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者必滅- 법정스님의 가을 이야기
작성자 박순웅 작성일 2013-10-03 오전 9:54:03
법정 스님의 가을 이야기  
얼마 전 문경에 위치한 <정토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법정스님의 숫한 어록과 족적 그리고 험한 세상을 슬기롭게 지내는 법들을 설파했으며 세계 여러나라에까지 지사를 설치하여 마음교육을 시킨다는 바로 그 정토사의 본부였습니다. 
첫 길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전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123콜센터에 전화로 자세한 정보를 입수한 다음 ,<강변 버스터미널>에 약 두시간 차로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문경>의 <가은>에 거의 두시간만에 하차한 뒤 별도의 셔틀버스가 없어서 택시로 시골길을 통과하여 약간의 언덕 위에 자리한 <정토사>를 찾았답니다.
심산유곡도 아니였으며 입구 주차장에는 수십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고 조금 위 그라운드에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수십명의 교육생인 듯한 중년의 수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으며 더러의 수행자들은 <트레이>에 점심상을 받아들고 햇볕 아래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나 자신도 어느 순간인가 엄숙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무거운 발걸음으로 안내자를 만나 식사까지 제공 받았습니다.
일주일에 약200-250명의 입소자들한테 최소한의 스스로가 할 일이 뭔가를 가르치고 설법에 따라 자아발견으로 발전토록 한다는 취지의 말씀까지 들었습니다.
生者必滅- 직역으로는 생명을 지닌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인데 뒤늦게 인식한 듯한 스스로가 부끄럽게 여겨졌으며 망각으로 긴세월을 지켜온 듯한 착각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고령화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작금의 환경 아래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말고 배려하는 정신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닥아 갈 수 있는 자세로,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씨로 내일을 살아 가려고 합니다.
회원님들께서도 생자필멸의 어원을 새기시면서 값진 삶을 지켜 가시기 바라며 감명 깊게 읽은 법정 스님의 말씀을 올려 드립니다.   <박 순 웅 씀>
 


법정 스님의 가을 이야기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 지려고 한다 .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 잘 귀를 모은다 .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 해진다 .

깊은 밤 등하에서 주소록을 펼쳐 볼

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낸다 .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

이 시대 이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

낮 동안은 바다 위의 섬처럼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우리가

귀소의 시각에는 같은 대지에 뿌리 박힌

존재임을 비로소 알아 차린다 .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

우리들의 현실은 지나간 과거처럼 보인다 .

이삭이 여문 논밭은 황홀한 모자이크

젖줄같은 강물이 유연한 가락처럼 굽이굽이 흐른다 .

구름이 헐벗은 산자락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고 있다 .

시골마다 도시마다 크고 작은 길로 이어져 있다 .

아득한 태고적 우리 조상들이 첫걸음을 내디던 바로

그 길을 후손들이 휘적 휘적 걸어간다 .

그길을 거쳐 낯선 고장의 소식을 알아오고 .

그 길목에서 이웃 마을 처녀와 총각은 눈이 맞는다 .

꽂을 한아름 안고 정다운 벗을 찾아가는 것도 그 길이다 .

길은 이렇듯 사람과 사람을 맺어준 탯줄이다 .

그 길이 물고 뜯는 싸움의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

사람끼리 즐기고 미워하는 증오의 길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

뜻이 나와 같지 않대서 짐승처럼 주리를 트는

그런 길이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인 것이다 .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 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는 사실

생자필멸. 회자정리 , 그런 것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게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

ㅡ 법정 스님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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