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사평 역의 3-4번 출구 집합 장소에는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하였는데--, 용산 미8군 회합 장소인 호텔 2층 Dragon Hill Lodge에는 마지막으로 들어 선 것이다.
출입자 명단에 내 이름이 누락되어 정문에서 다른 회원이 다 들어가기까지 신원 확인 차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4-50여 명이 복도에 서있고, 더러는 복도 양 옆에 가끔씩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먼저 가슴에 다는 명패를 받았다.
이름 밑에 ‘5’짜가 쓰여 있었다.
홀 안에는 준비관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회원들은 복도의 한 가장자리에 마련된 음료 대에서 자신의 요구에 따라 종업원이 따라주는 쥬스나 칵테일을 컵에 받아들고 서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나 함께 온 일행들이 서거나 의자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혼자 외롭게 서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떤 모임이라도 처음 참석하고, 아는 사람이 없다면, 누구나 어색하고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컴넷을 여기저기 펴 보다가 우연히 은퇴자 협회에서 낸 스프링 갈라 행사의 광고를 보고 참가신청을 한 나는 아는 사람이 없는 게 당연했다.
위스키 한잔을 받아든 나는 혹시 빈 의자가 있는가 싶어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위스키를 청한 것은 알콜 기를 힘입어 얄팍한 용기라도 얻어 내 행동거지를 어색함에서 다소 자유롭게 해방되기를 바람에서이다.
조명이 조금 어두운 안 쪽으로 난 복도를 따라가니 왼 편으로 꺾기는 모서리 벽 측에 놓인 의자에 여성 대여섯 분들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며 왼쪽으로 두세 발자국 옮기는 순간 어떤 여자 분과 어깨를 부딪쳤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고 난 후 벽 족 의자를 바라보니 여성 세 사람이 앉아있는데 한사람이 낄 만큼의 공간이 있어 좀 같이 앉자고 하며 먼저 엉덩이부터 밀어 넣었다. 알콜 약효가 금방 나타난 모양이다.
옆의 여자 분이 일어 났다. 염치없는 눍은 이가 비집고 들어앉으니 불쾌해서인가 생각되었다. 내가 다시 일어서며 앉기를 권하자 그 여자 분은 그냥 앉아 계시라고 권하기에 눌러 앉았다. 먼 합천에서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한 후 너댓 시간 장춘단 공원 부근을 헤맨 관계로 몸이 좀 피로했기 때문이다.
양 옆에 앉아 있는 분들과 자연스레 통 성명를 하고 나니 내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다.
역시 서울의 여성분들은 품의가 있고, 모두가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이 모임에 참가한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모두다 가슴에 명패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성씨를 부쳐 선생님하고 불러 서로 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선생님은 처음 본 분 같습니다” 하고 오른편에 앉은 분이 물었다.
“예, 처음입니다. 경상도 합천에서 온 촌놈입니다.”
멀리서 참가한 것에 모두가 놀란다.
주위의 7-8명 중에 나 혼자가 남성이니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다.
고향이 합천이란 점, 서울에 6명의 딸이 살고 있다는 점, 내가 소설로 등단한 문인이라는 점, 인천 계양구 초대 민선구청장으로 역임했다는 점, 지금은 노인권익 운동과 효장려운동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 등 대충 이런 예기를 했다. 말이 좀 많았다고 생각되었다.
구청장으로 역임한 것과 소설가란 얘기를 한 것은 자랑이라기보다 내가 보통 사람을 조금 넘는 인물임을 미리 알려 나에 대한 관심을 일차 갖게 하자는 얄팍한 심뽀의 발로 였다.
나를 그 때 뵌 분들이여! 나를 두고 ‘저치 지 자랑 많이 하는 덜된 센님’이라 욕하지 말기를 부탁 드립니다. 일부러 내 자랑을 편 게 아니라 늙은 촌노(忖老)의 나이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하는 반사적 몸부림이라고 양해하여 주시기 바래요.
이렇게 신변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은 영어공부 프로그램에서 만나 알게 된 친구들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 여자 분이 인사를 하며 내 편 여자분들 앞으로 찾아 왔다.
명패를 보니 영어로 셀리라고 적혀 있고, 이름 밑에 숫자가 없었다.
옆의 친구에게 “저분의 이름 셀리로 영자로 되어있고 이름 밑 왜 숫자가 업느냐”고 물었다.
“저분은 죄희들과 같이 영어공부 푸로그램에서 공부하든 분인데 영어 강사인 미국인과 결혼한 분이시다” 라고 했다.
조금 있으니 8군 출입 문에서 우리를 안내해준 미국인이 왔다.
그 미국인은 키가 크고 얼굴이 잘 생겼다. 저 분이 셀리의 남편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25세나 터울이 진 부부라고 귀 땜해주었다.
내가 왜 이글을 써느냐 하면, 몇 가지의 깊게 느낀 점을 술회하기 위해서다.
첫 째는 내가 우연하게 함석하게 된 여성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짧을 시간에 알게 되었지만 정말 좋으신 분들을 만난 행운의 기회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고,
두 번째는 60이 넘었을 상 싶은 미국인과 25살 아래의 한국 여성이 결혼을 하게 된 동기가 보통의 인연이 아닐 꺼란 점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픽션물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 점,
세번째 나와 대화를 나누던 분이 주명룡 회장과 인사를 시켜주겠다는 친절함 그리고 주 회장의 소탈함에 대한 감동,
넷째 행사 진행관련의 매끄럽지 못한 준비, 그리고 즐거웠던 노래와 춤 등에 대한 나의 소견을 카프회원들에게 넷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였다.
주명룡회장은 미국 생활을 오래하고 여러 이름 있는 사회 활동을 많이 한 분 인데 미국적 태도가 몸에 베여서인지는 몰라도 내가 생각했던 만큼 권위적이고 냉엄한 분이 아니었다.
미국의 생활과 미국인의 자유로움이 묻어나고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소탈한 인물이었다.
행사 진행에 있어 다소 짜임새가 없어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되었다.
무질서 속에 편안함이 있었고 전체가 하나가 되는 부더러운 조직력이 보였다.
행사가 끝나고 헤어질 때 나와 끝까지 왕십리 전철역까지 소상하게 알려 주어 분당으로 가게 해준 초면의 친구들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지금 28일의 시민청의 모임에 가서 다시 나에게 친절을 준 여러분들과 대면할 즐거운 시간을 기대하며 이 글을 끝낸다.
