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은 조용기 목사님의 ‘3박자 구원론’이 유행하였고, 중국 연변에서는 최상철 교수님의 ‘인생도전 3박자’가 히트를 쳤습니다. 3박자의 인생이라고 했을 때의 그 노래 가락도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이래저래 3자는 우리에게 퍽이나 익숙합니다. 천지인(天地人)을 말하는 삼재(三才)가 그렇고,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말하는 3정승이 그렇습니다. 세 가지의 재앙이라는 전쟁과 질병, 그리고 기근을 말하는 삼재(三災:)가 그렇고, 3족을 멸한다하여 부모와 형제, 그리고 처자(부계, 모계, 처계:妻系)를 살육하는데도 이 3자가 들어가곤 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을 하나로 다 묶어 과거, 현재, 미래라는 3세(三世)까지도 3제(三際)라 하여 3박자를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동서양의 철학에서도 이러한 3박자의 철학은 여전히 잘 통했나봅니다. 특히 서양철학에서는 내노라고 하는 칸트라는 철학자도 자신의 전체철학을 3분하여 소위 3대비판서(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를 남김으로써 불후의 철인이 되었습니다. 이어 헤겔도 자신의 철학체계를 3박자로 마련하여 존재란 무엇이고, 무란 무엇이며, 그리고 생성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나섰습니다. 이를 변증법이라는 살아있는 논리로 밝혀 오랜 세월동안 세계의 철학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습니다. 칸트가 철학의 형식을 우선으로 하였다면, 헤겔은 철학의 내용을 우선으로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3박자의 철학이 현실적으로 우리주변에서는 진선미라는 3박자의 말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넓게는 미스월드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도 진선미라는 3박자가 사용되고요, 작게는 학교의 반명에서도 진선미라는 3박자가 사용됩니다. 그런데 왜 이 진(眞)이 언제나 우선일까요? 미인선발대회인데도 불구하고 미가 왕관을 쓰지 못하고, 진이 왕관을 쓴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선과 미는 언제나 그 다음으로 밀리는 것이지요. 칸트에게서도 이성비판이 우선이었고, 헤겔에게서도 존재론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선하다 혹은 아름답다하는 것은 현실의 가치세계에서는 언제나 뒤로 밀린다는 말입니다. 현실이란 사실의 강제성이 지배하는 현장입니다. 여기서는 참과 거짓을 가리는 인식체계만이 통하지, 윤리나 가치는 통하지 않습니다. 인식만이 참이고 진리입니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자전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사실의 진리을 막아서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철학에서도 인식론이 가장 우선이지요.
그렇다고 인생살이 전체에서는 그러한 3박자의 철학이 그대로 통 할리가 없습니다. ‘현실적 가치’가 늘 참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의 ‘윤리적 가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백년을 살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일 년을 사람답게 살았다는 행적이 더욱 자랑스러운 것이지요. 이러한 것이 참다운 덕이라면 현실적 가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윤리적인 가치이고, 그러한 윤리적인 가치가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도리가 됩니다. 오죽 했으면 소크라테스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사람이기를 바랐고,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를 바랐겠습니까! 그렇다고 윤리적 가치가 다는 아닙니다. 윤리적 가치를 넘어서는 ‘미적 가치’라는 또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소위 아름다움의 세계이지요. 아름다운이라는 이 미적 가치의 세계는 현실적으로 보면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실 한구석에 그림 한 점 걸려있지 않아도 사람이 사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순위로 봐서도 가장 뒷자리로 밀려난 것이 미적 가치의 세계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됨됨이라는 인격성에서 돌이켜 보면 그러한 미적 세계가 오히려 가장 앞자리에 서게 되지요. 이처럼 미적 가치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무력하다고 해서 그저 무기력하기만한 가상의 세계는 아닙니다. 이제 곧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올, 그러나 아직은 다가와 있지 않는 새로운 현실의 세계가 바로 이 미적 가치의 세계입니다. 물론 이를 넘어서는 또한 영적 세계도 있습니다. 오직 깨닫는(覺) 사람들만이 이 새로운 현실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우리 모두가 순간에서도 자유하고 영원에서도 자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3박자의 철학이 다름 아닌 인생살이의 3박자임을 확인하게 되고, 그러한 3박자의 선후관계도 바뀐다는 사실을 인간본연의 형상에서 재확인하게 됩니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을 보십시오. 그들은 인간을 형상화하면서 배위에 올려놓은 양손의 손가락을 3개씩만 조각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인생살이의 3박자란 바로 생과 삶, 그리고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 3박자의 철학을 인생살이의 3박자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