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19일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라 부르고 "이는 (일본) 나라의 입장"이라고 했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협의해 중국 하얼빈 역에 안 의사를 기리는 표지석을 세우려는 데 대한 논평에서다. 1982년 일본 역사 교과서들은 안 의사를 '장사(壯士)'라고 표현했다. 일본 말 '장사'에는 깡패, 건달이란 뜻도 담겨 있다. 일본의 극우적(極右的) 인사들의 주장이 이제 일본 정부 대변인의 공식 견해로 올라선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하기 전해인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권총으로 쏘아 즉사시켰다. 이토는 일본 초대 총리로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의 문(門)을 열어젖힌 정치인이다. 1905년 조선에 건너와 조선 대신(大臣)들을 협박해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 체결을 진두지휘했다. 일본은 2009년 이토 사망 100주년을 맞아 이토를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기리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안중근 의사와 이토에 대해선 한국과 일본에서 평가와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안 의사는 거사 후 검찰에서 "이토를 처단한 것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한 것이지 자객(刺客)으로서 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므로 그 죄악을 제거했을 뿐"이라고 했다. 안 의사의 이토 저격에는 침략의 수괴(首魁)를 처단한다는 것을 넘어 동양 평화를 지키겠다는 역사적·도덕적 대의(大義)가 있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이 이런 안 의사를 '범죄자'라고 한 바탕에는 안 의사가 제거하려 했던 일본의 범죄적 침략을 정당화하겠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대의는 그 후의 역사 전개로도 증명이 된다. 일본은 이토가 깔아놓은 길을 따라 조선 침략,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치달으며 수십억 아시아인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침략국이 새로운 국가로 재탄생하려면 역사적 인물에 대해 자기 평가만을 고집하지 않고 이웃 피(被)침략국을 의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차대전 때 프랑스나 폴란드 침략에 앞장섰던 독일 정치인이나 군인 중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 있는가. 이토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 애쓴 인물이고 그를 죽인 안중근은 범죄자라는 생각은 가해자 입장에서만 역사를 보는 병든 역사 인식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