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작성자 최인홍 작성일 2013-11-25 오전 11:44:16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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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황 정 순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할 거야...

  

  이 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 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뜰 거야...
  백화점에 가서
  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 장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난 푹빠져 잠이 들겠지...

 

  나..  늙으면...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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