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무엇일까? 혹은 부부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날들이었습니다.
사반세기를 살아도 부모자식이 되지 않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를 보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는것에 대한 회의로 밤잠을 설친게 두 달이 넘었는데.
남편을 볼 때마다 내가 왜 저사람이랑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곤 했네요.
미즈넷의 수많은 사연에 이혼해라. 그만살아라 하는 댓글이 정답일까 하는 마음. 그래도 부부로 살아가는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대한 답이랄까......
아버지는 그시대의 평범한 남편보다는 경제적으로 많이 부족한 분이셨습니다.
몸도 약하고 가진 것도 없이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을 만큼 벌기도 하고 못 벌기도 하고. 결국은 엄마가 가정경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상황이 되었지요. 자연히 아버지는 그시절에는 드믈게 집안살림을 챙기고 약간의 생활비를 부담 하는 주부남이 됩니다. 요즘은 이런 생활도 인정받는 분위기지만 엄마는 그런 남편을 많이 싫어하고 미워했지요. 자상하게 집안일을 챙겨주는 것보다 경제를 책임져 주길 원했으니까요.
그럭저럭 우리형제들이 모두 결혼하고 엄마도 나이들어 일을 쉬고 다시 아버지가 조금씩 벌고 연금이며 자식들 도움으로 살아 가고 있습니다.
친정이라고 가면 엄마와 아버지는 일흔이 넘으신 연세에도 늘 뭔가로 다투고 계십니다.
늘 토닥거리시고 딸에게 서로를 흉보면서 편들어 달라고 하십니다.
"아이고 애정이 넘치십니다.. 한 오십년 넘게 사셨으면 고만 하세요."
한 마디로 자르면서 왜들 저러시나 하고 생각했지요.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 투석을 하는 환자이시고,
아버지는 혼자 일어서는데 삼 분은 족히 걸릴 만치 무릎이 좋지 않습니다.
투석을 하면서 가벼운 어지러움증은 물론이고 순간 순간 기억이 사라지는 증상이 있고 심할 때는 가성치매로 사리 판단이 안되기도 합니다.
젊은 환자들은 혼자서 병원에 가서 투석을 받기도 하지만
엄마는 그게 안돼서 아버지가 병원에 같이 다니십니다.
다들 맞벌이 하느라 몇 년을 이어지는 병원 치료는 부부의 몫이 된거지요.
물론 평온하게 투석하고 약받을 때만 두 분이 하시고.
일 년의 반은 문제가 생겨서 자식들이 따라 다니면서
입원을 하거나 종합병원을 쫓아 다니며 치료를 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투석으로 혈관이 약해져서 오늘은 말짱 했다가도
다음날 보면 온가족을 불러 모아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니까요.
지난 주에도 한바탕 가슴졸이는 상황이 연출 되고 겨우 한숨 돌려서 오늘 퇴원하는 날입니다.
병실에서 옷을 갈아 입히고 짐을 챙겨 나오는데
엄마가 어딘지 이상합니다.
몇 년의 병치레 지쳤을법한 데도 밝으신 성격이고 퇴원해서
집에 가는 것을 좋아 하시는 분인데 영 맥이 없습니다.
저야 워낙 무딘 성격이라 그냥 기운이 없으신가 보다 했지요.
마당에 들어선 엄마는 " 아이고 양대(강낭콩)가 마이 달렸네. 너어 아부지 좋아하겠다.
콩은 아직 꽃이 안피네. 난 그새 다 핐을랑가 했지"
"아직은 꽃이 안피지. 가을이 되야 여물낀데"
"글체............" (지금 생각해보면 이말이 그걸 내가 볼수 있을라나 하는 소립니다.)
평소에 퇴원하면 엄마방으로 쌩하니 들어가실 엄마가 오늘은 이상하게 아버지 방으로 찾아가십니다.
" 퇴원해도 되나? 약은 챙겨왔나?" 아버지는 엄마가 온 게 그저 좋아 묻습니다.
" 나 인자 병원에 오지 말라이더"
" 와, 오지 말래?"
" 몰래, 그만 오고 딴데 가라네. 투석이 안된다네"
" 뭔 소리래? 투석이 안되면 우짠다고? 혈관이 또 막힜나?"
" 딴 병원가라고 그라데, 이번 주만 하고 인자 못한대" 이때쯤 엄마 얼굴은 울상입니다.
병원에서 오지 말라는것을 보면 이제는 영 가망이 없는 것으로 느껴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퇴원하는 것도 인제 집에가서 준비를 하자는 뜻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그기 아이고. 엄마가 잘 못 들은 거다. 투석을 그만 하자는 게 아니고. 그 병원 투석실이 없어 지니까 다른 병원에 가라는 이야기였다.
이번 주까지만 하고 다음 주 부터는 다른 병원 가면 된다."
엄마는 왼쪽귀가 잘 안들리는 상황이라 간호사가 다음 주부터 투석실을 안한다고 하는 것을 투석을 할 수 없다로 오해하시고 마음의 준비를 한 셈이다. 딸에겐 차마 "이제 투석 못하면 어떻게 하냐? 나 살고 싶다" 말 하지 못하고 평생을 투닥거리던 남편에게는 " 여보, 나 살고 싶어. 어쩌면 좋아" 하는 마음을 내비친 겁니다.
"투석하러 오지 말래" 하는 순간의 애처러운 엄마의 표정은 너무 절절해서 아직도
눈에 아슴아슴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신랑 밖에 없다는 느낌.
이 사람은 날 살려 줄지도 모른 다는 기대.
이 사람은 내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진정한 부부가 아닐까?
철들고 나서 한 번도 아버지 좋아한단 말을 하지 않던 엄마.
딸네집에서 자고 가래도...
" 집에 느 아부지 먹을거이 암것도 없다" 하고 집에 데려다 달라시고. 아버지가 뭐 먹고 싶다고 말하면 엄마는 팰요한 재료를 일러주고 아버지는 느릿느릿 시장에가서 한 가지는 빼먹고 재료를 사오시고, 아픈 엄마는 또 느릿느릿 요리하면서 평생 나만 부려먹는다고 흉보시고 연세가 많아서 다른건 다 까먹어도 마누라 병원가는 날이랑. 약 먹는 시간은 절대 안까먹고 챙기고
그렇게 서로 토닥거리면서도 챙기고 보살피고 배려하는게 진정한 부부가 아닐지.
나중에 나중에라도 오랫동안 살아온 정으로 서로 보살피고 믿어 준다면 지금 속상하게 하는건 용서해 줄 수도 있는데...
그기...영 믿음이 안가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