포정치’라고

우기는 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에 경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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